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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선가귀감(86)

무한진인 2018. 7. 31. 09:55



86.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

[註]

거룩한 빛, 신광(神光)이 어둡지 않다는 것은 첫머리의 '밝고 신령하다'는 것을 맺는 것이고,

또 만고에 빛난다는 것은 '본래부터 나지도 죽지도 않았다'는 것을 맺는 것이며,

또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하는 것은 '이름에 얽매어서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것을 맺는 것이다.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는 데서 시작해서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것으로 맺으니,

한데 얽힌 넝쿨을 한 마디 말로 끊어 버렸다.

한 알음알이로 시작과 끝을 삼고 중간에는 온갖 행동을 들어 보였다.

더구나 알음알이는 불법에 큰 해가 되므로 특별히 들어 마친 것이다.

하택선사가 조계의 맏아들이 되지 못한 것이 이 때문이다.

[頌]

지금까지 이렇게 한 말들

눈 푸른 달마 스님이 봤다면 한바탕 웃었으리.

하하 ~.

그러나 필경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돌(咄) !

휘영청 달이 밝아 강산은 고요한데

한바탕 웃음소리 천지가 놀라겠다.

[월호스님 蛇足]

<선가귀감>의 앞부분, '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서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이러한 말과 지금 끝나는 말, 그러니까 맨 첫마디의 말과 지금 맨 마지막 말이 서로 상통한다.

하택선사는 '안다는 한 글자가 뭇 오묘한 문이다(知之一字 衆妙之門也)' 이렇게 해서 조사의 맏아들이 되지 못했다.

선사들은 이것을 지지일자 중화지문(知之一字 衆禍之門)이라, 이렇게 거꾸로 이야기한다.

'안다는 한 글자가 뭇 재앙의 문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선가의 입장이고,

'중묘지문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하택의 입장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참선을 위해서는 분별심을 쉬어야 된다. 분별심을 쉰다는 것은 일체의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즉 '판사가 되지 말고, 관찰자가 되어라' 이런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맞느냐  틀리느냐? 또는 이익이냐 손해냐? 장점이나 단점이냐? 이렇게 따지다 보면 오히려 분별력이 떨어지게 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작은 것을 탐하다 보면 큰 것을 잃어버린다. ' 이런 말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분별심이 쉬어질수록 분별력은 증장한다.

마치 흙탕물에 흙이 가라앉아야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서 밑바닥이 전체적으로 다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跋文]

이 글은 조계 노화상 퇴은(退隱) 큰스님께서 지은 것이다. 슬프다. 이백 년을 내려오면서 불법이 점차 상실되어 선(禪)과 교(敎)의 무리들이 저마다 다른 소견을 내게 되었구나. 교(敎)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찌꺼끼에만 맛을 붙여 한갓 바닷가의 모래만 셀 뿐, 다섯 교문 위에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스스로 깨쳐 들어가게 하는 문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선(禪)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천진함만 믿어 닦고 깨치는 것을 무시하고, 단박 깨친 뒤에야 참으로 발심하여 온갖 행을 닦는 뜻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선과 교가 뒤섞여 넘치고 모래와 금을 가리지 못하니, <원각경>에 이르되, '본래 성불이라는 말을 듣고, 미혹과 깨침이 본래 없는 것이라 하여, 인과도 무시하는 것은 사특한 소견이고, 또한 무명을 닦아 익힌다는 말을 듣고, 참 성품이 망념을 내는 것이라 하여 참으로 항상 성품을 잃어버린 것 또한 사특한 소견이다'라고 한 말이 이것이다.

아, 위태롭구나. 이 도가 어찌하여 바로 전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을락 말락함이 마치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천근의 무게를 달아 올리듯 거의 땅에 떨어질 듯하더니, 마침 우리 큰 스님께서 서산에 계신지 십 년 동안 소를 먹이는

여가에 오십여 권의 경론과 어록을 보시다가 그 속에 공부하는데 요긴하고 간절한 말이 있으면 기록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것을 때때로 몇몇 제자들에게 차근차근 가르치시기를 양 떼를 기르듯 하여, 지나친 이는 누르고 뒤떨어진 이는 채칙질하여 크게 깨치는 문 안으로 몰아 넣으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다들 미욱하여 도리어 법문이 높고 어려운 것으로써 병이 되므로, 노스님께서 가련하게 여겨 다시 각 구절마다 주해를 달아 풀이하고 차례로 엮어 놓았다. 여러 마디가 한 줄에 이어지고 핏줄이 서로 통하여, 팔만대장경의 요긴한 곳과 다섯 종파의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진 것이다. 말씀마다 이치에 부합되고 구절구절이 종지에 들어 맞아, 치우치던 이는 원만하게 되고 막혔던 이는 통하게 되니 참으로 선과 교의 귀감이요, 불교를 알고 닦는데 좋은 약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노스님께서 항상 이일에 대해서는 한 말씀 반 구절이라도 마치 칼날 위를 걷듯 조심조심하여 종이에 올림을 염려하셨거늘, 어찌 이것으로써 널리 유통시켜 당신의 솜씨를 자랑할 생각이 있었을 것인가.

문인 백운선사 보원(普願)이 정서하고 벽천선덕(碧泉禪德)의천(義天)이 교정하며, 대선사 정원(淨源)과 태상(太常)과 청하도인(靑霞道人)법융(法融) 같은 이들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고, 동지, 6,7인과 더불어 바랑을 털어 판각에 올림으로써 큰스님의 가르치고 열어주신 은혜를 갚기로 하였다.

대저 장경의 깊은 이치는 바다와 같이 아득하거니, 여의주를 찾고 산호를 캐려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구해볼 것인가, 바다에 들어 가기를 육지와 같이 하는 수단이 없다면, 물가를 바라보며 탄식만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추려낸 공로와 깨우쳐준 은혜는 산 같이 높고 바다 처럼 깊다. 이를테면 만번 몸을 갈고 천번 목숨을 바친들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그 은혜를 깊을 수 있으랴. 천리 밖에서 듣고 보아도 놀라거나 의심하지 않고 받들어 읽어 보배로 삼는다면, 참으로 천년 뒤에 알아주는 이가 있을 것이다.

                                                                   만력 기묘 1579년 봄

                                     조계종 유손 유정(惟政)이 구결에 절하고 삼가 발문을 씀.


    ​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