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禪詩

고요한 달밤

무한진인 2018. 7. 6. 09:50


               고요한 달밤

                                     해안화상(海眼和尙)

고요한 달밤 거문고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들고 오는 이가 있거든

굳이 줄을 골라 곡조를 듣지 않아도 좋다.

이른 새벽 홀로 앉아 향을 사르고

산창(山窓)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을 펼치지 않아도 좋다.

저문 봄날 지는 꽃잎을 보고

귀촉도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라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이른 아침 세숫물로 화분을 적시며

난초 잎을 손질할 줄 아는 이라면

굳이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

구름을 찾아 가다가 바랑을 베고

바위에 기대어 잠든 스님을 보거든

굳이 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다

해 저문 산자락에서 나그네를 만나거든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물을 것 없이

굳이 오고 가는 세상일을 들추지 않아도 좋다

* 해안 봉수(1901~1974): 전북 부안 내소사 서래선림(西來禪林)에서 오랫동안 주석하며 선풍을 진작했다.​ 


 출처 : <간다,봐라>- 법정스님의 사유노트와 미발표 원고(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