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마음의 움직임(심행)-3

무한진인 2018. 4. 14. 10:16



깨달음은 부사의세계를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사의세계를 어떻게 가르치느냐?

신라 화엄에서는 증분(證分)과 교분(敎分)을 이야기합니다.

물의 세계를 바로 깨달은 자기 체험을 증분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깨달은 증명된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때는 알리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교분(敎分)이라고 합니다. 가르치려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 합니다.

증분은 내가 깨달은 것이고, 교분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체 언어가 다 교분이고, 교분은 증분에서 나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것은 증분입니다.

부처님이 생사없는 해탈세계를 스스로 증명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그들도 깨치게 하려면 많은 교설(敎說)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교분입니다.

거기는 비유가 필요하고, 논리나 체계가 필요합니다.

화엄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다 교분입니다.


우리는 이 몸만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이 완전한 것으로 집착합니다.

이것이 아집(我執)입니다. 그런데 화엄에서는 어떻게 부사의세계를 설명했느냐?

내 몸이라는 것은 "온 허공법계가 나의 몸이요, 마음이다(虛空法界爲心身)"라고 했습니다.

이 몸이 형성된 것이 처음이 아니라 억만 전부터 원인이 있었습니다.

또 한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있음으로써 몸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몸이 사라지는 게 마지막이 아니라 이 몸 이후에도 억만 년 존재하게 됩니다. 이 몸 생길 때가 절대로 처음이 아니고, 이 몸 사라질 때가 절대로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집으로 나를 보면 몸이 생길 때가 처음이고, 몸이 사라질 때가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아집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약 '나라야 어찌되든 말든 나만 좋으면 된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아집입니다. 나라가 잘 되는게 우선이지 어느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오느냐가 문제가 아닌데, 아집 때문에 지역패권을 쥐려고 애씁니다.


허공과 내 몸이 다른 것이 아닌데, 아집으로 보니까 이 몸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주좌와염상속(行住坐臥念相續)이라, 가고 서고 앉고 눞고 하는데 찰나찰나에 계속 이어집니다.

이 몸이 고정불변한 게 아니라 어제 것이 사라지고, 오늘 것이 사라지고 , 내일 것이 사라지며 상속해서 존재합니다. 상속하는 존재이지 고정된 존재가 아닌데, 생각으로는 어릴 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똑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집적 인식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나였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내 안에 있을까? 사라졌을까?

어릴 때 모습이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내 안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속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살 때 모습이 사라지고 두 살 때 모습이로 이어지고, 두 살 때 모습이 사라지고 세 살 때 모습으로 이어져 갑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상속입니다.

다른 것이 사라져서 이 몸이 되었고, 다른 것이 또 생깁니다.


그래서 허공도 아니고 허공 아닌 것도 아니고, 끝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무진원통법(無盡圓通法)이라고 합니다.

다함이 없이 두루 통합니다.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함없이 끊임없이 다 통합니다. 무진원통법이 나입니다.

우리는 아집으로 인해서 무진원통법을 나라고 보지 못하고, 이 감각이 있는 몸만을 나라고 봅니다.

그런 심행이 있을 뿐이지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사의 세계는 심행이고, 부사의세계는 무진원통법입니다.


                                                            -종범스님 법문집 <오직 한생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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