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참성품을 알려면 염송(자파)수행을 해 보아라.
마하리지 : 미현현자(절대자)가 현현자(현상계)가 되자마자 이원성의 상태가 일어났고, 드러난자(현상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시간에 속박되는데, 그대가 생각하기에 내가 한 개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현현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지, 개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개인이란 상상이 만든 허황된 것이거든. 그대는 부인과 의사이고, 출생에 관한 의학을 다루고 있는데, 그 출생들을 일으킨 것은 다섯가지 원소들이지.
아이는 한두살 때 엄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엄마가 아이한테 이렇게 말하지, " 너는 딸이고, 나는 엄마다"는 식으로 , 아이는 그대까지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행위를 할 뿐이야. 나중에 아이가 얻는 모든 지식은 한 단어가 다른 단어에게 주는 것이야. 그것은 말에 기본을 두고 있어.
사람이 수술을 받으면 의식을 잃게 하기 위해 약을 쓰는데, 의식이 돌아오면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므로, 그래서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또 다른 진통제를 준단말야. 나중에는 (약기운 때문에) 배고픔조차 느끼지 못해서, 또 식욕을 높혀주는 약을 주잖아. 아이를 출생시키는 모든 것은 또 다른 약, 다섯가지 원소로 만들어진 작은 약일 뿐이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섯가지 원소로 되어 있어. 이 점이 분명하다면, 한 개인으로서의 그대가 들어갈 곳이 어디에 있겠나? 그대가 한 개인으로서 자부할만한 것이 무엇인가 ?
질문자 :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마하리지 : 있는 그대로 그대의 진아를 보는 것, 그대의 참된 성품을 보는 거야.
질문자 : 그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끊임없이 염송(자파)를 하면 돼.
질문자 : 염송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마하리지 : 염송이라는 것은 마라티어로 '보살핀다'는 뜻이야. 그대가 유지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대상을 보살피기만 하면 되지. 그래서 염송은 욕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야.
질문자 : 말하자면 수행자는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마하리지 : 수행자에게 무엇인가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을 사실이지. 스승은 그런 것들을 해탈열망자에게 주는데, 그는 이 물질적 우주 넘어에 무엇인가 있다고 여기는 첫번째 단계야. 해탈열망자는 여전히 자신의 몸-마음과 관련시키지만, 자신이 몸-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수행자의 단계로 올라가는 거야. 이 단계에서 자신이 존재성 또는 의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구. 더욱 나아가서 그는 자신이 존재성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 왜냐하면 존재성은 음식에 의존하고 그 또한 시간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야.
질문자 : 진언을 염하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으며, 만약 그것이 가치가 있다면 어느 정도나 됩니까?
마하리지 : 가치가 있구 말구. 아주 강한 집중력으로 끊어짐없이 오랫동안 진언을 염하면 의식내면의 그릇이 깨끗하게 정화되게 되어 있어, 나중에 올 수 있는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지혜의 빛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고, 망상적인 마음은 절대바탕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어 있어. 그러나 대부분은 진언을 염하다가도 차(茶)가 준비되었나 아니면, 혹시 누구한테서 온 전화벨이 안 울렸나 하는 등의 수없는 망상에 수시로 끄달리게 되지만 말야.
질문자 : 제 환자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러니 그런 의무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나, 확실하게 마음의 방향을 정해서 해야 해. 이 몸이라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아니면 환상과 같은 것인가를 알고 싶은 욕망이 아주 강하다면, 수행이 저절로 진행되게 되어 있어.
만약 그 결심이 아주 강하다면 그것이 틀림없이 올 수 밖에 없어. 그러나 물질적인 세계 속의 어떤 것을 갈구한다면 그것은 오지 않아. 진실한 구도자라면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명상을 하게 된다구. 육체 안의 그 존재성(의식)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대가 명상하는 어떤 신도 볼 수가 있다는 거야. 이것이 바로 존재성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호를 염하는 것이든, 다른 어떤 수행을 하든, 그렇게 열정적으로 수행할 시간 여유를 내지를 못해. 그것은 결국 자기 개인성을 잊어버리기 싫기 때문이라구.
