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노자도덕경

노자도덕경 56장,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는 道人이오.

무한진인 2011. 7. 7. 21:05

 

 

 [무한진인의 노자도덕경 해설 56회]

 

[한문원문]-백서본

 

知者弗言 言者弗知

지자불언 언자불지

 

塞其兌 閉其門

색기태 폐기문

 

和其光 同其塵

화기광 동기진

 

挫其銳 解其紛

좌기예 해기분

 

是謂玄同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亦不可得而疏

고불가득이친 역불가득이소

 

不可得而利 亦不可得而害

불가득이리 역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 亦不可得而賤

불가득이귀 역불가득이천

 

故爲天下貴

고위천하귀

 

[한글 해석] 

 

도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도를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오.

 

쾌락의 유혹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외부대상에 대한 관심의 문을 닫아 버리면

 

자신이 의식의 빛과 하나로 합쳐져서

미세한 티끌(점)처럼 되어,  없는 것과 같소이다.

 

(그러면)

날카로운 개인성과 분별의식이 꺾이어 무디어지고

인연과 업습으로 얽혀있던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이외다.

 

이것이 도의 본체와 하나가 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오.

 

(이런 상태에 있는 도인은)

친하게 지낼 수도 없고, 멀리 대할 수도 없으며  

이로움을 얻을 수도 없고, 해로움을 주지도 않으며,  

귀함을 얻을 수도 없고, 천함을 얻을 수도 없소이다.

 

그러므로 도인이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외다. 

 

[해 설]

이번 56장은 곽점본,백서본(19장), 왕필본등, 기타 여러본에 공통으로 있는 장입니다. 

각장마다 글자 몇개가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한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백서본의 원문을 채택해서 해석했읍니다.

 

내용면에서는 두가지 주제로 되어 있읍니다.

첫번째는 도의 본체와 하나가 되는 깨달음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간단하게 서술하였는데,

- 도를 닦는 사람은 우선 말이 없어야 하고,

외부 감각대상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서,

의식과 일체가 되면,

작은 티끌처럼 미세해져서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개인 에고성과 날카로운 분별성이 꺾여서 무디어지고,

온갖 인연과 업습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의 본체(玄), 즉 절대바탕과 하나가 된 상태(玄同)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두번째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도를 완성한 도인은,

주,객 이원성을 벗어나 있으므로,

친소(親疎) 이해(利害) 귀천(貴賤)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통해서는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 현상세계에 관련된 이원적인 관념으로는 도인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상대성 관념을 초월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깨달은 도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知(之)者弗言 言(之)者弗知

知(之)者弗言; (도를) 아는 자는 말이 없고

言(之)者弗知: (도를)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오.

도는 비이원적인 상태이므로 도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도의 바탕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사람은 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도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아는 척하며 말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도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道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입니다.

반면에 말,그리고 생각,개념등은 시간을 기본요소로  형성된 의식공간 안에서 잠깐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넘어의 道를  말이나 개념으로 나타낼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말과 개념을 통해서 도를 말하지 않으면 또한 무지로부터 사람들을 광명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별다른 기초적인 방편이 없으므로, 깨달은 스승들은 어쩔수 없이 기초적인 깨달음 개념의 가르침은 고대로부터 전승된 경전들을 이용하여 속세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펼치고 있읍니다. 

 

곽점본은 <知之者弗言 言之者弗知>로 되어서 <之>자가 삽입되어 있읍니다.

이<之>는 <道>를 대신하는 목적격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백서본이나 왕필본 등에서는 이 <之>를 생략해 버렸읍니다.

그래서 위 문장에 (之)라고 표기를 덧붙혔읍니다.  

도 수행자는 항상 침묵을 지키고 있으라는 충고입니다.

 

塞其兌 閉其門

색기태 폐기문

閉;막다, 塞; 지켜보다,막다. 변방,요새.가리다.兌;바꾸다,기쁘다,날카롭다,구멍.

塞其兌; 쾌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閉其門; (외부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닫으면,- 즉 마음을 내면으로 돌리면.

이문장은 52장에 나온 문장입니다.

<塞其兌>은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지킨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塞>는'변방요새에서 지킨다'라는 의미가 있읍니다.

또한 <兌>는 기쁜것,좋아하는 것,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兌가 '구멍'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兌>는 쾌락,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 마음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塞其兌>는' 마음을 즐겁게 들뜨게 하여 유혹하는 쾌락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閉其門>은 외부로 향하는 '의식의 주의'(마음의 문)를 말하며, 외부 대상에 대한 관심과 욕망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석서들은 '오관의 문' 또는 '감각기관'으로 해석한 곳이 많은데,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감각기관을 막는다'라는 것은 '외부대상에 대한 욕망이나 관심을 막는다'라는 말이지,감각기관의 작용자체를 못쓰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즉, 외부대상의 유혹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외부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닫아서, 관심을 내면으로 돌리라는 말입니다.  

