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이 현상계의 삶이란 미현현자(未現顯者)가 꾸는 꿈이다.

무한진인 2016. 1. 20. 10:23


질문자 : 미현현자 안에서, 자각 안에서, '내가 있다'는 느낌이 전체적 의식으로 되지만, 자기 자신 내에 속박되어 있는 의식, 이 의식을 아는 자는 그 의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진인은 모든 앎의 이전인 그 상태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어디서 왔소? 누가 여기 가 보라고 했나요?​

질문자 : 저는 호주에서 왔습니다. 전에도 한번 왔는데, 3년 전에인가 몇칠간 왔었습니다.

마하리지 : 전에 여기 있으면서 무엇인가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요?

질문자 : 예 어떤 변화를 겪었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지(知)를 얻으려고 여기에 오고 있는데, 몸과 동일시하지 않은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소?

질문자 : 예, 그런데 몸이 없는 삶의 양태는 어떤 것입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무변(無變)이오. 몸이 있는 삶은 변하고 순간적이지요. 그대의 참된 성품은, 그대가 그 의식이나 생시나 잠을 상태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오. 문제는 사람들이, 몸, 호흡,의식은 시간에 속박되어 있으며, 삶의 시작과 끝은 영원한 상태 안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일 뿐이라는 것을 진실로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오.하루가 끝날 때 그 의식은 사라질 것인데,누구도 자기가 여행하는 그 길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오. ​우리는 한 장의 티켓을 들고 인생 속으로 들어 오는데, 삶의 끝에 이르면 떠날 수 밖에 없으며, 안가겠다고 버틸 수는 없는 것이오. 삶의 시작과 끝은 시간에 속박된 티켓을 가지고 하는 잠깐의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오. 그리고 그 티켓의 쓸모가 끝나면 온 것은 무엇인든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자가 되어 그 삶의 여정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오.

질문자 : 의식이 죽음 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된다고 하는 증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하리지 : 그것은 일종의 개념이오. 실제로는 누구나 이 생의 탄생과 죽음도 직접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오.​ 


질문자 : 그것은 어떻게 일어났는가요?


마하리지 :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있겠죠?


질문자 : 예,


마하리지 : 그대는 자신이 꾸는 꿈 속에 있는데, 생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지만, 꿈이 끝나면 모두 사라지지만 말이오.


질문자 : 저는 왜 이 몸 의식 속으로 들어오게 됬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따스하고 포곤한 침대 안에서 편안하게 깊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꿈 속에서는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악몽의 상태로 그대 자신을 몰아갑니까? 이 모든 현상계는 드러나지 않은 미현현자의 꿈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오.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그것(마야)이 이 현상계의 원인이며, 그 끝에 가서는 우리가 원래상태로 복귀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일어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소.


                                                                                       -Seeds of Consciousness-


[한담(閑談)]

​미현현자(未現顯者)란 진아를 말합니다. 절대진아는 절대로 의식 상에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미현현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면에 어떤  형태로든 의식 상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에 의존된 것이고, 진실하지 않은 환상(幻想)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절대 진아에서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베단타 철학에서는 마야, 불교에서는 무지(無知)라고 부릅니다. 그 마야 때문에 "나"라는 것이 생겨나고, 육체와 감각기관을 나타내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만물을 환상그림처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그 최초의 마야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야"라는 말의 뜻은 "없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마야" 자체가 원래부터 없는 것인데, 무지에 의하여 마치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는 것이죠. 그럼 그 마야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원래 실재(實在)하는 것은 형태도 움직임도 없고 이름도 없습니다. 그것을 잔잔한 파도도 없는 고요한 바다라고 비유해 본다면, 마야의 움직임이란 바다 위에서 넘실대는 파도의 움직임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바다 자체는 전혀 움직임이 없지만, 바다 표면에서는 파도가 무시로 움직입니다. 파도의 움직임은 바람이라는 마야의 움직임으로 인해 파도가 움직입니다. 따라서 전체 한 바다 측면에서 보자면 바다는 전혀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것이 미현현자(未現顯者), 절대진아입니다. 그러나 바다 표면에서는 잔 파도들이 다채롭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파도는 수시로 움직이면서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지만, 한 바다 측면에서는 아무 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다 자체는 실재(미현현자)이고, 그 위에서 무시로 움직이는 잔 파도물결(현상계)은 환상으로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파도 물결이 어떻게 움직이든 간에 바다 자체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실은 그 환상의 파도들도 모두 한 바닷물이므로, 결국 바다와 파도를 둘로 구분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한 현상이 앞에 나타났는데, 그 현상이 앞에 나타나려면 반드시 보는 자기 있어야 합니다. 만일 보는 자가 없으면 그 현상이 거기에 나타날 수가 없죠. 따라서 어떤 현상이나 대상은 항상 그 보이지 않는 이면에 보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는 자는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진아 본체는 절대로 어떤 색갈이든 느낌이든, 체험이든, 기(氣)나 빛(광명),영(靈)으로 등 어떤 형태로도 드러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드러난 현상계의 모든 움직임을 보는 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배경에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드러난 현상계의 움직임은 바로 그 드러나지 않은 미현현자가 펼치는 파동의식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현상계는 파동의식으로 그려지는 환상의 그림자이며, 그 움직임의 파동의식을 아는 자는 파동의식과 전적으로 다르며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 알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모든 앎 이전의 바로 그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미현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모두가 이 몸으로 드러나 있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몸은 드러난 현상이고, 마음도 의식의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의식도 아닙니다. 의식의 움직임은 알려지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존재)의식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조합으로 된 것이 사람인데, 그런 것들은 모두 드러난 현상이고, 드러난 현상들은 모두가 의식으로 그려낸 환상의 그림자가 비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모양없는 주시자인 미현현자(未現顯者)이므로, 우리는 몸을 가진 사람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사람이 아니무니다. ㅎㅎ.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