질문자 : 그 말씀은 제가 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까? 세상을 포기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핵심적 문제는 누가 그렇게 하느냐 거든. 그대를 잉태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전 우주의 원초적 씨앗이란 말야. (163)
-Seeds of Consciousness-
[한담(閑談)]
맨 윗부분 마하리지 말씀 중에서, "나는 현현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지, 개인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라는 문장에서 <현현자>라는 것은 드러난 이 전체 현상계의 뿌리인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뿌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적 자아의식을 말하는데, 전체 현상계가 나온 뿌리이기 때문에 현현자(現顯者)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진아를 알려면 마하리지는 염송 수행을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마하리지가 실지 수행해서 진아를 깨달은 수행법입니다. 제가 어떤 책에서 보았는지 잘 생각이 안나는데, 마하리지가 어떤 동네청년에 이끌려서 스승인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에게 갔다가,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법문을 들은 후에 스승으로부터 만트라 하나를 받습니다. 그것이 < 따뜨 뜨암 아시(그대가 그것이다)> 라는 진언인데, 마하리지는 그것을 한 이삼년 동안 가지고 진언염송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체가 바로 자신이며, 육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수준까지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우주적 자아의식 경지에서 명상시를 지으며 그 우주적 의식의 지복을 즐겼는데, 어느 날 스승이 시 따위 나부랭이를 전부 버리라고 강력한 훈계를 받고는 그냥 쉬는 것으로 "내가 있다"존재의식의 경지를 초월하여 절대진아를 깨쳤다고 합니다.
위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만트라 염송이나 염불 수행이 초보자에게는 수행하기가 가장 수월하고, 그 효과도 비교적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나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계통의 수행체계를 삼뿌라 수행계통이라고 하는데 원래 이 수행체계가 스승이 제자에게 '너는 육체가 아니고 모양없는 진아다'라는 내용의 가르침을 강력하게 이론적으로 설명해 준 다음 간단한 큰 말씀 , 즉 예를 들면 "따뜨 뜨암 아시(그대가 그것이다)" 또는 "소함(내가 그것이다}", " 아함 부라마스미" 등 옛부터 일정하게 정해진 큰 말씀 진언 중에서 하나를 주고, 그것을 계속 붙잡고 외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제자는 그 진언을 몇년이고 계속 반복해서 외우면, 서서히 제자의 내면이 정화되면서 깨달음의 지혜가 올 수 있는 조건을 내면에 만들어 줍니다. 즉 마음의 거울이 진언을 외우면서 서서히 밝아지는데, 마치 거울에 비친 그림자상을 계속 반복해서 또렷이 보면 결국 맑은 거울면도 자각하게 되는 원리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진언자체를 외면서 동시에 그것을 듣는 자각수행을 하면, 진언 소리자체는 이원화된 대상의 그림자 경계이지만, 그 경계가 비쳐지는(듣는) 경계없는 진아의 거울면(듣는자)는 소리자체가 생기는 그 바탕이므로, 결국 오래 수행한다면 그 진언소리를 듣는 모양없는 진아바탕을 자각하게되고, 그 듣는자 바탕을 자각하게 되면 진언소리의 경계도 동시에 녹아 없어져, 전체가 진아 바탕이 되는 원통(圓通)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엄경에서 관세음보살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금강경 또한 한 마디로 "그대가 모양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진언수행 뿐 아니라, 다른 경계를 이용해서 하는 모든 수행이 거의 이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능엄경에는 25원통이라는 25가지 수행법이 나오는데, 이 25가지 경계가 모두 현상화 된 대상경계이지만, 이 경계를 밟고 넘어서서 결국 진아 즉 여래장 바탕을 자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진언수행도 불교의 염불수행이나 티벳불교의 만트라 수행과 형식은 다 같은 수행법입니다. 만트라,진언,염불 수행으로 일단 1차로 현상계의 뿌리인 "내가 있다"앎의 뿌리에 도달한 다음에, 다시 무위(無爲)수행으로 절대진아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무위 수행은 수행이라기 보다 '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있는 그대로 있는다"라고 보통 표현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수행자는 우선 쉬운 염불수행이나 진언, 만트라 수행을 열심히 하다가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 후에는 수행 아닌 수행으로 진아바탕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수행도 처음에는 쉬운 염불수행으로 시작해서, 염불수행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자각수행을 동시에 하는 수행법도 있으며, 또한 처음에는 염불수행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여 "내가 있다"는 우주존재의식수준까지 이르른 다음에,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자아탐구법이나 화두를 붙잡고 간화선 수행을 한다면 좀 더 능률적인 수행의 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 봅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