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진정한 상태 안에 머무르십시오.
방문자 : 저는 오랫동안 옴 소리 명상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왼쪽 귀에서 늘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나타스와람(파이프 담배)을 피우는 소리 같습니다. 바로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립니다.어떤 빛나는 환영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하리쉬 : 소리를 듣거나 환영을 보려면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나'입니다. "나는 누구인가?"하면서 그것을 찾아보면 주체와 대상들이 한데 합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어떤 탐구도 할 것이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생각이 일어날 것이고, 사물들도 나타나고 사라지겠지요. (그럴 때 사물들은 상관하지 말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무슨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대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만일 그 주체를 알면 대상들은 주체 안에 합일될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마음을 대상들에 적용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상들은 나타나고 사라지지만, 자기(진아)로서 계속 남는 것이 자신의 참된 성품이라는 것을 그대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상들이 사라지면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즉 마음이 대상들에 속박되어 있으므로 그 대상들이 없어지면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일시적이고 자기는 영원합니다. 그 영원한 자기를 알면 주체와 대상이 하나로 합일되고, 두번째가 없는 하나가 빛나게 됩니다.
방문자 : 옴 소리의 합일이 있습니까?
마하리쉬 : 옴(Om)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대상들이 사라진 뒤에 남아 있는 것이 옴입니다.그것은 어떤 것에도 합일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아무 것도 보지않고, 다른 아무 것도 듣지 않고,다른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곳, 그것이 완전함입니다" 라고 하는 상태입니다. 모든 명상법은 그것을 얻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 명상법에 고착되어서는 안 되고,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여 진아를 발견해야 합니다.
방문자 : 저는 집에서 아무런 낙이 없습니다. 가족 내에서 제가 할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끝냈습니다. 이제는 손자와 손녀들이 있습니다. 제가 집에 남아 있어도 됩니까, 아니면 집을 떠나 어디로 가 버려야 합니까?
마하리쉬 : 지금 있는 곳에 그냥 머물러 있으십시오. 그러나 그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대가 집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집이 그대 안에 있습니까? 그대와 별개의 어떤 집이 있습니까? 만약 그대 자신의 처소에 자리잡게 되면, 모든 것이 그대 안으로 합일된다는 것과, 그런 질문들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방문자 : 예, 그러면 저는 집에 머물러 있어도 될 것 같습니다.
마하리쉬 : 그대의 진정한 상태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閑談]
위에서도 마하리쉬가 말씀하셨는데, 대략 만트라 수행은 스스로 어떤 소리음(옴 또는 라마 등)을 입으로 내면서 그 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수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신성한 신의 이름 또는 신의 소리를 외면서 절대신을 염(念)하는 만트라 수행도 있고, 또한 단순히 소리음만을 마음으로 관하는 만트라 수행도 있습니다. 대개 만트라는 그 음들이 어떤 말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 말뜻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고 단순히 소리음 자체를 자기 입으로 외면서 스스로 그 소리를 듣는 자를 관하는 수행도 있습니다. 자기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듣는 성품을 관(觀)한다는 것은, 소리를 듣는 자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탐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에서도 라마나 마하리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나'이므로, "나는 누구인가?하고 내면을 향해서 나를 탐구해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만트라 수행에서는 '옴'이라는 소리를 입으로 내든가, 아니면 마음으로 옴소리를 생각하면서 이 옴소리를 듣는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탐구합니다.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안다는 것은 분명히 듣는 자가 있기 때문에 소리가 있는 것이죠. 듣는 자가 없으면 소리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양없는 듣는 자가 무엇인지를 의심을 가지고 항상 탐구하면 자아탐구나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소리라는 것도 소리없음에서 나온 것이므로, 소리(대상)가 있을 때는 소리없음(듣는 성품)도 동시에 함께 존재합니다. 소리없음(듣는자)은 소리있을 때(대상)도 있고 소리가 없을 때(대상)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트라 명상 또는 소리명상은 초기에는 이 소리를 소리없음(듣는자)의 배경입장이 되어 관(觀)하면 소리가 소리없음 속으로 합일됩니다.
모든 소리는 침묵에서 나와서 침묵 속으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소리없음과 동일시되었을 때에 소리도 자연히 소리없음과 합일되어 삼매상태에 들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소리와 소리없음을 넘어서 그 공통 배경인 의식의 뿌리(識,원인체 삼매)에 머물게 되며, 다시 그 의식의 뿌리를 관(觀)하는 단계를 넘으면, 그 다음 각(覺)이 밝아오게 됩니다. 이 각(覺)이 소위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핵점입니다. 모든 의식의 뿌리이지만 절대바탕의 입구이기도 합니다. 구도자가 이 "내가 있다" 핵점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다가 보면 어떤 기회에 그 자체 속으로 합일(絶大自覺)되는데, 이때에 관(觀, 주시)조차도 사라지는 경지에 오게 되는데, 그것이 절대진아상태라는 것입니다. 소리 -> 소리없음 -> 식(識)삼매 -> 각(覺) -> 절대자각(自覺), 보편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구도자들 사이에 대략 체험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알려져 있는데, 만트라나 염불 수행을 열심히 하다보면 식(識,원인체)삼매 단계까지는 누구나 잠깐 잠깐 체험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식(識)삼매에서 각(覺) 단계로 넘어가는 언덕이 굉장히 높고, 각(覺)에서 覺 스스로가 그 자체 속으로 자각합일되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다는 것입니다.
수행 중에서 가장 고급수행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깨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래의 자기 집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워낙 원습이 깊히 뿌리박혀 있어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고요하게 유지하는 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라도 가능한한 분별심을 일으키는 자세를 취하면 6식의 작용이 활성화되어 망상이 폭주하여 마음이 조용해지질 못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인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목적도 어떻게 하면 생각의 움직임을 고요하게하여 마음이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평안하게 안정되기 위한 목적인데, 이런 글을 읽고는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고 분별심을 일으켜서 인터넷상에서 공개적으로 옳다 그르다는 비판논쟁을 유발하거나 마음 속으로 기분이 상하거나 지적인 갈등을 일으킨다면 아예 이런 글을 읽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공개적으로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같은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덧글은 올리시지 말기 바랍니다.
-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