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노자도덕경 61장, 자신을 낮추는 것은 남에게 베품을 주는 것이오.

무한진인 2011. 8. 25. 20:51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61회]

 

[한문원문]-백서본

 

大國者下流也

대국자 하류야

 

天下之牝天下之交也

천하지빈 천하지교야

 

牝恒以靜勝牡 爲其靜也 故宣爲下

빈항이정승모 위기정야 고선위하

 

大國以下小國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則取於大國

대국이하소국 칙취소국  소국이하대국 칙취어대국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고혹하이취 혹하이취

 

故大國者不過欲兼畜人   小國者不過欲入事人

고대국자 불과욕겸축인   소국자 불과욕입사인

 

夫皆得其欲則大者宣爲下.

부개득기욕 칙대자선위하.

 

[한글 해석]

 

큰 나라가 자신을 아래로 낮추어서 강의 하류처럼 되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암컷처럼 되어,

천하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오.  

 

여성은 언제나 고요함(수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남성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외다.

그것의 행위가  고요함(수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낮춤으로서 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것이오.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게 자신을 낮추어서 대하면  

곧 작은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 되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게 자신을 낮추어서 대하면

곧 큰 나라에 의해서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혹 자신을 낮춤으로써 남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 자신을 낮춤으로서 남에게 받아 들여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큰나라는

다른 나라를 부리기 위해서 강제로 합병하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되고,

 

작은 나라는

다른 나라의 일에 무리하게 개입하려는 욕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오. 

 

대저, 모두가 (동등하게) 원하는 바를 얻을려고 한다면

우선, 큰 자가 자신을 낮추어서 아량을 베풀어야 만 할 것이외다.

 

 

[해 설]

61장은 가장 오래된 곽점본에는 없으며, 백서본 시기 이후에 쓰여진 글 같읍니다.

왕필본은 61장, 백서본은 24장에 해당합니다.

전번 60장에서는 큰 나라는 도를 기본방침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번 장에서는 큰나라와 다른 인접국가 사이의 외교관계에 대하여 충고하는 글입니다.

즉 큰 나라는 자신을 낮추므로써 다른 국가들을 포용하는 외교정책을 구사하라고 충고합니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강한 자가 자신을 낮추는 것은 남을 배려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전번 60장과 이번 61장은 노자의 도의 원리를 응용해서,국가 경영에 직접 적용하는 실예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즉 황노학(黃老學)이 성행하던 시절에 무위자연의 도를 국가 경영에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쓰여진 글인 것 같읍니다.

백서본과 기타 왕필본등 몇가지 판본들이 한문글자가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장들이 몇개 있읍니다만, 여기서는 백서본의 문장만으로 해석을 했읍니다.

또한 특이하고 난해한 한문문장이 없어서 대부분의 해석서들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읍니다. 

 

大國者下流也(대국자 하류야)

大國者; 큰나라라는 것이

下流也 ; (자신을 낮추어)아래로 흐르게 되면(강의 하류처럼)

<大國者>는 '큰나라 사람" 또는 "큰 나라라는 것은" 등으로 해석됩니다.

<下流也>는 직역하면 '아래로 흐른다' 또는 "강의 하류이다"등으로 해석이 되지만,

그 의미는 '자신을 낮춘다'라는 뜻입니다.

대국이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서 마치 모든 지류가 모여드는 큰강의 하류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모든 빗물이 모여드는 낮고 깊은 골짜기처럼,

또한 모든 작은 시냇물이 합쳐져 흐르는 큰강의 최하단 하류처럼,

큰 나라는 그렇게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天下之牝天下之交也(천하지빈 천하지교야)

天下之牝;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천하의 암컷이 되어

天下之交也; 천하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어 천하를 받아 들인다는 것은 천하를 품에 안는 암컷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암컷의 특징은 아무 조건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이죠.

그 받아 들인다는 것이 너그럽게 포용하고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모든 사람이 저절로 모여들고, 서로간 교제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장소가 됩니다.. 

 

牝恒以靜勝牡 爲其靜也 故宣爲下(빈항이정승모 위기정야 고선위하)

牝恒以靜勝牡; 여성은 항상 고요함(수동성)을 지니므로서 남성을 이긴다.

