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구하는 일을 멈추면 도를 저절로 이루어진다

무한진인 2017. 10. 27. 23:55


~ 전약(前略) ~


구하는 것이 이렇게 허망하고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 이렇게 중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질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도를 닦아야 하는가?

첫째로 도는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도입니다.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응수찰(隨應隨察) 하되 막섭외진(莫攝外塵)하라',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모든 데 따라서 응하고 모든 데 따라서 살피되,

밖의 것을 탐하지도 말고 밖의 것에 의지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탐하고 의지하는 것이 생사입니다.

무엇을 탐해도 그것은 물거품이기 때문에 사라지고 만족하지 못하니까 다음 것을 또 구하게 됩니다.

구하는 데서 만족하려고 하니까 만족은 없고 구하는 일만 계속됩니다.

그러면 어디서 만족을 얻어야 하는가? 깨닫는 데서 만족을 얻어야 합니다.

구하는 데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구해도 허망하고, 허망하니까 또다시 구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예로 들면, 간다고 들떠서 가지만 보고 나면 또 심드렁합니다.

그러니까 또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구하는 데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 본성을 깨달을 때 만족을 얻습니다.

모든 곳에서 적응하고 살피되 탐하고 구하지 않는 것이 도를 닦는 첫번째 단계입니다.

구하는 것 때문에 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하는 일을 멈추면 도는 저절로 이루어 집니다.

지금까지 전생으로부터 어마어마 한 것을 아뢰야식에 쌓아 놓았기 때문에 구름이 저절로 왔다갔다 하듯이,

내 생각이 통제할 수 없이 제멋대로 일어납니다.

제멋대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누르려고 하거나 좋다고 자기 생각에 자기가 따라가기 때문에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절대로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지만 그 일어나는 생각을 관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밖에 보이는 것도 관계하지 말아야 하고, 살펴서 적응만 합니다.

또 생각이 아무리 물거품처럼 일어나도 그냥 내버려 두면 끝납니다.

그러니까 일어나는 생각을 관여하지 말고, 밖으로 느껴지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살피기만 하고 집착하지 말고, 알기만 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오직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내 마음 내 본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가고 오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반조(返照)이고, 수도(修道)입니다.

<금강경>에 '즉비(卽非)'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냐?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이냐? 짐승이 아닙니다. 하늘이냐 ? 하늘도 아닙니다.

삼천대천 세계냐? 아닙니다. 모든 것이 아닙니다. 또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즉비(卽非)라고 합니다.

그러면 삼천대천 세계가 아닌 것이냐?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과 전부 다른 것이 있느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삼천대천세계입니다. 이것을 수용(受用)이라고 합니다. 다 받아서 쓰는 것입니다.

허공이 있는데 구름이 허공이냐? 아닙니다. 태산이 허공이냐? 아닙니다.

사람이 허공이냐? 아닙니다. 구름을 떠나서 허공이 있느냐? 아닙니다.

허공이 태산도 다 수용하고, 집도 수용하고, 사람도 수용하는 이 이름이 삼천대천세계이고,

이름이 중생이고, 이름이 세계입니다.

이것이 본성입니다. 본성은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즉비(卽非)입니다.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전부 다 수용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중생이고,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아뇩다라샴막삼보리가 아닙니다. 즉비(卽非)입니다.

보리(菩提)가 즉비보리(卽非菩提)입니다.

일체가 끊어진 자리가 우리의 본성자리이고, 일체를 다 수용하는 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자재(自在)가 나옵니다. 일체가 아니니까 겁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또 일체를 수용하니까 막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도라고 합니다.

누가 그런 도를 얻었는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처음에 얻었고, 

줄줄이 그 도의 종지가 전해져서 무수한 도인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도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조선시대 3대 도인을 꼽자면 조선 초기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조선 중기 서산(西山 1520~1604)

조선 말기 경허(鏡虛,1846 ~1912)도인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문집이나 법어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도를 한번 맛보고 죽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구하다 죽고 구하다 죽고, 끊임없이 죽기만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구하다 돌아 가셨고, 우리 후손들도 구하다 죽을 것입니다.  이것이 속생(俗生)입니다.

50살이 넘어도 아직 인생이 많이 남았으니까, 구하다가 허망하게 죽는 것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나를 찾아서 내가 나를 보면 도의 세계가 불가사의하고 오묘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종범스님 법문집 <오직 한생각> 중에서 '俗生과 道生'에서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