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18. 3. 6. 09:45


질문자 : 모든 나툼을 환(幻)으로 여겨야 한다면, 그것은 생각과 어떻게 다릅니까?

마하리지 : 그런 분별을 하는 것은 세간적 활동을 위해서일 뿐이고, 다 똑같은 것입니다.

질문자 : 누군가 자신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때, 그가 지적인 명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겠지만 눈을 뜨면 환()이 계속됩니다. 그것은 생각에서 벗어난 것인가요?

마하리지 : 환(幻)이란 말을 제껴 버리고 브라마란 말로 바꾸시오. 그대가 바꿀 수 있는 것음 말뿐이고, 다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오. 그대는 지식을 구하여 스승을 찾아가지만, 어떤 지식을 구하며, 지식을 구하는 그것은 누구란 말이오? 그대가 추구하고 있는 지식은 마야, 즉 환(幻)에 대한 것이지만, 그 지식을 원하는 그것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소.

질문자 : 진인은 상대적인 질문이든 절대적인 질문이든 모든 질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마하리지 : 질문을 할 때 그대는 그 질문들이 그대의 관심문제를 해결해 줄꺼라고 생각하오? 그대는 그 질문의 내용부터 질문하고 있소? 그리고 질문을 할 때 그대 자신을 지켜 보나요?

질문자 : 지금 저에게 당혹스러운 것은, 살아가면서 이곳을 떠난 뒤에 그 개인이 취하려는 태도입니다. 저는 마음이 몸과 그 활동들을 떠받치는 데 있어서 그 자신을 어떻게 방어할 것이냐 하는 것을 염려합니다. ​

마하리지 : 마음이 절대적으로 순수해지면 일체를 스스로 돌보게 될 것이오.

질문자 :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해질 때까지의 기다림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있지 못하게 합니다.

마하리지 : 생명기운이 흐르는 한에는 마음도 흐르게 되어 있어요.

질문자 : 저는 어떤 갈림길에 이르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 -

마하리지 : 그 몸, 생명기운, 그리고 의식이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대는 그것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오. 돌아가서 그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그대의 마음이 스스로 결정할 것이오. 몸과 마음은 그들 나름대로 가진 습(習)과 상태에 따라서 움직이라고 내버려 두시오. 그러나 그대는 그런 몸도 마음도 아닌 것이오.

질문자 ​: 저는 어디서 열대 섬을 하나 찾아내서 나무 밑에 앉아 이것을 익혀야 할지, 아니면 사회 속으로 돌아가서 제가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몸과 생명기운을 정화하기 위해서 어딘가로 수행을 하러 가겠다는 것입니까? 


질문자 : 네 그렇습니다.


마하리지 : 이런 이야기들이 어리석다고 생각되면 내버리고 그대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내 입장에서는 그대가 내 말을 꼭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소.

질문자 : 마하리지께서 하신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반복하시고 주지시켜주셔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하리지 : '내가 있다'는 감촉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소? 왜 마야와 브라마와 그 모든 것을 발견하는 것을 바랍니까? '내가 있다'는 이 원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시오. 그러면 끝납니다. 그 '내가 있다'가 개념 때문에 속박되어 있소.

질문자 : 상대적인 상태로 돌아가 보자면, 제가 여기 오기 전에 하던 활동을 돌아가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 사람은 그 몸, 생명기운에 관계되는 것이오, 아니면 '내가 있다'에 관계되는 것이오?

질문자 : 몸입니다 .

마하리지 : 이 세 가지 것의 주시자인 그대가 어떻게 거기에 관계됩니까? 그것들은 수천년 동안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데, 그대가 어떤 식으로 관계됩니까? 질문이 일어난 것은, 생명기운이 떠나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를 그대가 고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그 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끌어 안고 있습니다.  

질문자 : 그럽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의 아내와 자신을 포함하여 그대의 가장 가까운 친족들도 그 몸이 썩으면 가까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자 : 그 말씀은 맞습니다.

