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바위에서 꽃을 가꾼다.
제1화, 빗자루를 외우며 깨침-혜원각범스님
어느 스님이 나에게 물었다.
"예컨대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라고 물으면,
어느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다'하고 어느 사람은 '어둡지 않다'합니다.
또한 '무엇이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천수천안(大悲千手眼)입니까?'라고 물으면, 누구는 '자기 온몸(通身)이 다 천수천안'이라 답하고, 들은 말이 있는 사람은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것은 어디에나 두루한 몸(遍身)이다'합니다.
또 누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으면 어느 사람은 '악취나는 고기 덩어리에 쉬파리가 몰려든다'하고 들은 말이 있는 사람은'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처입은 당나귀 등뼈에 쉬파리가 우굴거린다' 합니다.
또한 누군가 '영초(影草) 삼아 질문 하나를 던질 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으면, 어느 사람은 '하필(何必)이면---'이라 하고, 들은 말이 있는 사람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不必)해야하지 않을 까?' 하였습니다.
여러 노스님들의 이러한 설법을 무엇으로 우열을 구분하고 근본종지를 알수 있습니까? 그분들은 법에 대해 막힘이 없이 모든 언어를 가릴 것 없이 손 가는 대로 들어 올린 경우입니까? 아니면 그 모두가 문답을 저울질하여 한 푼 한 치 비교하는 것으로써 기연에 임하여 곧바로 분별해내는 경우입니까?
아니면 그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같고 다름을 구별할게 없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제가 일찌기 의심을 품어오던 알 수 없는 점입니다."
"나는 그대의 의심을 풀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내 듣기에는 세존께서 이 세상에 계시던 때 어느 한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워낙 우둔하여 기억력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초추(苕帚, 빗자루)' 라는 두 글자만을 외우도록 하였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두 글자만을 외웠지만 '초(苕)'자를 읽다보면 '추(帚)'자를 잊어 버리고 '추'자를 읽다보면 '초'자를 잊어 버렸다.
그러나 매일 스스로 자신을 꾸짓고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어느 틈엔가 마침내 '초추'라고 외울 수 있었다.이에 크게 깨치어 막힘이 없는 언변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대가 (그 비구처럼)'초추' 두 글자를 정성들여 외우는 것처럼만 한다면 옛 큰 스님께서 대자대비하신 까닭에 만물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에 그 스님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물러갔다.
- 林間錄-
제2화, 모르는 주인공을 알아라.-위산스님.
한 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무심(無心)이 도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그 주인공을 알아야 하리라."
"무엇이 그 모르는 주인공입니까?"
" 그저 그대일 뿐,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모르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며, 그대의 부처임을 그대로 체득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밖으로 향하여 하나하나 알음알이를 쌓아서 그것을 선도(禪度)라고 한다면 전혀 틀린다. 그것은 똥을 퍼다 붓는 것이지 결코 똥을 퍼내는 것이 아니어서 그대의 마음밭을 오염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산록-
제3화, 돌바위에서 꽃을 가꾼다.-설봉스님
한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학인 본분의 안목입니까?"
"돌 바위에서 꽃을 가꾼다."
이번에는 설봉스님이 그 스님에게 물으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몸조심하여라."
-설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