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든 행위를 신에게 맡겨라
여러분이 출가를 하면 이발사가 머리를 깎아주지만, 그것은 이발사가 해주는 입문식일 뿐이다.
그것으로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머리카락의 뿌리가 다시는 자라지 않게 근본적 조치를 해야 한다.
브라만은 여러분의 머리카락 안에 붙잡히지 않는다. 머리키락은 계속해서 다시 자라날 것이다.
자기 몸에 대해서 어떤 외적인 영향을 준다고 해서 그가 브라만을 깨달을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깨달은 큰 스승과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스승이 신성한 진언을 하사하면서 여러분의 내면을 밝혀주는 빛에 의해서,
생사윤회 속으로 들어온 여러분의 탄생 자체가 그로 인해서 일어난 삿된 부수물들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생사윤회 속으로 들어온 여러분의 탄생을 아예 싹부터 잘라버리면, 여러분의 내적 진아의 원래 기본 바탕에 도달할 수가 있다.머리 카락은 그냥 그대로 놔둬라.
여러분을 외부세상 속으로 이끄는 내면의 습(習)이라는 머리카락을, 참스승(사두구루)이 주는 지(知)로써 잘라 버려야 한다.
(진정한 출가를 하려면) 여섯가지 악덕(탐욕, 분노, 증오 ,욕망,갈망,자부심)의 포기가 일어나야 한다.
이발사에게 머리카락을 깍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知)의 열쇄'라는 말의 의미는, '나'가 놓아질 때 그 거추장스러움도 사라진다는 뜻이다.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해야 할일은 그것 뿐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어떤 '나'도 갖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물에 편재하고 무소부재한 브라만은 있는 그대로이며, 단지 '나'만 없다.
나가 없으면 그 무아적 상태에서 일체가 구속이 아무 것도 없는 부라만이다.
'나'는 에고, 즉 별개의 한 개체라는 느낌이다. 그 개별적 존재에 대한 자부심이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지혜의 정점이다. 이 육체 형상은 어느 날 죽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 몸으로 인해, 이 몸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진아의식의 상태를 깨달아 영원한 브라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환(幻)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토록 유용한 이 육체는 환 때문에 창조된 것이다.
이 몸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나(참스승)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들은 브라만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인간의 몸을 옳바르게 사용할 때 얻는 이익(공덕)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위대한지를 알아야 한다.
하찮고 무가치한 것들에 기력을 다 소모하고, 이 가장 높은 이익을 잃는 사람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을 지옥에서 머문다. 우리는 무가치한 눈앞의 이익에 미혹되어 우리의 삶의 옳바른 목표를 놓치면 안된다.
우리가 환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게 만드는 그런 무지한 행위에 몰두하는 바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 가지 사소한 행위를 해도 우리가 브라만을 성취할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이 왜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는가?
상상적인 관념의 쓰레기를 포기하고 소원성취수라는 신성한 나무를 얻으려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바보일 것이다.
모든 행위를 신에게 바치는 단순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신과 자신이 하나임을 깨닫는 큰 이익을 포기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영적인 삶에 대한 이 조언은 크리슈나가 웃다바(확신이 확고해진다는 뜻)에게 해 준 것이다. 이것이 모든 헌신의 정정(頂点)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이 부라만에 대한 지(知)는, 어머니가 사람을 듬뿍 담아서 주는 한모금의 맛난 음식처럼 내가 주는 것이다. 복잡한 학문과 철학이론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지(知)를 얻을 수 없다. 진인 가우땀은 소를 도는 것(오른돌이 하는 것)만으로 아힐리아를 아내로 얻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천신들은 아직도 지구를 돌고 있다. 비슈누와 브라마는 마하데바(시바)의 발과 정수리를 찾으려고 나섰다. 그러나 비슈누는 마하데바의 발에 도달할 수 없었고, 브라마도 그의 정수리에 도달하지 못했다. (시바의 위대함에 대한) 그런 지(知)를 , 오 웃다바여, 내가 그대에게 준다."
베다와 기타 여러 경전들을 파고드는 사람들은 그것들에 말려 들뿐이다. 그들은 진짜인 것, 곧 절대자를 알지 못한 채 공허하게 다투기만 할 뿐이다. 많은 대단한 경전 연구학자들이 다양한 철학적인 의미와 해석상의 미세한 차이를 놓고 서로 싸우지만, 그것들을 낱낱이 분석하고서도 신에게는 도달하지 못햇다.
그들이 브라만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는, 브라만을 말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다는 "이것은 브라만이 아니다(Neti Neti))"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묘사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그 동네에 가 보지 못한 것이다. 보지 못한 동네를 그들이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나?
깨닫지 못한 사람들만이 장황한 묘사와 끝없는 이야기에 몰두한다.
베단타 학자들은 브라만에 대한 많은 논변을 설명하지만, 그들은 그것의 지복을 즐겨보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주장에서 결여된 주요한 부분이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베다나 철학이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 지(知)를 전달해 주었다. 참스승만이 다양한 방편과 사례를 이용해서 자격있는 제자들에게 이 지(知)를 나누어준다.
여러분은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지만, 나는 이 지(知)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지(知)를 얻으면 모든 의심이 불태워지고, 그 헌신자는 절대적 브라만이 된다.
이것을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지(知)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귀담아 듣고, 그에 대해 읽는 사람은 참으로 복도 많은 사람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에 대해 생각하여, 이 지(知)를 얻는 것은 그런 복 잇는 사람들 뿐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 지(知)를 배워서 해탈하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지만,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조차 해탈할 수가 있다. 사람들도 소에게서 우유를 얻는데, 송아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웃바다의 헌신에 의해 다른 사람들도 공덕을 얻는다. "나는 내 심장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을 그대에게 공개적으로 내주었다. 그대는 죽음이라는 이름조차 알려져있지 않은 그런 지역으로 들어갔다. 불사의 감로도 모름지기 끝이 있겟지만, 그대는 나고 죽음이 없는 열반상태를 성취했다. 그 상태의 사람들에게 생사(生死)가 없는 것은 그들이 이 불사의 감로와 같은 지(知)의 샘물을 마셨기 때문이다.
에끄나뜨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서사시 책 <바그와뜨>를 마라티어로 주석하자, 브라민 사제들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그를 추방했다. 나중에 그 책은 바라나시로 보내졌고, 그곳의 브라민들은 이 책을 엄청나게 찬양햇다.
앞서 비판적이었던 브라민들은 할말이 없게 되었다. <에끄나뜨 바그와뜨>라고 하는 이 책은 <문답체계>라고 불린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 앞의 유일한 목표는 무조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운이 좋고 복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목표를 이루었다. 자신의 가슴 속에 이 이해, 이 지(知)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브라만 자신이 됩니다. 듣는 자와 스승이 하나가 된다.
여러분이 이 지(知)를 얻고 나면 그것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나는 이 지(知)를 내 헌신자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의 하인이 된다>"고 했다. 이 지(知)를 남들에게 나누어 주는 결과를 주 크리슈나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지(知)는 몸, 말, 마음으로 그들 자신을 나에게 내맡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이 지(知)를 헌신자 아닌 사람에게 가르쳐서는 안된다. 이 비밀은 나에 대한 사랑을 가진 헌신자들에게만 말해주어야 한다. 나 자신이, 헌신과 지(知)에 탁월한 그 헌신자의 하인이 된다."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