마하리지 : 이해했으면 그대의 일을 계속 하십시오. - 걱정은 하지 말고,

라마가 인도에서 랑카(스리랑카)로 바다 건너 가고자 했을 때, 원숭이들이 그를 많이 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마는 그들 모두가 천상에 들 수 있도록 축복을 주었습니다. 바로 그 원숭이들이 지금 서양의 여러 나라에 와서 그 복을 즐기고 있습니다. 라마가 그들에게 준 물질적 쾌락과 천상의 쾌락이라는 은택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천상을 얻을 목적으로 고행을 많이 한 리쉬들도 천상에 태어나서 복락을 향유합니다. 이제 즐길 만큼 즐겻기 때문에 다시 라마를 찾으러 이곳에 오기 시작했습니다.(188)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어록-


[閑 談] ​ 

위의 본문 중에서 밑줄 친 부분인 " '내가 있다'가 개념 때문에 속박되어 있소. "라는 구절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가 "내가 있다"에 머물러 있으라고 항상 말씀하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내가 있다"를 어던 특별한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잘 모르는 어떤 애매한 단어에 특별한 개념을 붙이는 것은 개인 별로 다양한데,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가 "내가 있다"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있다"에 대한 어떤 개념이나 특정한 상(相)을 머리 속에 상상하거나, 혹은 이런 것일 것이다, 라고 나름대로 그럴듯하다고 생각돠는 개념으로 추측을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있다"가 "내가 있다는 생시의 느낌"으로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전체 허공처럼 상상하거나, 또는 어떤  보이지 않는 배경 같은 것 등등으로 특정 상(相)이나 특정 개념화 이미지를 만들어  스스로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가 있다"에 대한 모든 이미지나 상상이나 미리 생각한 개념들은 일단 머리 속에 들어오면 그것은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내가 있다"와는 완전히 반대로 어그집니다.

<주시자>라는 것은 대상과는 완전히 다르고 따로 떨어져 있는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즉 몸, 마음, 느낌,세상,감각, 생각등은 모두가 의식,현상계의 작용이며,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아는 대상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정신적이며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모든 것들은 그것을 지켜보는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와 별도로 떨어져 있고, 주시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몸과 마음과 감각적 대상들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것들의 주시자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시자는 의식에 알려진 어떤 대상적인 것과도 비슷하거나 같지 않고 완전히 알려질 수 없는 미지의 것(無念無相)입니다.만일 주시자가 개념화 되거나 알려진다면 그것은 이미 주시자가 아니라 대상화 또는 개념화 된 것입니다. 

주시자는 모든 것과 완전히 뚝 떨어져 홀로 지켜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시자는 마음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개념화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불가사의(不可思議)-말이나 생각으로 논(論)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현재 모든 알려진 대상들에서 뚝 떨어져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현존(現存) 그 자체인 것입니다.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내가 있다"는 몸과 생명기운(감각작용),의식, 이 세 가지를 벗어나 이것들을 주시하는 주시자(無念無相)를 말씀하시지만, 그렇다고 어떤 주시자라는 개념을 머리 속에 상상하면,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주시자 의미에서 멀리 벗어납니다. 그러나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의도는 모든 개념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씀하시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상상하면 이미 개념화되기 때문에 빗나가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위의 <여러분들은 그 '내가 있다'가 개념 때문에 속박되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불교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여래장,절대진아, 깨달음은 열반적정 상태이며, 공(空),무상(無相),무생(無生), 무원(無願) 무념(無念)등의 개념이라고 배우고 있는데, 만일 도를 배우는 이가 이 공, 무상, 무생, 무원,무념이라는 개념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다면 실질적으로 깨달음으로 들어가는데 이들 개념어들에 길이 꽉 막혀서 수행의 진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개념들은 자기 마음에서 유심(唯心)적으로 요지(了知)한 다음에는 전부 싸그리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경전에서 배운 개념적인 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벗어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청정한 무심을 지니고서 실지 수행으로 들어가 직접 공,무상,무생,무원, 무념상태를 스스로 증험하라는 것입니다.

달마선(達磨禪) 식으로 말하자면 이입(理入)으로 경전을 통해서 원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자기 마음에서 요지(了知)하고 난 다음에, 결국은 대승적 보살행에 들어가서 사행(四行)으로 스스로 직접 증험(증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