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능엄경 공부(17)

무한진인 2014. 12. 5. 09:07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17)]

 

4-5. 견(見)은 되돌아 갈곳이 없다 

 

 ㅇ. 아난이 다시 의문을 제기하다.

[본문]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은 묘음(妙音)을 듣고, 이 묘명(妙明)한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참마음[常住心地]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이 반연(攀緣)하는 마음이며, 간절하게 우러러 쳐다보는 것 또한 이 마음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이를 아직 감히 본 바탕의 마음[本元心地]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고 원음(圓音)을 베풀어 저희들의 의심하는 뿌리를 뽑아 최상의 도(道)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阿難承佛悲投深誨하고 垂泣叉手하야 而白佛言我雖承佛 如是妙音하고 悟妙明

元所圓滿常住心地이나 而我悟佛現說法音現以緣心이며 允所瞻仰徒獲此心

일새 未敢認爲本元心地하니 願佛哀愍宣示圓音하야 拔我疑根歸無上道하소서 ]

[해설] 

아난이 다시 새롭게 제기한 문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원만하고 항상 변함없이 있는 마음의 본바탕(心地)을 아직도 감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난이 느끼고 분별하고, 심지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닫는 것조차도 모두 '연심(緣心)'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ㅇ. 중생의 마음은 연(緣)으로 생긴 마음이다.

[본문]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오히려 대상에 끌려가는 마음[緣心]으로 법을 듣고 있으니 이 법(法) 또한 분별의 대상[所緣]이 되어서 마침내 진실한 법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佛告阿難하사대 汝等尙以緣心聽法하니 此法亦緣이라 非得法性이니라 ]

[해설]

연심(緣心)이란 바로 분별하는 마음, 대상에 의해서 반연(攀緣)하는 마음입니다. 즉 육진경계(六塵境界)를 반연한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등이 전부 연심(緣心)입니다. 이러한 연심(緣心)은 근진(根塵,감각대상)을 반연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으며, 근진(감각대상)의 변화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입니다.이렇게 연심에 의존해서는 설령 부처님의 고귀한 법문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 진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말과 글, 소리와 의미 등에 끄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지금 부처님이 하시는 법문도 참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아난은 참법인 줄 알지만, 이것은 법을 깨닫게하는 인연(因緣)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법문하신 것을 의지해서, 스스로 수행을 해야 본법을 알게 되는 것이지, 부처님 설법이 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ㅇ. 진심(眞心)을 알지 못하면 망심(妄心)도 모른다.

[본문]​ 

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저 사람이 손가락을 통해 달을 보아야 할 터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어찌 달만 잃어버린 것이리요! 또한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을 삼았기 때문이며, 이것이 어찌 손가락만 잃어버린 것이리요! 또한 명암(明暗)도 알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손가락으로 ‘밝은 달의 성품’을 삼았기 때문에 명암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게 된 것이니 너희들이 집착함도 그와 같다.

[如人以手指月示人인댄 彼人因指하야 當應看月어늘 若復觀指하야 以爲月體인댄

此人豈唯亡失月輪이리요 亦亡其指이니라 何以故 以所摽指 爲明月故이니

亡指리요 亦復不識明之與暗이니라 何以故 卽以指體 爲月明性하야 明暗二性無

所了故이니 汝亦如是하니라 ]

[해설]

불교법문에서 그 유명한 '손가락과 달'의 비유 법문은 바로 이 능엄경 이 구절에서 비롯된 것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달은 진심(眞心)이고, 손가락은 법(法), 즉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말하자면 경전도 손가락 밖에는 안되는 것이죠. 부처님이 말씀한  방향, 즉 손가락을 가지고 우리의 진성(眞性) 자리인 달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난은 지금 손가락,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 자체에 얽매여서 깨달았다고 여기고 부처님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음성도, 부처님 그 자체도 아닙니다. 이 모두가 아난이 분별심으로 인해서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저 밖에 있는 진심(眞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어찌 달만 잃어버린 것이리요! 또한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에서, 손가락인 줄 알면 그것을 보고 달이라고 할 이유가 없는데,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은 달도 모르고 손가락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을 삼았기 때문이며>에서, 손가락은 어두운 것이고, 달을 밝은 것인데, 손가락을 달인줄 알고 있으니, 밝은 달도 모르고, 어두운 손가락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가락으로 ‘밝은 달의 성품’을 삼았기 때문에 명암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게 된 것이니 너희들이 집착함도 그와 같다.>에서,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말씀을 참법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보고 하는 것은 모두 껍때기입니다. 참 불성 참 사람이 되는 것은 이 형식을 떠난 빛과 소리와 냄새를 다 떠난 밖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 이렇게만 알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고, 참말 이것을 떠나서 우리의 불성자리를 보도록 하는 방편입니다. 경전들이 다 방편이며, 중생들로 인하여 알게끔 하게 위한 방법이지, 그것이 진리는 결코 아닙니다.  

ㅇ. 분별하는 마음은 진심(眞心)이 아니다. 

[본문]

만약 내가 법을 설할 때에 그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너의 참마음을 삼는다면 이 마음이 응당 음성을 여의고도 항상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관[旅亭]에 기숙하여 잠시 머물렀다가는 바로 떠나고 항상 머물지 못하지만 여관의 주인은 도무지 갈 곳이 없어 주인이라 하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약 참다운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것인데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마음의 그 본성까지 없어지겠느냐?

