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방문자 : '이건 아니다 - 저것도 아니다' 이것이 구도자에 대한 (경전의) 가르침입니다. 즉, 진아(자기)가 지고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진아를 두고, 듣는 자, 생각하는 자, 아는 자 등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것을 "귀의 귀, 마음의 마음" 등으로 묘사하지요. 그러나 무엇을 가지고 '아는 자'를 알 수 있겠습니까?
방문자 : 그러나 그것은 진아가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마하리쉬 : '이건 아니다 - 이건 아니다'지요.
방문자 : 그것은 부정할 뿐입니다.
마하리쉬 : (침묵)
방문자가 (바가반이) 진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마하리쉬 : 사람은 자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는 주위에서 동물과 사물들을 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소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무엇 무엇도 아니오"라고.
만일 그 사람이 다시 "당신은 제가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면 그 대답은 " 당신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소" 입니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은 본인이 알아내야 합니다. 따라서 그대가 무엇인지는 그대 자신이 알아내야 합니다.
그대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 그대는 이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고, 에고도 아니고, 그대가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그대가 참으로 무엇인지를 알아내라." 침묵은 질문자 자신이 바로 그가 발견해야 할 진아라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자기 간택(自己 揀擇, 옛날에 왕실의 공주나 크샤트리아 집안의 처녀가 공개 석상에서 구혼자들의 무리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자를 스스로 고르던 일)에서는 처녀가 누구에게나 '아닙니다'라고 말하다가, 마침내 자기가 선택할 사람을 만나면 눈을 내리깔고 침묵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閑 談]
"나는 누구인가?"하고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나"를 탐구하는 <자아탐구>수행은, 사전에 아무 준비없이 "나는 누구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무조건 묻기 이전에, 필히 이해해야 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 나는 이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고, 에고도 아니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누구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고, 생기도,에고도 아니고, 등등- - "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모조리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그것들은 이미 마음 위에 알려진 대상들이고, 따라서 대상화 된 환(幻)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앞에 보이든가, 알려지려면 그 이전에 우선 아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몸이나 마음, 에고는 이미 우리에게 일려진 것이므로 그것들이 아는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죠.
아는 자는 주체이므로 대상으로써 알려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나 의식 위에 알려져 있는 것, 이미 알려졌던 것, 앞으로 알려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그것들은 아는 자, 아는 주체(진아)가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진아탐구를 하려면 일단은 이러한 이미 알려진 것, 그리고 지금 알고 있는 것, 앞으로 알려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내가 아니다"라는 확고한 부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몸은 우리가 지금 알려진 것입니다. 따라서 아는 자인 참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지금 우리가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도 '참나'인 아는 자가 아님을 이해합니다. 또 우리의 몸의 움직임을 지탱하는 의식의 에너지인 생기작용도 과거부터 지금도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이니깐, 그것도 알려진 대상이니깐 아는 자가 아닙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것도 우리는 항상 느끼므로 대상적인 것이므로 우리가 탐구하는 아는 자, 또는 참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진아가 '아무것도 아닌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 실제 사물이든, 생각이든, 지식이든, 상상이든, 마음으로 알려지는 것들은 대상이므로 아는 자, 보는 자, 참나가 아닙니다. 이렇게 모든 알려진 것들을 부정하고, 부정하고 나면 나중에는 "내가 있다"는 존재감만 남는데, 이 존재감도, 그것자체가 될 때는 알려진 것이 되므로 그것조차도 부정해야 됩니다.
