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능엄경 공부(42)

무한진인 2015. 2. 23. 19:52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42회]

 

6-4-4. 설미계(舌味界)가 곧 여래장

[본문]       

[阿難又汝所明으로 舌味爲緣하야 生於舌識하니 此識爲復因舌所生이라

爲界 因味所生이라 以味爲界 ]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혀와 맛이 연(緣)이 되어서 설식(舌識)이 생기는 이니 이러한 식(識)이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혀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맛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해설]

혀와 맛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맛을 아는 식(識)이 생기는데, 이러한 맛을 아는 식(識)이  혀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맛으로 인해서 생긴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본문]

[阿難若因舌生인댄 則諸世間甘蔗烏梅 黃連石鹽 細辛薑桂 都無

하니 汝自嘗舌하라 爲甛爲苦 ]

 아난아! 만약 맛을 아는 것[舌識]이 혀에서 생긴다면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소금과 세신과 생강과 계피는 모두 맛이 없어야 할 것이다. 너는 스스로 너의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해설]

​감자는 사탕 만드는 무우로서 단맛이 나고, 오매는 매실같이 신맛을 내는 것이며, 세신은 약풀로서 매운맛이 나는 것인데, 만일 혀에서 맛을 아는 것이 난다면 단맛, 쓴맛, 매운맛 등 여러가지 맛들이 있을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맛을 아는 성품이 혀에서 난다면, 혀가 스스로를 어떻게 맛을 볼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눈이 눈자신을 스스로 보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본문]

[若舌性苦인댄 誰來嘗舌 舌不自嘗이어나 孰能知覺이리요 舌性非苦인댄

어니 云何立界리요 ]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았겠는가? 혀가 스스로 맛보지는 을 것이니 무엇이 알고 느꼈겠느냐? 혀의 성질이 본래 쓴 것이 아니라 담담하다면 맛 자체가 생길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계(界)를 세울 수 있겠느냐?

[해설]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의 맛을 봐야지 알지, 혀가 스스로를 맛보지 못할 테니, 혀에서 맛을 아는 것이 나온다면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혀의 성질이 본래 쓴 것이 아니라-는 말은, 혀가 쓰지 않은 것으로 모든 맛(단맛,신맛, 등등)을 대신하는 말입니다.

즉 혀의 맛이 쓰거나 달거나 시거나 등 어떤 맛도 없다면, 혀에서 맛 자체가 나오지 않을 것이므로  맛을 느끼고 아는 설미계(舌味界)가 작용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若因味生인댄 識自爲味이니 同於舌根 應不自嘗인달하야 云何識知是

리요 ]

 만약 설식(舌識)이 맛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는 설식이 스스로 맛이 된 것이다. [舌根]가 스스로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어떻게 설식이 맛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느냐?

[해설]​ 

만약 맛 자체에서 아는 성품인 식(識)이 생긴 것이라면, 식(識) 그 자체가 맛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경우도 혀가 스스로를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맛에서 나는 식(識)이 곧 맛인데 어떻게 맛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식(識)이 맛을 보고서야 알텐데 혀가 혀를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식(識)이 곧 맛이니까 맛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맛에서  맛을 아는 식(識)이 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又一切味非一物生이라 味旣多生인댄 識應多體 識體若一하고 體必味生

鹹淡甘辛 和合俱生 諸變異相 同爲一味하야 應無分別이니 分別旣하면

則不名識어늘 云何復名舌味識界리요 不應虛空 生汝心識이니라 ]

 또 가지가지의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지 아니했듯이 맛이 이미 이와 같이 여러 지에서 생겼다면 그에 따른 식(識)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식(識)의 체(體)가 하나이고, 그 체는 반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과 화합(和合)으로 이루어진 것과 본래부터 갖추어진 것[俱生]과 가지가지 변하고 달라진[變異] 모습이 다 한 맛이 되어 전혀 분별할 수 없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이미 분별이 없으면 식(識)이라 부를 수 없는데, 어떻게 다시 설미식계(舌味識界)라 부를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허공에서 너의 심식(心識)이 생겼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설]