[若以分別我說法音爲汝心者인댄 此心自應離分別音코도 有分別性이라 譬如有客

寄宿旅亭하야 暫止使去終不常住어니와 而掌亭人都無所去할새爲亭主이니

亦如是若眞汝心인댄 則無所去리니 云何離聲無分別性 ]

[해설]

 <만약 내가 법을 설할 때에 그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너의 참마음을 삼는다면 이 마음이 응당 음성을 여의고도 항상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에서, 소리를 듣고서야 안다고 하면 소리가 없어지면 그 성품도 없어지는 것 아니냐, 즉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서 이것은 내 마음이다 라고 여기는 건 참 마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 다음 구절에, 부처님의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이것은 무슨 말씀이다 하는 걸 알지, 그 음성을 떠나서는 분별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깐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서 그걸 마음이라고 하면 부처님 설법이 없어지면 그 마음도 없어진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여관집에 잠깐 묵었던 손님이 볼일이 끝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여관집 주인을 찾아야 됩니다.

   

[본문]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어찌 음성을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그대가 여래의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색상(色相)을 여의고는 그 분별하는 성품이 없을 것이다. 이와같이 더 나아가 육진(六塵) 등을 전혀 분별 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닐 것이니 저 구사리(拘舍離) 들이 어리석게도 이를 명제(冥諦)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則豈唯聲分別心이리요 分別我客 離諸色相이면 無分別性이니 如是乃至分別

都無하야 非色非空일새 狗舍離等昧爲冥諦니라 ]

[해설]

<그대가 여래의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색상(色相)을 여의고는 그 분별하는 성품이 없을 것이다.>에서, ​부처님은 삼십이상(三十二相),팔십종호(八十種好)로 신체가 구족되어 있는데 그걸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더 나아가 육진(六塵) 등을 전혀 분별 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닐 것이니>에서, 눈으로 보고,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등등은 그 대상을 떠나서는 그 자체는 자성이  없고, 몸으로 지각하든 마음으로 생각하든 모두가 生과 滅을 떠나서는 없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작용하는 것도 모두가 환경을 분별하는 생멸작용밖엔 못합니다. 이 환경을 떠나서 본성자리를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비색비공(非色非空)>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을 떠나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는 색(色)이라고 할 수도 없고, 공(空)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자체가 허공과 같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설사 마음으로 가만히 좌선(禪)을 한다고 할 때 가만히 앉아서 듣고 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는 생각하는 것이니까, 즉 의심의 마음 작용이 있는 것이죠. 지금 간화선 수행도 의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니깐 다 생멸심(生滅心)작용이 있읍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불생멸(不生滅)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 부처님 자리에 나아갈 수가 있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 생멸하는 마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수행은 처음부터 마을 넘어선 자리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해탈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생멸심으로 시작해서는 참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 구사리(拘舍離) 들이 어리석게도 이를 명제(冥諦)라고 주장하는 것이다.>에서,

의근(意根, 원인체,대원인체)​, 명상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보고 듣고,느끼고, 알고, 하는 이6근의 작용이 다 없어지고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경계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의근의 작용인 생멸인데, 모든 의식작용의 멸(滅)입니다. 즉  6식의 끝은 원인체이고 원인체를 지나면 대원인체인 "내가 있다"존재의식에 도달합니다. 원인체와 대원인체도 역시 미세한 의식작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베단타 학파들은 대원인체 즉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 최종 해탈처라고 말하는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수행단체에서는 원인체의 망각상태를 마음의 본체라고 여기는 단체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원인체의 체험상태를 명제(冥諦)라고 하는 외도들에 대해서 부처님이 잠깐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원인체는 망각상태인 깜깜하다는 뜻의 명(冥)과 옳다, 적당하다,살피다 는 뜻의 제(諦)를 붙여서 명제(冥諦)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마음의 본체라고 여긴 것이 이 명제(冥諦)라는 것인데, 이것이 현대 베단타학에서는 원인체(原因體)라고 부르며, 6식의 뿌리, 또는 무지. 망각 등으로 불리고, 그 원인체를 넘어서 대원인체를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뿌리, 또는 지(知)라고 부르며, 절대진아는 그 대원인체를 넘어서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는 일부 베단타 수행단체에서 원인체를 마음의 최종바탕으로 잘못 가르친 곳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이러한 외도(베단타파 수행단체)에서 6년동안 수행(고행)을 하시면서 선정경지에 이르렀는데. 그 선정 경지가 명제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거기에서도 성이 차지 않아서 그 수행을 버리고 나서야 그 경지를 초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명제(冥諦)라는 경지가 원인체 혹은 대원인체 수준의 경지가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본문] 

이와 같이 모든 대상과의 인연을 떠나 거기에 분별했던 성품도 따라 없어진다면 그러한 너의 심성(心性)은 각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니 이를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離諸法緣하야 無分別性인댄 則汝心性 各有所還이니 云何爲主리요 ]

 [해설]

 그 외도들이 말하는 멸진정(滅盡定, 원인체 )은 멸진 때문에 생긴 것이니깐, 멸진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인가 온곳이 있다면 그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낼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망각의 원인체도 망각이라는 상태에서 왔으니, 망각으로 되돌려 보낼 데가 있다는 것이죠. 이 말은 무엇인가 돌려 보낼 데가 있다면 그것은 주인(참나)이 아니고 객진(客塵), 또는 잠깐 지나가는 손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