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금강경의 "법계와 통화(通化)한다"에 대하여
무한진인의 금강경 이야기(42)
제 19 法界通化分(법계통화분)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以是因緣 得福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이시인연 득복다부
如是 世尊 此人以是因緣 得福甚多
여시 세존 차인이시인연 득복심다
須菩提 若福德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無故 如來說得福德多
수보리 약복덕유실 여래불설득복덕다 이복덕무고 여래설득복덕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서 널리 보시한다면 그 사람은 그 인연으로 많은 복을 얻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그 인연으로 아주 많은 복을 얻을 것입니다."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을 많이 얻는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복덕이 본래는 없는 것이므로 여래가 많은 복덕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이 19분의 제목이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이라고 했는데, 전체 법계와 하나로 통해야 된다는 의미같습니다. 즉 단순히 상대적이고 현상적인 이원화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비이원적인 절대의 입장에서도 함께 보라는 의미에서 "전체 법계와 하나로 통해야 된다"라는 제목을 붙힌 것 같읍니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이 전체 우주공간에 가득찰 정도로 많은 칠보로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다면, 그 인연으로 많은 복덕을 받겠느냐"고 묻습니다.
말하자면 엄청나게 많은 귀한 보물로 물질적인 보시를 하면 복덕도 그만큼 많이 받을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죠.
이에 수보리는 답하기를 "아주 많은 복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부처님의 질문하시는 의도를 수보리가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물질적인 이원화 입장에서만 대답하니깐, 다시 부처님이 수보리의 마음자세가 이원적인 입장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하면서,비이원적인 절대 깨달음의 보리심 입장에서도 볼 수 있음을 드러내지 않고 지적해 해주시는 말씀같읍니다.
즉, 삼천대천 세계에 값비산 보물이 가득찰 정도로 많은 물질적인 보시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록 물질적인 보시이긴 하지만,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에 따라서 "내가 많은 보물로 불쌍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에고적인 자만심이 없이 무위적(無爲的)인 마음자세로 상대성이 없는 진실한 보시를 하느냐,
아니면 "내가 많은 보물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면 장래에 나한테 어떤 이득이 돌아오겠지 ! " 하는 에고적인 이기심이 가득한 유위적인 마음자세로 보시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되돌려 받는 복덕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물질적인 보시란 유위적(有爲的) 보시행인데, 물론 유위적인 보시를 하면 그 보답으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복보(福報)를 받을 수는 있겠죠.
이것은 다시 말하면 주,객 상대성의 입장에서 보는 보시와 복보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깨달은 여래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경우는 이원적인 상대성 현상이므로 "진실한 복덕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깨달음의 비이원적인 여래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얻은 바 없는 무위의 복덕(空)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가장 큰 복덕이라고 하는데, 이 공(空) 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말로는 복덕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고, 수량으로도 헤아릴 수 없지만, <진실한 복덕>이라고도 말합니다.
그 다음 문장에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보죠.
"만일 복덕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을 많이 얻는다고 말하지 않지만은, 복덕은 원래 없는 것이므로 여래가 많은 복덕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읍니다.
위의 부처님 말씀은 수보리의 대답을 은근히 꾸짖어 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즉, 맨위의 부처님의 질문에서 "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찰 정도로 많은 보물로써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다면~"이것은 이원화 세계 안에서 물질적인 보시이긴 하지만, 만일 보시하는 사람이 "내가 보시를 한다"는 "나"라는 자아감없이 진실하게 무심으로 무위적(無爲的)인 보시를 한다면, 그것은 말과 수량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위적인 복보(福報,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무아)를 받을 수도 있으며,그것은 원래부터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복보를 많이 받는다'에서 "많다" 또는 "적다"라는 등, 상대적인 언어의 표현으로 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만일 보시하는 사람이 "내가 불쌍한 사람들에게 큰 보시를 한다" 는 "내가 있다"는 자아감을 가지고 유위적(有爲的)인 보시를 한다면, 이 경우는 이원적인 상대세계 기준으로, 물질적인 복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비이원적인 입장에 있는 여래의 기준으로 볼 때에 <그런 물질적인 이원화 복덕은 원래는 없는 것>라고 딱 짤라서 말할 수가 있읍니다.
그렇지만 세간(世間)의 상식적인 관념에 따라서 "많은 복덕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뇩삼먁삽보리가 아니고, 이원성의 물질적인 상대적 결과이기 때문에, <많다> 또는 <적다>라는 상대성인 표현어를 사용해서 진실한 복보가 아님을 알려준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수보리가 "복덕이 많다"라고 한 대답을 다시 바른 관점으로 보도록 정의 내려 줌으로서 수보리의 마음자세를 다시 한번 옳바르게 교정해 주시는 말씀인 것 같읍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