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참나 찾아가는 길목

간화선 수행과정의 단계별 고찰(2)

무한진인 2012. 11. 8. 09:54

 

 

 

간화선에 대하여 한마디(4) 

 

1) 수행의 시작, 화두선택, 疑情, 動靜一如, 前六識,人忘,肉體, 色 魔軍

 

이 글의 제목이 "간화선 수행과정의 단계적 고찰"이라고 지었는데, 사실 간화선이든, 자아탐구든, 어떤 방편의 명상수련이든간에 정신수행 상의 과정과 단계라는 것은 이원화 입장에서 본성을 깨닫도록 이끌기 위하여, 앞서간 선각자들이 방편으로 내세운 개념들일 뿐이지, 실지로는 그런 과정이나 단계가 있을 수가 없읍니다.

이것은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사바세계의 강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나릇배일 뿐이고,일단 강을 건너갔으면 배를 버리게되는 것이며, 달을 보면 자연히 손가락은 잊어 버리는 것이죠. 따라서 방편은 오로지 방편적인 말일 뿐이라고 알아야 될 뿐, 방편적인 말을 실제라고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과정과 단계가 없이 즉각적이지만, 깨닫기 이전의 이원화 상태에서의 수행에는 그 과정과 단계가 따를 수 밖에 없읍니다.

마치 땅밑으로 수천길을 깊게 파들어 간들 공간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지구에서 가장 높은 수천메타 희말리아 산꼭대기를 올라간들 허공 하늘이 지하에 있는 허공과 다르지는 않습니다.

윗 그림에서 의심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각 단계에 관계없이 중심축에는 항상 절대공(空)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화두의심 자체가 바로 이 중심축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초기에는 그것을 모르고, 화두타파 후에 대각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항상 의식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방편을 이용해서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려는 우리 수행자들은  선각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길 안내 표지판들을 보면서 모르는 길을 찾아 가야합니다.

따라서 선각자들이 직접 체험해서 이루어논 여러가지 안내표지판의 내용을  명확히 이해해서 깨달음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길에 이정표로써 유용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그림에서 여러가지 예시를 든 단계별 명칭과 그 순서는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용어의 뜻이나 기능도 다소 차이가 나서 자칫 혼동될 수도 있겠지만, 대략적인 길안내판으로는 참고하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 것 같읍니다. 

단계별 명칭은 여러가지로 무척 다양하게 있지만, 여기서는 간화선 관련 책자에서 흔하게 대할 수 있는 몇가지 용어만 골라서 대략적으로 개괄해 보겠읍니다. 

 

먼저 처음 간화선에 관심을 가지고 간화선을 해 보려는 사람은 일단 간화선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기 위하여 책자를 구입해서 보겠죠. 시중 서점에 가면 간화선 기초 지식에 대한 책자들이 많이 있읍니다. 간화선에 대해서 알려면 간화선에 대한 책 뿐만 아니라, 불교경전이나 선사들의 설법집, 대담집 등을 다양하게 읽어보고, 사찰에 가서 직접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 보는 것도 좋읍니다. 요즘은 불교TV나 수많은 인터넷 불교 싸이트에서 선에 대하여 많은 글들과 스님들의 설법을 쉽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전반에 대하여 친근감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되겠지요.

 

다음에 화두를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을 하여야 하는데, 요즘엔 옛선사들의 유명한 화두는 일반사회에 다 노출되어 있고, 불교선승들은 화두를 도가 높은 스승들에게 직접 받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선사들도 흔하게 널려 있는 화두 하나를 던져 주거나 자기가 해본 화두를 줄 뿐이며, 반드시 선사들에게서 화두를 받아야만 되는 것은 아닌것 같읍니다.

물론 불교사찰의 선원 같은데서 수행을 한다면 그 선원장이나 지도 선사, 또는 다른 유명선사들에게서 화두를 받을 수도 있겠읍니다.

만일 혼자서 간화선을 수행해 보겠다는 사람은 화두를 선택하는데, "아주 모르겠다" "너무나 엉뚱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같은 답답한 궁금증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문답을 기존의 유명화두에서 고르면 됩니다.

