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29)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29회]
6. 여래장
[원문]
[阿難汝猶未明一切浮塵인 諸幻化相이 當處出生하야 隨處滅盡하나니 幻
妄稱相이니라 其性眞爲妙覺明體니 如是乃至五陰六入과 後十二處하야
至十八界의 因緣和合하야 虛妄有生하며 因緣別離하야 虛妄名滅이어늘
殊不能知生滅去來가 本如來藏常住妙明不動周圓한 妙眞如性하고 性眞
常中에 求於去來速悟生死인댄 了無所得이니라 ]
아난아! 너는 아직도 가지가지로 들뜨고 장애하는 모든 허망한 것들이 그 자리
[當處]에서 출생하고 곳에 따라[隨處] 소멸하는 인연이기에 이러한 환망(幻妄)
을 생겼다 없어지는 허망한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성품은 참으로 불생불멸
(不生不滅)하면서도 묘하게 깨어 있는 밝은 것[妙覺明體]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오음․육입․십이처․십팔계가 다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 생멸거래가 그대로 본래 여래장(如來藏)의 항상 머물러 묘하
게 밝고[常住妙明]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이 두루 원만[不動周圓]한 묘진여성
(妙眞如性)임을 알지 못하고, 성품이 진실하고 항상한 그 자리에서 거래(去來)․
미오(迷吾)․생사(生死)를 구하려하니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해설]
<가지가지로 들뜨고 장애하는 모든 허망한 것들>에서, 이러한 허망한 相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말합니다. 즉 다음부터 부처님이 낱낱이 밝히실 오음(五陰), 육입(六入),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로 이루어진 현상세계의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요소들을 말합니다. 부진(浮塵)이란 떠다니는 먼지라는 뜻이고, 환화상(幻化像)란 거짓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니깐, 일체 만물이 모두 부질없고 허망한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허망한 상(像)들은 그 자리에서 나서 기약없이 아무 때고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허망한 것들이 그 자리(當處)에서 출생하고 곳에 따라(隨處) 소멸하는 인연이기에 이러한 환망(幻妄)을 생겼다 없어지는 허망한 현상이라고 한다>에서, '그 자리(當處)에서 출생한다'-는 것은, 어디 딴데서 온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곳에 따라 소멸하는 인연이기에(隨處滅盡)'-는 가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문장을 합치면 결국 내왕거주(來往去住)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별업망견(別業妄見)에서 보는 등불 주위의 원그림자나 동분망견(同分妄見)에서보는 특별한 천체현상만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상(相)이 전부 허망하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 세상 삼라만상이 다 온데가 없고 , 가는 데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있었다,없어졌다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환망(幻妄)은 상(相)이라고 하는데, 모양있는 것이 다 환(幻)이라는 것입니다. 인연이다, 자연이다, 하는 것은 모두 모양있는것을 가지고 따지는 말이며,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묘명본각(妙明本覺) 자리는 인연, 화합, 자연, 비자연이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라만상의 상(相)은 허망(虛妄)하지만, 그 성(性)은 묘각의 밝은 본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지해야 할 것은 삼라만상의 다양한 겉보기 상(象)은 환(幻)이고, 그것들의 자성(自性)은 순수하고 밝은 각(覺)의 묘한 체(妙體)라고 해서 상(相)과 체(體)를 가려 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금반지, 금목걸이 등 장식품에서 반지나 목걸이 등 의 모양은 환(幻)이고, 금(金)자체는 본각묘명체라고 비유할 수가 있는 것이죠.
즉 환망(幻妄)은 형상있는 것을 가리키고, 우리의 본성자리는 묘각명체(妙覺明體)라는 말인데, 눈의 생병 때문에 보는 등불주변의 원 그림자도 생병 아닌 本眞覺의 見上에 나타난 것이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울에 물건이 비칠 때 거울 속에 비치는 물건은 그림자 뿐이지 실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물건 자체가 거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죠.
