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울 때에 무더움을 끌어안고 하는 명상
요즘같이 무더운 계절에도
변함없이 항상 명상에 전념할 수 있는 마음자세만 가지면,
무더움의 그 느낌을 활용해서 명상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일단 무더우면, 무더움을 피하지 말고, 무더움과 그대로 맞닥트린다.
무더움을 피하거나 방어하려고 하지 말고 무더움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무더움의 그 깊은 맛과 느낌,
그 무더운 감각을 그대로 내마음에 받아들여서 주시하는 자세로 무더움을 지켜본다.
이렇게 무더움을 그대로 느끼면서, 무더움을 자각한다.
즉 말없이 그대로 무더움을 깊이 관찰하고 알아차린다.
그렇다고 위빠사나 하듯이 마음 속으로 '무더움을 알아차림, 알아차림'하고 마음 속으로 되뇌일 필요는 없다.
그저 무더운 느낌을 느끼는 그대로 대상화해서 말없이 주시만 한다.
즉 무더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지켜보며 자각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덥다"는 느낌을 자기 몸과 동일시하고,
또한 마음과도 동일시하고 있는 상태에 있어서, 무더움에 대하여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덥다는 느낌의 몸과 마음은 본래 자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덥다"고 느낀다.
'더움'은 육진(六塵)이고, 이 육진을 느끼는 것은 육식(六識)이며, 이 육식을 분별하여 "내가 덥다"라고 말하는 것은 칠식(七識, 自我意識)이다. 이 칠식은 뒤의 팔식(八識,아뢰아함장식)에서 나온다.
'무덥다'라고 느끼는 순간 색(色), 수(受), 상(想),행(行),식(識), 즉 오온(五蘊)인 '나'라는 느낌이 작용하는데, 이것을 "나"라고 동일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오온이 괴로움의 덩어리가 되어 "나가 무더움 때문에 고통스럽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 무더움과 몸과 분별의식은 실은 진짜 '나'가 아니고, 대상을 '나'라고 동일시하여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즉 무더움, 감각작용(몸), 분별의식(아는 의식) 등, 오온(五蘊)은 모두가 우리 마음 안에서 알려지는 대상들이다.
심지어 '나라는 느낌'조차도 우리 마음 안에서 알려지는 대상이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들이므로, 이것들은 "나"라는 주체가 될 수가 없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모양도 없고, 절대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고, 알려지는 대상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더움"과 "무더운의 느낌"과 "무덥다고 느끼는 앎", "그 무덥다는 느낌을 알고 분별하는 주체인 나라는 느낌"은 모두가 진짜 "나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나"의 대상들일 뿐이지 "나"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명확한 이해가 내면 속에 완전히 확고한 믿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자기 내면에게 묻는다.
" 그러면 무더움의 느낌을 아는 것은 누구인가?"
" 이 무더움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이 무더움의 느낌이 나온 곳은 어디인가?" 또는 "어디에서 이 무더움의 느낌이 나왔는가?"
지금 이 무더움을 느낌과 동시에 이 무더운 느낌의 앎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를 탐구한다.
이렇게 명상하려면 먼저 "무더움의 느낌"에 대하여 그 무더움의 느낌의 모양, 무더움의 감각경계선, 무더움의 깊이와 넓이, 무더움의 냄새, 무더움의 색갈, 무더움의 소리,등등을 아주 깊히 참구하고 수동적으로 끈질기게 오랫동안 주시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무더움을 완전히 대상화시켜서 모양없고 알려지지 않는 보는자"와는 완전히 대상으로 따로 분리시켜서 수동적으로 지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대상화로 따로 분리시켜 뚝 떨어져서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연습을 하면 어느 때 갑자기 무더움과 무더움을 느끼는 자는 저절로 사라지고, 자기도 모르는 미지의 선정의 세계로 들어간다. 끈질기게 해야 한다. 여기서 지켜보는 자는 모양이 없고(無相), 알려지지 않은 것, 모르는 것(無念,無知), 조작하지 않는 것(無作,無爲)이라는 것을 사전에 완전하게 이해하고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이것은 무더움 뿐만 아니라, 추움, 슬픔, 분노, 기쁨, 모든 마음의 희로애락이나 고통과 불행, 마음과 감각에 나타나는 모든 물질적,감각적 심리적 대상들도 이 방법을 활용하여 명상의 대상으로써 끌어 들일 수가 있다.
이 무더움과 무더움을 느끼는 이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대상으로 앞에 놓고,
이것을 보고 아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무더움의 느낌과 앎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그러나 이러한 물음에 대해 마음이나 느낌에서 나오는 어떤 체험이나 관념적 대상도 전부 망상일 뿐이다.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것, 어떤 희안한 관념적인 잠재의식의 반응, 심오한 영감 등 등은 모두가 헛것이며 대상이므로, 망상일 뿐이다(無念). 이 근본적인 물음에서 얻어질만한 답(대상)은 전혀 없다(無得). 그럼에도 철저하게 탐구하고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그렇게 오래 하다보면 문득 묻는 자 스스로가 사라져서(無我),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은 상태가 도래 한다. 그 상태에 자신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면 어느 때에 몰록 "무더움"으로 인한 고통도 사라진다.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즐거움은 없지만, 선정(禪定) 속의 은은한 즐거움이 도래한다.(禪悅法喜).
이것이 이 명상의 다는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만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이것이 바로 "무더울 때에 무더움을 끌어안고 하는 명상법"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아무쪼록 무더운 여름 날 몸의 건강에 유의들하시기 바랍니다. 친구분들 !
2018. 7. 17. 무한진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