대개 요즘 "이뭐꼬"화두를 많이 선택하는데, "이뭐꼬"화두를 선택하려면 그전에 경전공부로 이론적이나마 육체가 내가 아니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나서 "이뭐꼬"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하는 말은 선불교 화두라기 보다는 모든 종교와 철학의 근본 질문인데, 이 역시 "라마나 마하리쉬"가르침의 내용을 세밀하게 공부한 다음에 실참수행에 들어가면 좋습니다. 

화두수행은 모든 지식을 전부 잊어 버려야 된다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일으키려면 종교 전반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옳바르게 참구해 나갈 수가 있읍니다.

여기에 기존에 유명한 옛 화두를 몇가지 예시해 보겠읍니다. 이것은 간화선 수행체계에서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화두이며, 또한 오랜 세월부터 깨달은 선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화두들이라고 합니다.

 

ㅇ,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께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읍니까?"

"없다(無)"

 

ㅇ.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께 물었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ㅇ, 어떤 스님이 동산 스님께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삼베 세 근이니라"

 

ㅇ. 어떤 스님이 운문선사께 물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마른 똥막대기"

 

ㅇ. 방거사가 마조선사께 물었다.

"만법은 초월하여 홀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말해 주겠다"

 

ㅇ. 어떤 스님이 운문선사께 물었다.

"부처님이 나오신 곳이 어디입니까?"

"동산이 물위로 간다."

 

위의 예를 든 화두 이외에도 수천개의 화두가 있는데, 간화선계에서는 1700공안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전등록이라는 선사들 계보책에 1701명의 선사들이 공안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수만개의 화두가 있읍니다.

화두 공안집 중에서 벽암록과 무문관이 유명한데 이 책들에서 적절하다고 여기는 화두를 하나 선택해서 수행해도 되겠읍니다.

그러나 일단 화두를 하나 선택해서 수행하다보면 다른 화두가 더 좋아 보여서 자주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가능하면 한가지 화두로만 오래 계속해야 합니다.

좋은 화두란 자기에게 의심을 강하게 유발시킬 수 있는 화두를 말합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화두라는 선문답에서 스승의 대답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없는 답변을 하므로 왜 그렇게 이상한 답변이 나왔는지 그 의심에 집중하여 끊임없이 의심을 키우는 것이 간화선 수행입니다.

 

바야흐로 한 수행자가 화두를 하나 붙잡고 생전 처음으로 간화선 수행을 시작했읍니다. 초보자가 화두의심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간화선 수행의 요령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참고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수행자가 수행하면서 지나가는 과정을 간단 간단하게 그려 볼 예정입니다.

간화선 수행책자로써는 불교 조계종에서 출판한 "간화선"이라는 책자와 기타 "간화정로" "친절한 간화선"등 수없이 많으며, 간단하고 쉽게 볼 수있는 것으로 일타스님의"선수행의 길잡이"같은 수준의 작은 책자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

전번회에 간화선 수행과정에서의 단계에 대한 명칭을 다시 여기에 복사해 놓았읍니다.

간화선 용어             생시,잠,꿈 구별       유식적구분       없어짐(忘,空)구분

의정(疑情)               동정일여(動靜一如)  前6識              인망(人忘,人空)

의단(疑丹)               몽중일여(夢中一如)  7말라식           법망(法忘,法空)

은산철벽(銀山鐵壁)   오매일여(悟昧一如)  8아뢰아식     인법망(人法忘,人法空)

오도(悟道)               여여(如如)             여래식(如來識)  진무(眞無,眞空)

 

아드바이트 베단타 구분                                 반야심경

육체(肉體)                                                   색(色)

미세체(微細體-생기,마음,지성)                    수상행(受想行)               

원인체(原因體), 초원인체(超原因體-뚜리아)      식(識)

절대진아(파라부라만,뚜리아따따)                    공(空) 

 

도표의 여러 단계의 명칭에 대해서 다시 용어별로 구분 정리해 보면,

1. 간화선 수행용어 : 의정 -> 의단 -> 은산철벽 -> 오도

2. 생시,잠,꿈으로 구분 : 동정일여 -> 몽중일여 -> 오매일여 -> 여여

3. 유식학적 구분 : 전6식 -> 7식 -> 8식 -> 여래식

4. 忘,(空)구별: 인망(공) -> 법망(공) -> 인법망(공) -> 진무(공)

5. 베단타식 구분 : 육체 -> 미세체 ->원인체, 초원인체-> 절대진아(파라부라만)

6. 반야심경 구분 : 색 -> 수상행 -> 식 -> 공(반야)

 

--------------------------------------------------------------------

  

수행자가 처음 화두를 붙들고 당장 의심 속으로 들어가기는 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화두 전체를 자꾸 외우면서 스승의 답변에서 나오는 의문에 초점을 주어서 의문을 키워야 됩니다.