결국은 마지막에 "내가 있다"는 존재감조차 부정하고나면 마지막에 나라는 느낌조차 사라지는 곳, 꼴깍 한번 죽음의고개를 넘어가서 "내가 있다는 느낌"마저 완전히 사라져야만 진아지를 만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라는 수행은 모든 마음의 대상화 된 것을 딜레이트(Delete, 소거)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마음 위에서 지우고, 마지막에 더 이상 제거할 것이 없을 때에, 자기 존재감(나라는 생각)마저 사라진 상태가 바로 진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아상태가 되면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이란 내가 있다는 존재감이 있는 한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그것을 넘어가면 말이 필요 없어지고, 즉 침묵상태가 되고 그 침묵상태가 바로 진아상태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유일한 실재(實在)는 그 말로 표현되지 않는 참나상태만 있을 뿐이며, 이 세상이란 것은 그 자체가 어떤 단단한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의식의 파동 움직임에 의해서 다채롭고 다양한 형상과 성질로 우리 감각기관과 뇌영상에 3차원공간과 시간의 찰라흐름(파동움직임)으로 비쳐보이는 그림자와 같은 것 뿐이지, 그 삼라만상의 형상은 실은 실재하지 않는 환(幻) 이라는 것을 깨치게 됩니다. 그런 삼라만상이 단순히 파동의식의 빛이 만들어낸 환(幻)의 그림자라는 것이 확고하게 이해 될 때 바야흐로 절대 진아상태에 안정되게 머무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법은 처음 시작하기 전에 이 " 육체도 내가 아니고 마음도 내가 아니고, 생기도 내가 아니고, - - -"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논리적으로 스스로에게 부정하고 나면, 그런 다음부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으로 단시간 내에 삼매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사전 예비수행을 생략하고 무조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을 반복하다가 보면, 그 질문만 가지고는 내면으로 깊히 파고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중간에 자아탐구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자아탐구 수행 중에도 마음에 나타나는 느낌이나 초상현상같은 체험등에 미혹되어 마치 어떤 경지까지 자기가 도달한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어 중간에 막혀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럴 때에 <이것도 아니다, 또한 이것도 아니다>하는 부정관을 활용해서 마음이나 육체상의 어떤 특이한 능력이나 체험을 겪더라도 ,<이것은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옆으로 제껴 버리며 무시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선불교에서 <무소뿔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충고가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선불교의 화두선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화두의심을 강하게 하여, 이 모름이라는 화두의심으로, 잡생각의 망상이 나오는 옆구멍을 계속 틀어 막아 버리고, 오직 컴컴하게 모름이라는 한 구멍으로만 집중하여 직선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자아탐구법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심으로 탐구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나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 - 등등>이라는 이원화 대상들에 대한 관념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부정관(不定觀)으로 미리 확고하게 다지고 난 다음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의문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아탐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기내면에 하려면, " 몸도 내가 아니다, 마음도 내가 아니다, 생기도 내가 아니다,"라고 사전에 부정하지 않으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확고하게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제대로 성립이 될려면, 필수적으로 "나는 몸도, 마음도, 생기도 아니다"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그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수행 과정에서 "나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생기도 아니다"라는 부정관(不定觀)이 확고해지면, 나중에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상태에 진입하게 되는데, 그때에 가서 다시 "나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도 아니다"라는 부정을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현재 체험하고 있는 어떤 특이상태나 눈앞에 당면해 있는 체험은 그것도 대상화 된 것이니깐, 이것마저도 또한 항상 부정되어 타파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 "내가 있다"에서 만족하고 돌아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때 옳바른 큰 스승을 만나면 최종 진아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붙잡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아무리 큰 삼매체험을 했드라도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오히려 더 의심하고 정신바짝 차려서 더 깊히 정묘하게 들어가기 위한 정밀수행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전에 이론적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여하튼 오늘의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탐구를 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나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생기도 아니고, 내가 있다는 존재도 아니다"라는 부정관으로 아주 확고하게 무장하고 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으로 탐구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 중에도 계속 마음의 느낌이나 체험에 대하여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라는 부정관(不定觀)을 함께 활용해 나가야 됩니다.
결국은 마지막에 '나'가 사라지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없어지고, 그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최종 해답을 얻는 것이 됩니다. 해답을 얻을려고 하던 자마저 사라져 버렸으므로 더 이상 해야 할 일도 없고, 탐구하던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