​또 아는  식(識)이 맛에서 난다고 하면 맛이 여러가지 종류로 다양한데, 그 다른 맛마다 식(識)이 다 있을테니, 그에 따라서 식(識)이 여러 개의 몸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식(識)이 하나라고 하고, 반드시 맛에서 난다면, 달고 짜고 매웁고 단백한 맛과 그대로 있는 맛이 서로 뒤섞인 맛과 본래부터 있는 변하지 않는 맛과 여러가지로 합성되어 변하여 달라진 맛등이 모두 단일한 맛이 되어 분별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식(識)의 몸이 하나이니까, 식(識)의 몸에서 맛이 난다고 하면 맛이 하나이어야 할테니, 그렇다면 여러가지 다양한 차별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분별하는 것이 식(識)의 작용인데 맛이 하나만 된다고 하면 분별이 없을 것이니 식(識)의 분별작용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식(識)이 있어서 단맛, 쓴맛을 분별해야 되는데 분별하지 않는다고 하면 무엇을 가지고 식(識)이라고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심식(心識)이 생겼다고 애기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식(識) 자체가 나온데가 없이 허망한 것이라는 말씀을 한번 더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舌味和合인댄 卽於是中元無自性이니 云何界性하리요 ]

 혀와 맛이 화합하여 맛봄이 생겼다면 이 가운데 어디에도 원래의 자성을 세울 없을 것인데, 어떻게 계(界)가 생기겠느냐?

[해설]

따라서 혀와 맛이 화합해서 맛을 아는 성품이 생겼다면, 그 아는 식(識)이 두 군데 중 어딘가에서 뚜렸하게 나온데가 확실치 않으므로 맛을 아는 성품의 자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설미계(舌味界)가 형성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是故當知하라 舌味爲緣하야 生舌識界거니와 三處都無하여 則舌與味及

界三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

 그러므로 응당 혀와 맛이 연(緣)이 되어 허망한 설식계(舌識界)를 내거니와 삼(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혀와 맛 그리고 설미계(舌味界)의 셋이 그대로 인연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해설]

따라서 혀와 맛이 서로 관계해서 허망한 설식계(舌識界)를 내지만, 혀, 맛, 설미계, 이 셋이 모두 허망한 현상(相)이며, 그 본래부터 있는 성품(性) 자체는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이라는 것입니다.

* 무한진인이 덧붙임

이 능엄경에서,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현상과 작용이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 묘진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능엄경 특유의 논리적 방법으로 설명이 전개되고 있지만, 사실 이해하는 사람은 잘 이해하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왜 그러한 능엄경에서만 쓰는 이상하고 독특한 논리를 전개해 가다가 일방적인 결론으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므로 여래장 묘진여성이다>라고 결론을 내버리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품는 분도 많고, 또 어떤 분들은 능엄경에서 그렇다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그런 줄 알아야지, 그냥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냥 넘어가자 !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길을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 현상 그 자체가 모두 인연으로 생긴 것이고, 또한 어떤 단일체의 물건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수백가지 다른 조건들이 서로 인연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모양과 이름이 나타나지만, 실은 새로 탄생된 것이 아니라, 이름과 모양만 바뀐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잠깐 베단타 계통의 깨달은 스승인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말씀을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 자연에서는 두 가지 사물이 결합되면 제3의 어떤 새로운 것이 산출된다는 것이 하나의 일반 원칙 또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실 한오라기가 꽃을 만나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화만, 즉 꽃목걸이가  만들어 진다. 꽃목걸이가 존재하게 되면 이내 그 꽃목걸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 만났던 원래 사물들의 이름마저 사라진다. 그리고 꽃목걸이는 그 자신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꽃'과 '실'이라는 명칭은 소멸되고 '꽃목걸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사용되며, 그 새이름과 함께 다른 행위들이 계속 일어난다. 흙과 물이 만나서 진흙이 생기면 '흙'과 '물'이라는 명칭은 소멸되고 '진흙'이라는 새로운 모양과 이름이 생긴다. 또한 진흙과 나무형틀과 사람의 노동이 연(緣)이 되어 벽돌이 만들어 진다. 이 경우도 벽돌이 만들어지면 그 벽돌을 만들 때에 원료들인 진흙과 형틀과 사람의 노동은 잊어지고 오로지 벽돌의 모양과 벽돌이라는 이름만 남게 된다. 그와 흡사하게 돌, 벽돌, 진흙 그리고 석공이 한데 모이면 '벽'이라는 제3의 물건이 우리 눈앞에 서면서 돌, 벽돌, 진흙과 석공은 우리의 시야에서 그냥 사라진다.