예를 들어 "개도 불성이 있읍니까?"라고 조주에게 물으니 "없다(無)"라고 하는 구절을 마음 속에 항상 익숙하게 떠오릴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없다(無)"라는 한마디에서 의문을 일으키는 것이죠. 없다? 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왜 없다고 그랬을까? 이런 식으로 의문을 자꾸 마음 속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게 될 것 같으면서도 일상 행동을 하면서 계속하기가 참으로 잘 안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마음 속으로 되뇌이면서 송(頌)화두를 하다가 점차로 염(念)화두로 전환하고 다시 단제화두만을 들라고 일타스님같은 분은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없이 처음에 화두를 하는 초보자는 누구나 대개 송화두나 염화두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송화두란 "개는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조주에게 물으니 없다,무. "라고 자꾸 입으로 되뇌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송화두를 할 때는 꼭 마지막에 "어째서 무라고 했나?"라고 마음 속으로 되물어야 화두의심이 살아날 수가 있는 것이죠. 처음에 송화두를 하면서 마음 속에 화두가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염(念)화두로 바꾸어 봅니다. 염화두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아직 화두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생각으로 "개는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 말하기를 없다. 왜 없다고 했을까?"라고 계속 화두가 자동으로 익숙해질 때가지 자꾸 마음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화두에는 전제(全提)라는 것이 있는데, 전제란 무자화두의 경우"개는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조주스님 대답하기를 "없다"라는 전체 문장을 말하며, 단제(單提)는 간단하게 줄여서 "무?" "어째서 무인가?"와 같은 아주 단순화시킨 말귀를 말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두의심에 익숙해질 때까지 전제화두를 가지고 염화두를 하다가, 익숙해지면 단제, 즉 "어째서 없다고 했나?" 또는 "어째서 무라고 했나?" 또는 "무?" "어째서?"라는 단마디로 내면을 향해 의문을 키웁니다. 결국에는 "무?"나 "어째서?"라는 생각도 필요없고 그냥 "? ? ?~" 의문뭉치만이 항상 머리 속에 맴도는 상태까지 열심히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무자" 화두 뿐만 아니라, "뜰앞의 잣나무" "마른 똥막대기" "삼세근"같은 화두들도 화두드는 방식은 거의 같읍니다. 즉, "어째서 들앞의 잣나무라고 했나?" "어째서 마른 똥막대기라고 했나?" 등으로 "어떤 연유로 그런 대답이 나왔는지, 그 말이 나오기 이전의 마음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참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두 대답자체의 말의 의미를 알려고 참구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화두참구 자세입니다.

 

또한 초보자 뿐만 아니라 간화선 수행을 오래한 승려들도 선방에서 언제나 "무- 무- 무-"하고 "무자"를 염송하거나 염송하는 자기를 관(觀)하는 관수행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송화두나 염화두가 모두 관(觀)수행에 해당되는데, 이 관수행에서 의심 덩어리만 빼내서 수행하는 의심상태를 빨리 전환해서 관수행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관수행도 나름대로 어떤 경지에 들어갈 수는 있으나, 이원화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관수행은 보는자와 보는 대상이 이원화로 분리되어 있어 분별심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으므로 간화선처럼 즉시 일원화상태로 접어들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선방에서 오랫동안 눈을 반개하고 결과부좌로 앉아 있어도 화두로 관수행만 해가지고는 혼침과 산란심으로 헛된 세월만 보내는 것이죠.

