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16. 12. 9. 11:46



대저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첫째는 무상(無常)함이 신속해서

생사(生死)의 일이 매우 큰 것을 두려워해야 함이로다.

그러므로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오늘은 비록 이 몸을 보존한다고 하나 내일은 또한 보존하기 어렵다"

라고 하였으니, 굳은 생각을 가져서 조금도 방일하거나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온갖 세상일에 조금도 간섭하는 뜻이 없이 털어 버려서

오직 고요하고 함(爲)이 없이 지내야 이에 옳다고 할 뿐이로다.

만약 이 마음과 경계(境界)가 서로 흔들려서 마치 마른 나무에 서로 불 붙는 것과 같이

번잡스럽게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 버린다면

이것은 특히 화두(話頭)를 드는 분상(分上)에서는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지옥의 업장(業障)만 점점 더 할 뿐이로다.

가장 요긴한 것은 모든 세상 일에 무심하고 마음에 일이 없으면

곧 마음의 지혜가 자연히 깨끗하고 맑음이로다.

모든 일이 다 마음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선(善)한 일을 지으면 천상(天上)에 태어날 것이요,

악(惡)한 일을 지으면 지옥에 빠져 나타날 것이며,

이리와 같이 포악하면 범과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와 곤충이 될 것이며,

경망(輕忙)스럽게 행하면 나비로 태어 날 것이니,

그러므로 고인(古人)께서 이르기를 

"다만 한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만 가지 형상(形相)이 나타난다"

라고 함이로다.

대저 그 마음을 비워서 깨어있음(惺惺)을 순일(順一)하게 하여

흔들리지도 않고 혼미(昏眉)하지도 않게 하여 허공과 같이 텅 비었다면

다시 어느 곳을 향하여 생사(生死)를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보리(菩提)를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선악(善惡)을 찾을 것이며,

어느 곳에서 수지(受持)하고 범(犯)함을 찾겠는가.

다만 이것은 활발하고 역력(歷歷)히 밝아서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꿰뚫었다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따르지 않고

멸(滅)해도 멸함을 따르지 않으며

부처(佛)이라는 이름도 짓지 않고

조사(祖師)라는 이름도 짓지 않으며 

크게는 삼천대천세계를 감싸고

작게는 조그마한 티끌에도 들어가며

또한 능히 부처님이 되며

능히 중생도 됨이로다.

또한 크고 작은 것도 아니며

모나고 둥근 것도 아니며

밝고 어두움도 아니어서

자유로이 융통(融通)해서

이와같이 철저하니

다시 조금이라도 억지로 만들어내는 도리(道理)가 아님이로다.

대저 이 불교(玄門)를 참구(參究)하는 사람은

항상 회광반조(廻光反照)하기를 힘쓰고

그것을 참구하는 마음을 쓰는데

깨어있음이 세밀하여 끊어지는 사이가 없으며

그것을 참구하는 것이 지극히 간절하여

가히 참구한다는 마음조차 없는 경지에 이르면

홀연히 마음의 길이 문득 끊어져

마음의 근본자리(本命元辰)를 밟으면

저 본지풍광(本地風光, 本來面目)이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원만한 경지(境地)에는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음이로다.

이와 같은 때에 이르면

귀(耳)로 사물의 소리를 들을 때에 이르러서

백천(百千)개의 해(日)와 달(月)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과 같으며,

눈(眼)으로 사물을 볼 때에

바다의 풍랑소리가 수미산(須彌山)을 뒤흔드는 것과 같음이니

이것은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님이로다.

이 한낱 도리(道理)는 단지 너무 가까이 있는 까닭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체득하여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로다.

무릇 현묘(玄妙)한 진리(眞理)를 참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회광반조(廻光反照)하는 법식(法式)을 착실히 알아

마음자리의 형용(形容)을 분명하고 자세히 살펴서 소홀함이 없어야 하며

거친 마음의 뜻을 씀이나 그 행동이나 그것을 행동하는 공력(功力)에 익숙해지면

실상(實相)의 진리(眞理)가 스스로 나타날 것이로다.

                                               

                                                                                          -경허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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