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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불교명상서적 얼뜬 들여다 보기] 번뇌를 끊는 이야기(1)

무한진인 2018. 6. 29. 23:14


불성은 나에게도 있고 개나 닭이나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있다.

이 성품에 지혜와 덕이 잘 갖추어져 있다.

성품을 보면 모든 다툼이 그치고 덕과 지혜로 나온다. 지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애들에게 있는 무심을 만나면 내가 먼저 다시 순수해져 버린다.

선을 하면

형상을 보면서 형상이 아닌 것,

마음을 보면서 마음이 아닌 것,

몸을 보면서 몸이 아닌 것,

생각을 보면서 생각이 아닌 것,

색을 보면서 색이 아닌 것,

32상을 보면서 여래라 하면 여래가 아닌 것,

아라한을 보면서 아라한이라 하면 아라한이 아니라고 하는 것,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보면서 마음을 아닌 것을 보면 스스로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은 형상이 없이 있어서 비었다고 한다.

우리의 성품이 그것이다.

다툼이 없는 성품은 스스로 고요하다.

그걸 만나면 과거,현재가 싹 끊어지기 때문에 고요할 선(禪)이라 해서 참선이라 한다.

그런 것이 우리에게 있다. 다만 덮어 놓고 산다.

그러나 덮어 놔도 덮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덮어진 걸 통해서 다시 본다.

회광반조라는 말이 그 말이다. 나한테 있는 것을 참작한다고 해서 참선이라 한다.

나한테 선심이 있는데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 의구심 속에 돌아봐서 참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려 버린 곳에 있기 때문이다.

참선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앉아서 이미 있는 것을 가린 걸 보며 참작하는 것이 참선이지, 앉아서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를 많이 배워놔도 마음이 안정이 안되니 명상을 해서 안정을 얻으려고 한다.

그것은 잘못된 선이다. 성품을 떠난 선은 일시적이고 집착만 커진다.

성품을 따로 놔두고 불교를 배우면 불교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불교는 전체가 이 성을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이것을 봐야 석가모니 같은 경전이 나오는 것이다.

몸에 붙어 있는 헝클어진 의식은 이 성을 만나서 조용해지고 질서가 생긴다.

이 성을 깨닫고 난 뒤 나온 석가의 말이 불교의 경전이 된 것이다.

잡초가 무성한 곳은 토질도 좋아

번뇌망상을 없앨 필요는 없다.

살아 있기 때문에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냥 놔두면 된다.

땅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보고 그 땅의 토질이 좋은 줄 알 듯, 번뇌망상이 잇는 곳을 보고 성이 있는 줄 안다.

스스로 있는 성(性)을 믿어야 한다.

성을 만나 마음을 알면 모든 생각이 끊어져 있다. 생각이 있지만 그 생각이 쓸 생각이다. 곧 지혜인 것이다.

생각은 나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떠나 방향없이 쓰는 것이 문제이다.

어린애가 절하는 것을 보여주듯 우리도 스스로 앉고 서고 한다.

보이지는 앉지만 스스로 앉고 서고 할 줄 아는 것이 성이다.

이것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안 배워도 있다. 불교는 덮혀 있는 성을 다시 드러나게 하는 공부이다.

그래서 황벽선사는 "불교 배우지 마라"라고 한다.

물으러 오면 되례 때려서 돌려 보낸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데, 우리는 배워서 알려고 하니까 황벽불교를 무서운 것이라 한다.

머리로 하면 멀고, 내게 있는 성에 닿으면 가깝다.

우리는 있다. 없다 하는데 그것은 내 생각이다. 애들은 뛰노는 곳에 아무 마음이 없다. 그러나 놀 줄 안다.

나도 앉고 설 때 나에게 불성이 '있다, 없다' 하지 않고 스스로 한다.

불성의 성질이 그렇다.

스스로 앉고 서는 것은 '있다, 없다'하는 것이 없다.

그것을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데 '있다, 없다'하는 것에 마음이 없다.

그러나 중생은 있다는 생각을 짓고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영가(永哿)는 있다는 생각을 하면 상견이고, 없다는 생각을 하면 단견이라고 했다. 단견에 떨어지면 사람이 허무해져서 불교가 허무주의가 된다.

상견에 떨어지면 불교가 소승이 되어서 좁고 죄를 지었다고 하고 벌벌 떤다.

성(性)엔 그런 것이 없다.

성을 봐 버리면 번뇌가 없어지는 것이지, 성을 놔두고 집중을 하면 번뇌만 더 성한다.

그래서 바른 소견이 중요하다.

정견, 정업, 바르게 업을 익혀야 한다. 불교는 그것이다.

바르게 익히려면 내 성품을 가리고 않아야 한다. 성은 둥글어 골고루 비추기 때문에 부자도 비추고 가난한 사람도 비추면서 바른 길을 찾아간다.

그걸 가려 놓으면 부자는 부(富)로 성이 짓눌려지고, 가난은 가난으로 성이 짓눌린다.

                                                    -현웅 스님 저, <번뇌를 끊는 이야기>(운주사)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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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 談]

요 근래에 나온 생존 스님이 쓴 불교 간화선 명상서적 중에서 이 책이 좀 볼만합니다. 저자 현웅스님은 요즘 시끄러운 화제 속에 있는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이 아니고, 미국 육조사의 현웅스님입니다.

얼뜬 스님 이름만 보면 현재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책방에 진열된 책을 좀 자세히 훌터 보니, 요즘 엠비시 피디수첩에서 알려진 현응스님이 아니고, 다른 현웅스님이라 책을 구입하고 책곳이에 꼿아놓고 몇주간 읽지를 안했는데,​  조계종 인터넷 직할 불교서적 판매점의 10위 베스트셀라 안에서 몇주동안 7~8위를 유지하고 있던 이 서적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처음에 지나치면서 내용을 훌터 보았는데 간화선 수행을 하는 일반인에게 참고할 만한 좋은 교재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이 인기가 좀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베스트 10위군 안에 몇주 동안 유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이상하다 생각했죠. 그후에 여유 시간이 나서 이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 속에 조계종 사람들이 좁은 소견을 가진다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몇군데 보이데요.

그 내용은 조계종에서 절대적인 공경의 대상인 성철스님과 경허스님을 거침없이 비판한 내용이라든가, 또 현 조계종 종정인 진제스님에 대한 비판 등, 현웅스님의 개인 나름대로 보는 선배선사들에 대한 선적인 측면에서의 비판적 관점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서, 아마도 현 조계종 고위인사들의 구미에 맞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계종 직영 서점의 인터넷 쇼핑몰의 불교서적 베스트셀라 10위권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교 명상이나 간화선을 공부하는 일반인과 수행자 들은 이책에 간화선을 공부하는데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이 책을 불교 명상서적 참고서로 추천을 해 봅니다. ​ 원래는 제가 명상서적 같은 것을 공개적으로 브로그에 추천하지는 않는데, 이 책은 그 내용이 좋은 데도 조계종 직영서적에서 일부로 드러내놓지 않을려고 의도하는 듯한 기미가 엿보이는 것 같아서,그러한 일이 좀  궁금하길래 제가 이 책을 다 읽어보고 나서, 좀 거기에 대한 어깃짱이라고나 할까? 의도적이긴 하지만 간화선을 공부하는 불교인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간화선 수행인의 참고서로서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 2018. 6.29. 평범한 일반중생,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