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은 동체(同體)이다.
<티벳트 밀교 법문 <대수인원문>에서 일부 발췌함.>
[원문]
일체의 모든 법은 마음이 나타난 것이오며,
一切諸法爲心所變現(일체제법위심소변현)
마음이 본래 무심하여, 마음의 체성이 공이라,
心本無心心之體性空(심본무심심지체성공)
공하니 멸도 없고, 나타내지 않음도 없으니,
空而無滅無所不顯現(공이무멸무소불현현)
체를 잘 관찰하여 정견(定見) 얻기를 원하옵니다.
願善觀察於體得定見(원선관찰어체득정견)
[해설]
일체는 오직 마음일 뿐이라 대상경계 그대로 자심(自心)일 뿐이며,
마음 밖에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을 알 수 없다(心者不知心)"
"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보지 못한다(有心不見心)
-반주삼매경-
이라 하였다.
마음은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니, 마음이 어디에 따로 있다 할 것인가.
그대로 공적(空寂)하니 그 마음 얻을 바가 없어 무심(無心)이다.
마음은 텅 비어 허공과 같아 생멸이 없으며, 공적(空寂)하나 지(知)함도 없고 견(見)함도 없되,
일체를 평등하게 걸림없이 나타낸다.
그래서 <화엄경>권7에 이르길,
"봄(見)이 없어야 능히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심성(體)을 여실히 보아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 곧 정견이며 일행삼매(一行三昧)이고 일상사매(一相三昧)이다.
[본문]
본래 일찍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자심소현(自心所現)인데, 미혹하여 경계로 삼고,
從本未有自現迷爲境(종본미유자현미위경)
무명으로 인해 견분(見分)을 나라고 집착하여,
由無明故執自明爲我(유무명고집자명위아)
이 두 가지 집착으로 여러 가지 존재로서 유전하오니
由二執故流轉於諸有(유이집고류전어제유)
미혹과 산란함의 근원인 무명 끊길 원하옵니다.
願斷無明迷亂之根源(원단무명미란지근원)
[해설]
본래 일심(一心)의 자리에는 능(能:主觀), 소(所:客觀,對象)가 따로 나뉘어 있지 않은데,
홀연히 무명의 바람으로 미혹의 꿈 속에 들게 되면서 일심에서 견분(見分:보는 자리)을 세우니
동시에 상분(相分: 보이는 자리,對象,境界)이 전개되고,
견분과 상분의 미세한 전변(轉變)이 일어나는데,
이 자리를 장식(藏識, 아뢰아식,제8識)이라 이름한다.
동시에 장식의 견분을 아(我)로 여기는 세력이 이루어지며,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내가 있다고 하는 생각(我相,我想)이 흐르는데 이를 마나식(제7識)이라고 한다. (본문의 둘째句)
이렇게 나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잠재된 가운데(제7識), 상분을 대상화하는 것이 더욱 거칠게 이루어지며(轉變),
이 대상들에 대한 증오,애락,시비 등의 모든 분별심이 전개되는데 이를 의식(제6識)이라 한다.
이 분별심이 또 전변하며 그 상분을 각 방면 별로 분별인지하게 되는데 이를 전오식(前五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이라 한다. 동시에 전오식 각각의 성분을 또 한번 대상화하여 전변하니 본래 식이 었던 것들이 식의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이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모든 바깥 대상(事物)들이다.
그래서 결국 장식 이하의 모든 식 경계는 미혹으로 인해 나온 것이요, 꿈일 뿐이다.
꿈에서 나온 바깥 사물을 보고, 이를 바깥에 따로 있는 실재의 것으로 착각하니(轉倒妄想), 이를 꿈 속에서 또 꿈을 꾸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도망상의 행업(行業)은 그대로 업식(業識)이 되어 장식(藏識)에 합세하고 합류한다.
바로 본래 일심인 까닭에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한 자리인 것인데 이를 따로 나누어 분별집착하니, 생사윤회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바로 자심에서 견분과 성분이 여일함을, 두 자리가 아님을 여실히 깨우쳐야 한다.
견분과 상분이 두 자리가 아니니, 곧 일심이고 각(覺)이다. (朴健柱님 번역 및 해설)
- 朴健柱 譯解, <대수인원문(大手印願文)>에서 일부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