爲其靜也; 고요함(수동성)을 지닌다는 것은

故宣爲下;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남에게 아량을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여성(암컷)은 항시 고요함으로써 남성(숫컷)을 이긴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여기서 <靜>은 '고요함'을 뜻하지만, 또한 "수동적"인 측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고요함은 "밑 바탕"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남성의 특성은 "적극성"과 항시 "움직임"의 표면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읍니다.

따라서 여성적인 정적인 고요함과 수동성은 항상 있는 그대로의 안정된 바탕상태이지만,

남성의 동적인 "움직임"과 "적극성"은 일시적이며 임시적인 겉표면의 물결 파도와 같이 안정되지 못하므로, 남성의 적극적인 활동성의 일시적인 움직임은 항상 변함없는 여성적인 수동성과 고요한 바탕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읍니다.

남성은 그 활동성과 적극성 때문에 언제나 안정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사랑방 떠돌이손님(客)신세이지만, 여성은 그 고요함과 수동성 때문에 한곳에 안정되어 집안의 중심에서, 안방주인(主)의 터주노릇을 하는 母性중심관습이 인간사회나 동물곤충 생태계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진 것 같읍니다.

고대인간사회나 동물, 또는 벌이나 개미등 곤충의 자연 생태계에서도 암컷 중심으로 집단조직이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읍니다.

 

여기에서 '그 고요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서 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것을 말한다'고 되어 있읍니다.

즉 '수동적인 고요함으로 남이 부담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그대로 문을 열어논다'는 말입니다.

'베풀어 준다' 는 것은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이 아니라, 너그럽게 상대방을 배려해 준다는 것이며, 조건없이 문호를 활짝 개방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세 그 자체만으로 남에게 배려를 베풀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즉 자기의 자존감(개별에고성)을 낮추면 저절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여성적인 고요함, 즉 수동적인 포용성이며, 

보편적인 자비심, 큰 사랑이라고도 볼 수도 있읍니다.  

따라서 갈등과 싸움의 발단은 "나라는 에고성" 즉 자기 자존심을 세우는 것인데, 이 "나라는 자존심"를 낮추던가, 아예 없애버리면 전체가 바로 나자신이므로, 갈등과 싸움의 상대가 사라지므로, 모든 것을 전체 우주적인 큰나 안으로 받아들이는 보편적인 자비심만 남는 것이죠. 

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것은 남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마음 씀씀이, 즉 자비심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大國以下小國則取小國 (대국이하소국 칙취소국)

大國以下小國; 큰나라가 작은 나라에게 자신을 낮추어 대하면

則取小國; 곧 작은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대할 때에 자기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대하면,

작은 나라도 마음놓고 들어오므로, 작은 나라를 포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여기서 <取>라는 글자는 '취한다,얻는다,빼앗는다'라는 적극적인 탈취행위의 뜻이라기 보다는,

"받아들인다, 포용한다"라는 수동적인 수용성의 뜻으로 해석되어야, 전체적인 주제에 적절하게 맞추어질 것 같읍니다.  

 

小國以下大國則取於大國(소국이하대국 칙취어대국)

小國以下大國; 작은 나라가 큰나라에게 낮추면

則取於大國; 곧 큰 나라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공손히 대하면 당연히 부담을 느끼지 않으므로 큰나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겠죠.

이 부분은 각판본마다 한문글자가 다르게 되어 있어 해석들도 약간씩 내용이 차이가 납니다만,

여기서는 백서본 글자대로 해석을 했읍니다. 

 

故或下以取 或下而取(고혹하이취 혹하이취)

故或下以取; 그러므로 혹 자신을 낮춤으로써 남을 취할 수도 있고

或下以取; 혹 자신을 낮춤으로서 남에게 받아 들여지게 할수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을 낮추는 것만으로 남을 자기것으로 끌여 들일 수가 있고,

또한 어떤 경우에는 남에게 자신을 믿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자기를 낮추는 것이 개인관계이든 국가간의 외교관계이든 서로 좋은 이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상대방보다 먼저 나의 자존심을 낮추어서, "나"와 "너"라는 상대적인 견해에 의해서 서로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생길지 모르는 갈등과 자존심경쟁의 소지를 사전에 미리 서로 해소하여 모두가 하나다, 라는 믿음을 서로 주고 받자는 것이죠.

서로 간에 신뢰가 돈독하게 되면, 서로 상생(相生)할 수가 있고, 서로 동등하게 이익을 얻을 수가 있읍니다. 