따라서 한국 조계종의 선수행 방식을 장시간의 좌선위주에서 활동선 위주로 점차로 전환하는 분위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두를 꼭 조용한 선방에 앉아서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한 선방 안에서만 간화선 수행을 하면 안락한 선방에 앉아 있는 외에 나머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거리에서나 기타 생활시간에서는 화두를 잊어 버리게 되고, 선방에서만

화두를 하는 습관이 생겨서 조용한 조건만 찾아 다니게 되어 분별심에서 훌쩍 뛰어넘기가 쉽지 않습니다.따라서 고요한 곳에만 앉아서 수행을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화두수행은 안락하고 좋은 환경에서나 시끄럽게 불안정한 장소에서도 똑같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지마자 깨어나기 전부터 화두부터 챙겨야 되고, 잠에서 깬 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그대로 누워있는 채로 화두를 열심히 듭니다. 또 너무 잠이 일찍 깨서 잠이 안 올때는 새벽화두를 드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일어나 앉거나, 또는 그대로 누운채로 정신을 차려서 그대로 가만히 화두를 듭니다. 이때가 아주 화두 들기도 좋고 주위 분위기도 고요해서 새벽에 한 두시간 화두를 들면 그날 하루 종일 화두가 잘 들립니다.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침구를 정리하면서도 화두를 생각합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서도 변기에 앉아서 화두를 듭니다. 아침 신문을 펼쳐놓고도 신문을 보면서 화두를 잊어버지 않습니다. 세면을 하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서도 화두를 잊어 버리지 않습니다. 이어서 밥상을 차릴 때나 반찬을 만들 때, 밥을 먹으면서 가족들과 담소를 할 때도 화두를 잊어 버리지 않습니다. 양치질을 하고, 오늘 일정을 계획하고, 집을 나서서 전철 안에서나 차를 운전하면서도 화두를 잊지 않습니다. ----------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도 항시 화두 의문이 머리 뒤퉁수에 박혀 있어야 합니다. 퇴근 차 안에서도 그리고 퇴근 후 친구들과 술 한잔할 때도 화두는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고 친구하고 혀가 꼬라지면서 술을 마시드라도 화두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집에 들어와서 부인한테 또 술 먹었다고 잔소리를 들으면서 거짓말 핑계를 대더라도 화두의심만은 뒤퉁수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술 냄새 난다고 부인한테 안방에서 쫏겨나 마루에서 혼자 잘 때도 화두 의심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술에 취하고 고단해서 잠자리에 들자마자 코는 골지라도 화두의심은 잠에 푹 빠져 아무것도 모를 때까지 화두의심을 해야 합니다. 잠 자기 전에 잠이 푹 들때까지 화두를 들면 잠이 푹 들어서도 자신은 의식 못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도 화두가 계속 돌아가며 아침 깨어나기 전부터 화두가 들려 있음을 알아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새벽 잠이 깨기 직전에서부터 또 화두의심을 시작되기가 쉽게 됩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아침 새벽에 깨자 마자 화두의심을 들고, 하루 종일 회사업무에 시달리면서도 화두의심에 들고, 저녁에 잠들기 직전까지 화두의심을 들게 되면

이런 상태가 만일 석달정도 내지는 어떤 기간 동안에 계속 이어진다면, 어느새 의심이 어떤 덩어리로 뭉쳐서 단단해짐을 느낌니다. 

그러면서 밥을 먹지만 먹는데 신경쓰지 않고, 일은 하지만 저절로 일을 하며, 산책을 하지만 산책한다는 생각없이 항상 온 정신이 화두의심으로 꽉 들어찬 삶을 살아 갑니다.

