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다"앎은 무형상이고, 전체에 펼쳐져 있는 우주의식이다.
질문자 : 마음의 본래 형상과 무형상이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면 어떤 빛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마하뜨 따뜨와를 통과한 진아의 빛입니다. 그것을 우주적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형상입니다. 그 빛이 에고 위에 비치면 거기서 반사되고, 그러면 육신과 세계가 보입니다. 이 마음이 본래형상입니다. 대상들은 이 반사된 의식의 빛 안에서 나타납니다. 이 빛을 즈요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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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의 요지>(자기 탐구) 책에 사람이 한번 진아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단순히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해탈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는 계속 원습의 희생자로 남아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이 진인의 깨달음과 같은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왜 그 깨달음의 효과 간에 차이가 있게 되었는지를 스리 바가반께 여쭈었다.
마하리쉬: 그 체험 자체는 동일합니다. 누구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아를 체험합니다. 범인의 체험은 자신의 잠재적 습에 의해 가려져 있는 반면, 진진의 체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인의 진아체험은 또렷하고 영구적입니다.
수행자는 오랜 수행에 의해 실재에 대한 일견(一見)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은 한 동안 생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원습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지고, 따라서 그 체험도 별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해 오던 성찰과 일여내관을 계속하여 모든 장애를 소멸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실재하는 상태 안에 영구적으로 머무를 수 있게 됩니다.
질문자 :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 범인으로 남아 있는 사람과, 일견을 얻고 나서도 무지로 돌아가는 사람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마하리쉬 : 후자의 경우에는 어떤 자극이 늘 남아 있어서 그가 더 노력하게 되고, 그리하여 마침내 그 깨달음이 완전해 집니다.
[한담(閑談)]
위 본문 중에서 맨 윗부분의 대화에서,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면 어떤 빛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마하뜨 따뜨와를 통과한 진아의 빛입니다> 라는 말에서, 어떤 빛이라는 것은 바로 "내가 있다" 앎의 뿌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앎의 뿌리이므로 형상없는 무(無)입니다. 우주적 존재의식을 말합니다. 대지성(大知性)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빛이 에고 위에 비치면 거기서 반사되고, 그러면 육신과 세계가 보입니다>에서, 그 "내가 있다"앎의 순수존재의식이 에고를 비친다고 했는데, "에고"는 "개인성"을 말하고, 개인성은 육체 동일시 의식을 말하므로 "나라는 생각(자아의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내가 있다"앎의 우주적 순수존재의식이 "개인에고성" 을 비추게 되면, 육체동일시 의식이 반사되므로 그로 인해서 육체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육체와 세상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뜬 생각하면 육체가 먼저 생기고 육체 동일시에 의해서 에고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여기서는 먼저 순수존재의식(뿌리:8식)에 의해서 존재의식의 줄기(자아의식:7식)과 다음에 잔가지(전6식), 그 다음에 잎파리(전오식)이 생기는 순서로 되고, 마지막으로 육체와 세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잠을 8식으로 비유해서, 8식이 깨어나면서 7식을 거쳐 6식과 5식이 생기는 동시에 육체가 드러나고, 그 다음에 세상이 나타나는 순서를 말한 것 같습니다. 파동성으로 말하자면, 움직임없는 절대 본체에서 아주 미세한 순수존재의식이 생기고, 그 다음 더 거치른 파동의식인 7식(자아의식), 더 거친 파동의식인 6식, 그 다음 더 거치러서 물질적 파동에 반응하는 5감각식이 생기면 비로소 육체형상과 세상의 경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를 통해서 반사의식이 나타난 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형상이 없는 우주의식인 "내가 있다"앎의 뿌리가 육체 감각기관을 통과해서 육체 동일시된 마음으로 축소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8식에서 반사된 자아의식(7식)에 의하여 이원화 분별마음이 생겼는데,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보통 사람의 마음입니다. 분별마음에서는 "나"라는 에고를 보는 주체라고 여기고, 마음과 감각대상에 나타난 상(相)들을 "타자(他者)라고 여기므로, 주체와 대상으로 나눠지는데, 사실 여기서 주체와 대상이라는 것은 절대 본체나 존재의식의 뿌리 입장에서는 원래 없는 환(幻)과 같은 것이죠. 원래는 전체 우주 자체가 "나"인 하나(大我)인데-(이때는 나라는 생각이 없음), "나(에고)라는 생각"에 의해서 가상의 주체와 대상, 즉 자기와 남(他者)이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외톨이가 된 에고는 개인의 생존경쟁,소유, 욕망, 갈등, 고통이 일어나서 삶이 고통과 투쟁의 무대가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알 수없고 모양없는 "내가 있다" 앎의 뿌리는 전체 우주적이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알 수 있는 "나라는 생각"의 느낌은 육체 동일시된 개체 에고의 마음입니다. 우리들 범부는 바로 이 마음을 기반으로 삶을 살아가지만, 깨달은 도인들은 절대바탕에 한발, 우주적 자아의식에 한발을 각각 걸치고서 남은 생을 살아 간다고 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