나타나는 형상은 환(幻)이고, 실재(實在)가 아니지만 나타난 그 자체는 거울의 면에 나타나지 딴 곳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모든 온갖 세상의 환화상(幻化象)이 나타난 그 자체는 본각명심(本覺明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金의 형상으로는 둥굴고 네모나고 등등 여러가지겠지만, 금 자체는 모양을 안 가집니다. 그런데 모양이 없으면 또 존재하지 못하듯이, 어느 體이든 그 體가 모양은 아니지만 모양없이는 또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이 우주의 온갖 것이 실질로 보아서는 금과 같은 본체이어서 크고 작은 인연, 화합이 다 떨어진 것이지만, 그 眞體가 모양없이는 나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울이 생긴다고 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영상(影像)이 들어 있읍니다. 영상이 들어있지 않은 거울은 거울이라 할 수 없듯이 모양은 다 환망(幻妄)이고, 그 자체는 진(眞)이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현상은 환먕(幻妄)이고, 우주의 본체는 묘각명성(妙覺明性)이지만, 형상이 없이는 나투지 못하기 때문에 , 모양 그대로가 自體요, 自體 그대로가 모양이다, 라는 것이죠. 모양, 허망한 상, 그대로가 자체(自體)요, 자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幻妄이니까 이 환망을 다 없애버리고 묘각명성(妙覺明性)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거울 가운데 비치는 영상(影像)을 없애버리고, 거울 자체만을 나타내려고 하면 안된다, 거울 가운데 비치는 영상(影像) 그대로가 거울 자체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영상(影像), 비쳐진 것이 실제가 아니고 환화(幻華)이긴 하지만, 그러나 거울에는 우리의 영상이 비치는 것과 같이 體와 相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화합망생(和合妄生)하는 것이 다 허망(虛妄)한 것 같지만, 그러나 그 화합망생하는 가운데 진(眞)이 있다, 진체(眞體)없이는 상(像)만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환망세계(幻妄世界)라는 것이 다 진체(眞體)를 의지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환망세계 그대로가 진(眞)이지 그걸 떠나서 다른 데에서는 진(眞)을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이건 體다, 이건 像이다, 이렇게만 인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음과 육입, 십이처, 십팔계 모두가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나다가, 인연이 떨어져 나가면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성(自性)는 항상 그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생멸거래하는 온갖 허망한 것이 여래장 묘진여성인 것을 알지 못한다고 꾸짓는 말씀입니다.
묘진여성이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거래니 깨치지 못한 범부니, 깨달은 성인이니, 나느니,죽느니 하는 것을 찾아보려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오음, 육입, 십이처, 십팔계가 다 여래장의 묘진여성임을 말씀하십니다.
6-1. 오음(五陰)이 여래장
[본문]
[阿難云何五陰이 本如來藏妙眞如性고 ]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이 본래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이겠느냐?
[해설]
먼저 오음이 여래장임을 말씀하십니다.
오음(五陰)은 다른 이름으로 오온(五蘊)이라고도 합니다. 온(蘊)은 '쌓여서 모인다'는 뜻으로 오온이란 다섯개의 다른 집합요소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원래 개인의 존재가 다섯개의 요소(色,受,想,行,識)의 집합으로 유지되고 형성되고 있다는 견해입니다.
또 음(音)이라고 하는 것은 '덮혔다, 가려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음이라는 것은 순수하고 청정한 본래의 마음자리(本覺)를 물질, 정신작용인 색음,수음,상음,행음,식음이 가로막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먹구름이 밝은 태양을 가렸듯이 본래 밝고 순수하고 묘한 진여를 오음이 들어서 가렸다는 의미로 음(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오음(五音)의 개념은 마치 베단타에서의 다섯가지 껍질(육체의 껍질,생기의 껍질, 마음의 껍질, 지성의 껍질, 지복의 껍질)과 유사한 이론인듯 합니다. 즉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가지 구성요소 자체가 진아(眞我)를 덮어씌워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전체 현상계의 구성요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색(色)은 사대인 地.水,火,風의 물질적 제요소를 말하는 것이고, 나머지 受,想,行,識이 정신작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각각 감각(感覺), 표상(表想), 의지(意持), 이성(理性)의 작용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육체,전오식,육식,칠식,팔식을 각각 의미하기도 합니다.