 

故大國者不過欲兼畜人(고대국자 불과욕겸축인) 

故大國者; 그러므로 큰나라는

不過欲兼畜人; 남을 부리기 위해서 억지로 병합하려고 하면 안되며,

이 말은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지배하기 위하여 강제병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군사력이나 폭력을 행사해서 다른 나라를 강제로 정복하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죠.<不過兼畜人>에서 <兼>은 '하나로 합치다', <畜>은 '부리다,기르다', <人>은 '남의 나라'라는 뜻으로, '남의 나라를 부리기 위해서 하나로 합치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라고 해석됩니다.

만일 큰나라가 자신의 국력만 믿고 작은 나라를 일방적으로 찝쩍거린다면, 작은 나라는 어떤 형태로든 또 다른 큰나라와 연합해서 방어를 하거나 보복차원에서 은밀한 일을 꾸밀 수 밖에 없고, 큰나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을 할 수도 있겠죠.

 

小國者不過欲入事人(소국자 불과욕입사인)

小國者; 작은 나라는

不過欲入事人;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려는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작은 나라가 다른나라의 내부 일에 대하여 지니치게 깊숙히 개입하려고 한다면,

큰 나라가 반발할 수가 있는 것이죠.

자기 나라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한다든가,

은밀하게 사람을 시켜서 염탐 또는 여론을 조작하는 일 등을 한다면 상대방 국가가 오히려 친해질려고 하다가도 심하게 반발하게 되겠죠.

<入事人>은 '다른 나라 일에 개입하다'라고 해석이 됩니다.

<入>은 '개입하다, 깊히 들어가다' 의 뜻이고, <事>는 '일'의 뜻이며, <人>은 '남의 나라'

<不過欲> '욕심이 지나치면 안된다'  

이 문장은 '남을 섬기기 위해서 지나치게 서둘지 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읍니다. 

 

夫皆得其欲 則大者宣爲下(부개득기욕 칙대자선위하)  

夫皆得其欲; 대저, 모두가 원하는 바를 얻을려고 한다면

則大者宣爲下; 마땅히 큰나라가 자신을 낯추어 아량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則; 마땅히,곧,우선, 宣;베풀다. 爲下; 자신을 아래로 낮추어 행동하다.

그러므로 모두가 서로간 원하는 목적을 동등하게 달성하려면

먼저 큰 자가 스스로 낮추어서 상대방에게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힘있고 강한 자가 먼저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서 상대방을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있다고는 하지만,

좀 길게 내다보면 실질적으로는 영원히 강한자도 없고 영원히 약한 자도 없읍니다.

자기가 강하고 힘이 센 자라고 자만감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남을  위협한다면,

그 자만감 자체가 지혜의 빛을 덮어버리는 무지가 되어, 그나마 지니고 있는 힘마저 약화시키고 결국은 그 자만감으로 인해서 소정의 시간이 가면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고금동서 긴나긴 인류의 온갖 역사 기록들 속에서 이러한 훌륭한 교훈을 알려주는 반면교사의 실예들은 수없이 많이 발견되고 있읍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개인간 인간관계에서도 힘센자,강한자, 있는 자가

없는자, 가난한 자,힘 없는 자등 상대방에게 자신을 낮추고 자존감이 없는 포용적이고 보편적 덕이 충만한 사회가 된다면 훨씬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겠죠.

개인에게 있어서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단순히 임시방편의 상대적인 기회주의적 생존수단이 아니라, 영구불멸하는 본래의 참마음으로 접근해 가는 진리추구의 한 수행수단으로서,

인간관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 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당장이라도 실천하기 쉬운 방편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자존심을 죽이는 것"이 쉬운 것 같이 여겨지지만 실은 가장 어려운 실천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로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위해서 도를 닦는다는 것은 바로 "개인적인 나라는 존재는 아예 없다. 모든 보이는 현상은 꿈과 같이 허황된 것이다. 모든 것은 일체가 참나일 뿐이다"라는 것을 체험으로 스스로 실증하기 위해서 마음을 부단히 내면의 참나로 향해서 안정시키는 행위입니다.  

 

이 61장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존심을 없애는 겸양의 자세 그 자체가 곧 "남에 대한 베품"이면서, 자비의 마음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보시행위로써, 서로 상생(相生)할 수 있는 모두에게 유익한 생존지혜라는 것을 배웠읍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