그래서 항상 의심 덩어리가 뒤퉁수나 가슴 한가운데에 뭉치로 지니고 있는듯 합니다.  이때는 앉아 있을 때는 서서 걸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말하고 있을 때나 침묵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좌선을 할 때나 항상 화두가 들려 있을 때입니다. 매일 저녁 잠자기 이전에 혼자서 조용하게 앉아서 1~2시간 정도만 정좌하여 좌선하는 것도 좋읍니다. 좌선을 하면 몸속에서 기(氣)가 안정되므로 겸사로 화두의심을 두면 금방 몸의 기운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하루 3시간 이상씩 선방이나 조용한 방안,기타 명상실에서 화두의심을 하기 위하여 일부러 죽치고 앉아 있으면 자칫 혼침이나 산란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매일 일상 삶에서 한시도 빠지지 않고 화두를 들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혼자서 조용한 잡일을 할 때나 산책할 때, 운전하지 않고 전철이나 뻐스를 타고 있을 때 등, 아주 단순한 일을 할 때에 화두를 들어서 일하는데도 방해되지 않고 또 마음에 잡념도 없앨 겸 화두를 드는 법을 습관을 들이면 차차 전 시간에 걸쳐서 화두가 생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화두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면 이때가 바로 의심이 의정(疑情)으로 단단히 형성되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경지입니다. 즉 깨어 있는 동안 만은 내내 화두가 생생하게 들리게 되어 오직 온몸이 화두로 뭉쳐 있는 듯이 느껴지고, 그래서 관심은 화두의심만이 전체 삶이 되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를 대략적으로 동정일여(動情一如)라고 하며,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항상 변함없이 화두의심이 떠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유식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전6식에 화두의심이 꽉 차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6식은 이비인후촉의 전오식에 의식이라는 앎의 기능이 합쳐진 분별식으로써, 일상 삶에서 우리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움직임,생각,사고 등 분별의식 전체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일상 삶에서 보고 듣고 냄새맡는 등 전체 감각작용과 그것을 아는 작용,그리고 생각하는 작용이 모두 화두 의심으로 꽉 들어차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라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모두 화두의심으로 바꾸어졌다는 상태이며 그래서 사람을 잊엇다고 해서 인망(人忘) 또는 사람이 空이 되었다고 해서 인공(人空) 상태라고도 부릅니다.

아드바이트 베단타에서는 다섯가지 몸의 구분에서는 육체가 화두의심으로 꽉 들어차 있다고 해서 육체를 잊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육체라고 동일시했던 육체동일시 개념이 화두의심으로 대체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 상태를 색(色-물질적 육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이 색(色)이 화두의심으로 대체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항상 주지할 것은 화두의심은, 홀로 있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는 본성(本性)인 무상(無相)의 자연주시상태를 항상 동반하고 있지만, 아직 이원화 마음 상태에서는 이것을 명확하게 깨치지 못하고 화두의심의 의정(疑情)에 약간 반영되어 있지만, 수행자는 아직도 홀로 있는 성성적적함을 깨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두 의문이 깊히 들어가서 은산철벽을 넘어서서 화두가 깨져야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성성적적한 본성이 항상 있었음을 저절로 깨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성적적함을 성성적적함이라고 부르면 그것은 성성적적함이 아니죠.

그래서 그것을 밖으로는 아무에게도 표현할 수는 없고, 혼자서 머리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대략 옛 선사들이 말하는 첫번째 의정(疑情)이 형성되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진입상태를 말씀드렸읍니다만,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체험하고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고정된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는 말고 혼자 수행하는데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수행 중에 이 경지에서 나타나는 병폐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읍니다.

수행자들이 첫번째 경지인 이 색(色陰-육체)이 녹아 없어지는 과정에서 마군(魔軍)이라는 것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정신과 육체에 특이한 현상이 경험되는 것으로 수행상으로는 큰병이라고 하며, 수행 중에 이러한 경계가 나타날 때는 절대로 관심을 가지거나 이런 초상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화두만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기 위해서 옛 스승들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이비 종교단체나 유사 명상단체에서는 오히려 이런 일시적으로 수행자 의식에 나타나는 마군을 이용해서 희안한 체험을 유발한다고 소문을 퍼트려서 무지한 구도열망생들을 유혹하여 사이비 정신수행 조직에 가입토록 선전하면서 금품을 갈취하고 조직의 지도자를 숭배하도록 유도하는 미끼로서 이용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구도 열망자는 어떤 종교단체나 명상 단체, 정신지도자가 비교적 단시간 내에 어떤 초능력이나 희안한 경계를 손쉽게 얻게 해 준다고 선전한다면 이것은 수행상의 색음(色陰)이 녹아서 생기는 마군을 이용해서 선전하는 사이비 정신 수행단체라는 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수행상의 여러 단계에서 나타나는 초상현상 및 마군에 대해서는 수능엄경에 자세히 나와 있읍니다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읍니다.