6-1-1. 색음(色陰)이 여래장
[본문]
[阿難譬如有人이 以淸淨目觀晴明空에 唯一晴虛逈無所有라가 其人無故
히 不動目晴瞪以發勞하면 則於虛空別見狂華라가 復有一切狂亂非相인달
하니 色陰當知亦復如是하니라 ]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게 개인 허공을 볼 때에 오직 맑은 허공만 보일 뿐, 멀리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똑바로 쳐다봄[業相]으로 인하여 눈이 피로하게 되면[轉相] 점점 더 어지러워 뿌연 모습이 되는 것처럼 색음(色陰)의 모습도 그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해설]
처음에 사람이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볼 때는 아무 것도 없는 맑은 허공만 보다가, 만일 그 사람이 허공 한군데만 뚜러지게 쳐다 본다면 눈이 피곤해져서, 허공에서 어물어물한 아지랭이같이 움직이는 허공화 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점점 커져서 상도 아닌 움직임(狂華)을 보게 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의 묘각명성자리가 피로해져서 색음이 나타나는 것도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阿難是諸狂華가 非從空來에 非從目出이니 如是阿難아 若空來者인댄 旣
從空來라 還從空人이며 若有出入인댄 卽非虛空이요 空若非空하면 自不容
其華相起滅호미 如阿難體에 不容阿難하리라 ]
아난아! 이 모든 헛보이는 광화(狂華)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나왔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며, 만약 허공에 출입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허공에서 광화가 생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해설]
그 헛보이는 광화는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허공에서 나왔다면 들어갈 때는 허공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허공에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출입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물건이지 허공이 아닐 것이고, 허공이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광화의 모양이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즉 허공이 비어 있다면 광화가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지만, 허공이 실재존재한다면 화상의 기멸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란의 체(體)에 다른 아란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즉 허공에서 광화가 생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若目出者인댄 旣從目出할새 還從目入이며 卽此花性이 從目出故로 當合有見이요
若有見者인댄 去旣花空할새 旅合見眼이라 若無見者인댄 出其翳空할새 旋當翳眼이
며 又見花時에 目應無翳어늘 云何晴空을 號淸明眼고 ]
만약 그 광화가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또 광화의 성품이 눈에서 나왔기 때문에 응당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만약 볼 수 있다면 나갈 때에 이미 허공의 꽃을 보았으니 돌아올 때에는 응당 눈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광화가 눈에서 나왔는데) 보는 성품[見]이 없다면 나갈 때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올 때에는 응당 눈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
또 허공의 광화를 볼 때에 (눈에서 이미 광화가 나갔으므로) 눈은 응당 가리움이 없(는청정한 눈이)거늘, 어찌하여 (광화를 볼 때에 그 눈을 가리워진 눈이라 하고, 오히려 허공에 광화가 없으면 그 광화가 눈으로 돌아왔을 것이므로, 그 눈은 오히려 가리워진 눈이요 청정한 눈이 아닐 것인데 허공에 광화가 없어) 맑은 허공일 때 이를 청명한 눈[淸明眼]이라 부르느냐?
[해설]
만약 그 광화가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눈은 보는 성질을 가진 것이니깐 눈에서 허공화가 나왔다고 하면 그 허공화도 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될 것인데, 눈에서 나와 다시 허공에 가서 꽃노릇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보는 작용(見)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서는 이미 허공꽃이 되었기 때문에, 돌아올 적에는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허공화가 눈을 본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죠.
그런데 만일 허공화가 눈에서 나오긴 나왔지만 허공화가 보는 작용이 없다고 한다면, 허공을 가리우는 기능은 있으니, 눈으로 돌아오게 되면 눈을 가리워야 할 것이 아니냐는 얘긴데,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눈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허공화가 있는 것을 볼 때에 허공화가 눈에서 나갔다고 한다면 눈에 있던 것이 밖에 나가서 허공화가 되었으니까, 눈에는 가리움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청명한 허공을 볼 때를 청명한 눈이라 부르느냐 >에서, 깨끗한 허공이라고 하면 눈에서 나갔던 허공화가 눈에 와 있을 테니깐 깨끗한 허공 볼 때는 청명한 눈이 아니고 예안(예眼) 되어야 할 텐데 깨끗한 허공 보는 것을 깨끗한 눈이라고 하고 광화보는 눈을 예안이라고 하니깐 눈에서 나왔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是故當知色陰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
그러므로 응당 색음의 모습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해설]
그래서 당연히 색음의 형상은 허망해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오직 여래장묘진여성(如來藏妙眞如性)이라고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오음(五陰) 가운데 색음(色陰)을 끝냈습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