지(知)와 무지(無知)가 결합하면 '지성(知性)'이라는 특수한 것이 생겨나고, 이 지성을 통해서 세계와의 접촉이 나타난다.

금과 세공인이 한데 모이면 장신구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제3의 사물이 산출된다. 그 장신구가 보이면, 금과 세공인은 잊어진다. 사실 누군가가  금 속에 '장신구'라고 하는 것이 있는지 알아내려고 해 보면, 금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금은 건드리지 말고 장신구를 가져 오라고 하면 그가 무엇을 가져 올 수 있겠는가? (그것이 금인 줄 알면) 우리가 장신구라고 부르는 그 사물은 그냥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브라만과 마야(幻)의 결합에서 '나'라는 도둑(에고)이 생겨나서 당당하게 '나'라고 말하고, 고개를 치켜들고 브라만과 마야 둘 다에 대한 지배권을 선언한다. 이 '나' 곧 에고는 석녀(마야)의 아들이지만, 전 우주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든다. 만일 우리가 이 '나'의 부모를 관찰해 본다면, 그들은 그런 자식을 낳을 수가 없다는 것시 분명하다. 그 자식의 어머니는 마야인데, 그녀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마야의 자궁에서 '나'가 나온 것이다. -후략. <진아 깨달음의 마스터 키>에서 일부 발췌] 


위의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진아 깨달음의 열쇠>라는 글에서 발췌한 글을 읽어 보시면 이 현상세계와 나라는 것은 실제와 환(幻) 사이에서 나타난  원래부터는 없었던 새로 나타난 환(幻)인 것이죠.

다시, 능엄경 논리식으로 "금목걸이가 생겨나온 곳"을 추적하여 풀어 보자면, 금목걸이는 금과 금세공인의 기술이 조합되어 탄생된 것입니다. 따라서 '금목걸이'라는 이름과 형상은 "금"속에서 나왔는가 찾아 보겠습니다. 만일 금 속에서 나왔다면 이 세상 모든 금이 목걸이 모양과 비슷해야 되는데 "금"은 어떤 정해진 모양이 없죠. 그래서 목걸이 모양과 이름은 금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또 세공인의 솜씨에게서 나왔다면 세공인의 솜씨는 어떤 구체적인 물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정한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세공인의 솜씨일지라도 금이라는 재료가 없으면 금목걸이 장신구와 그 이름이 만들어 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금목걸이라는 그 형상과 이름의 존재는  금이나 금세공인, 둘 다 어디서 뚜려하게 나온데를 찾을 수가 없어서 허황한  환(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래장 묘진여성은 앞에서 나왔듯이 <見은 어딘가로 다시 돌려 보낼 수 없다>는 원리에 적용해 보자면, 그것이 나온 고향으로 돌려 보낼 수 없으면 이것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이라는 공식을 적용해서, 금 목걸이라는 장신구의 형상과 이름은 그 형상은 비록 인연으로 나온 것처럼 보일지언정, 그 모양과 이름은 도로 돌려 보낼 데가 없으므로, 결국은 본래 성품은 여래장 묘진여성임임이 증명된다는 것이 여기 능엄경식의 논리구조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참고 삼아 위의 능엄경의 오온부터 시작해서 육입,십이처, 십팔계, 7대, 가 모두 여래장임을 설명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위와 같이 이야기한 논리구조로 대입해서 따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 동안에 < ~가 인연도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이다>라는 것에 대하여 뭔가 아리송하여 이해가 잘 안되었던 구절들이 있었다면, 이런 방식으로 파고들면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좀 될 겁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