 

첫째, 몸이 능히 꺼리는 데에 나가는 것이니, 산속이나, 물 속이나 석벽 속이나 능히 걸림없이 왕래합니다.

둘째, 몸이 온통 내외가 없이 환히 보이는 것이 유리와 같아서 몸 가운데에서 회충과 벌레를 끄집어내되 몸이 조금도 헐거나 상하지 않습니다.

셋째, 허공에서 법을 설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안팎이 텅 비어 사무치며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근에 의탁하여 아는 것들이 색음이 녹는 바람에 다 그전의 경계를 잃어 버리고 서로 빈주(賓主)가 되어 공중에서 설법하는 것을 듣습니다.

넷째, 각(覺)의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니 마음과 경계를 신령하게 깨달은데서 물듦으로 마음의 광명이 밝아 모든 세계에 환하게 비추는 것을 봅니다.

다섯째, 허공이 보배빛으로 변하는 것이니 마음을 억제하여 참된 생각이 없게 된 데서 그 쓰는 힘이 뛰쳐 지내는 것이므로 허공이 보배빛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어두운 집이 낮과 같이 밝은 것이니 마음을 닦는 것이 점점 깊어 가므로 그 보는 것이 점점 맑아져 그 안의 마음이 광채가 찬란하여 어두운 것을 깨쳐 봅니다.

일곱째, 몸에다가 불을 놓고 칼로 찍어도 아픔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색,성,향,미,촉의 오진(五塵)이 똑같이 녹으니 지수화풍 사대를 헤쳐 순전히 몸이 空해 집니다.

여덟째, 세계를 다 사무쳐 보아 불국(佛國)을 이룸이니 오탁 악세를 싫어하고 대각의 세계를 즐거워하므로 그 생각이 어리어 정밀하게 닦아 생각이 오래됨에 따라 자기의 아는 마음이 불국으로 변해 보이는 것입니다. 

아홉째, 한방중에 산이든지 물이든지 석벽이 가리든 간에 멀고 가까운 것을 걸림없이 보나니 이것은 마음을 정밀하게 닦아 그 정신이 핍박되므로 그 투명한 것이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사무쳐 보이는 것입니다.

열째는 외마가 점점 들어오는 것이니, 그 마군의 신통으로 혹 선지식으로도 나투고, 혹은 불보살로도 나투며, 혹은 귀신으로 나투고, 혹은 미인(美人)으로도 나투며, 혹 호랑이나 사자로도 나투되 그 변화가 불측하여 백천 방면으로 공부를 저해하고자 하며, 혹 사람을 미치게도 합니다,

열한번째, 수행 중에 어느 기간 동안에 전생의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지나간 장면들이 총천연색 파노라마 영화장면 같은 스토리로 엮어진 환상들이 눈 앞에 연속으로 나타나서 전개되어 계속 사람의 관심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하고 많은 초상현상과 마군이 나타납니다.

 

만약 수행자가 공부를 힘써 하다가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거든 추호라도 희유한 생각이나 공포를 갖는 등 의 생각을 내지 말고 다만 일심으로 공부만 해야만 됩니다 . 그러면 모든 초상현상이나 마군이는 스스로 없어지고 공부는 점점 앞으로 나아 갈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경계를 없애지 못하면 자기 신세를 그르치게 됩니다. 세상사람이 조금 아는 것이 있으면 희유하다는 생각에 미혹되어 마음이 전도되는 까닭에 더 이상 깨달음의 길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 타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수행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이러한 마군 경계가 나타나는 것은 수행공부에 어떤 빈틈이 생겨서 그 틈바구니로 이러한 나쁜 병이 나타나는 것으로 화두의심만 오로지 끊임없이 한다면 이러한 경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간화선 수행자가 일반적으로 겪는 첫번째 단계로써,의정(疑情)상태라고 불리우는 과정으로 꼭 위에서 쓴 것과 같지는 않지만, 대략 일반적인 관점에서 여러가지 종합해본 내용입니다. 

다음 회에는 두번째 의단(疑團) 단계인 몽중일여, 7식, 법공, 미세체, 수상행식 상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읍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