 

和其光 同其塵

화기광 동기진

和其光; (자기가)의식의 빛과 하나가 되면

同其塵; (자기는)미세한 점(티끌)과 같아진다. 

이 문장들도 4장과 52장에서 이미 나온 문장들입니다.

<和其光>을 번역해 보면,<그것이 의식의 빛과 화합되면>

여기서 <其>는 "그것이"인데 <자기자신>을 말합니다.

자기자신이라는 것은 앎자체(빛), 즉 의식인데, 의식이 의식 그자체의 근원에 합일된다는 말입니다.

즉 의식 스스로가 그 자체 속으로 공진되어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의식의 빛이 그 자체 속으로 합일 되는 과정이 바로"나라는 존재"가 그것이 나온 근원으로 사라지는 지점을 묘사한 것입니다.

의식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며, 이것이 그 자체에 완전합일되면, 보통 말하는 '에고의 근원이 사라진다'라고 하는 과정입니다.

 

그다음 <同其塵>을 해석하면 <그것은 아주 미세한 티끌과 같다>

여기서 其는 앞의 <화기광>상태,즉 의식이 그자체 근원속으로 합일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죠.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워낙 작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다는 의미로, 모양과 크기가 "없는 것", 즉 점(點)과 같다는 것입니다.

<塵>은 티끌이라는 뜻인데, 미세한 점과 같이 극소하게 작은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두구절을 합쳐보면,

< 내가 의식자체에 합일되면,

 아주 미세한 티끌(점)과 같아서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의미가 되겠읍니다.

완전히 도의 본체에 합일되면, "나"가 사라진다, 라는 말씀이지요.

여기서 티끌 塵,은 '속세'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작아서 모양과 크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선어록의 선불교조사들이 말하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사성어와는 뜻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불교선사들이 말하는 和光同塵이라는 뜻은 "깨달음을 증득한 도인이 자기의 깨달음의 능력(光)을 숨기고(和), 속세(塵)에 나와서 보통 중생들과 어울려(同) 말없이 선도한다"는 의미인데, 모든 해설서와 번역서들이 이 불교선사들의 '和光同塵'의 의미로 이 노자도덕경을 해석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노자도덕경의 이구절에서 이 화광동진이라는 사성어를 빌려서 썼는지는 몰라도,노자도덕경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600~200년사이에 기록된 것인데,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법을 펼칠때가 대략 기원전 약 500년경이라면, 노자 도덕경(곽점본)이 거의 석가모니 생전시기에 가까이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는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지도 않고, 달마가 중국에 온 것이 대략 기원후 500년경이고, 선불교의 시조격인 혜능대사 역시 기원후600~700년 사람으로 노자도덕경이 쓰여진 시대와는 1000년가까이 차이가 나죠.

따라서 <和光同塵>이라는 뜻을" 깨달은 도인이 속세와 함께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은 후대의 어떤 불교선승이 노자도덕경의 이 구절에 나오는 화기광 동기진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다르게 쓴 것인지는 모르겠읍니다.

여하튼 이 노자도덕경에서 <화기광 동기진>의 티끌 <塵>은 속세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아주 미세하게 모양과 크기가 없는 점(點)과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티끌같이 미세한 점(點)이 바로 모든 현상계가 나타나는 문으로써

"존재의식의 발현 핵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핵점이 "나"라는 자아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구멍이기도 하죠.

그래서 완전히 깨달은 성인들은 제자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이 점(순수존재의식)의 경계선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이 점이 바로 절대본체의 문이며, 의식의 시작점이고, 공간과 시간이 생기기 이전의 원인체입니다.즉 절대바탕과 현상계의 중간경계지역입니다.

제1장의 마지막구절인 玄이 더 깊어지면 온갖 "만물이 나오는 門"이 있다,고 한 구절이  바로 이 존재핵점을 가리키는 겁니다. 

 

挫其銳 解其紛

좌기예 해기분

挫其銳; 날카로운 분별의식이 꺽어지

解其紛; 얽힌 속박으로부터풀려난다

이문장도 4장과 52장에서 이미 나왔읍니다.

挫其銳

직역을 하면 - 그것은 날까로움을 꺾는다.-

여기서 其는 "개인적인 나"의 대명사입니다만,

해석상에는 그냥 "나"라고 해석해도 무방하죠.

 

銳라는 것은 날카로움을 가리키는데, 그 "날카로움"이라는 것이 바로 "나라는 에고의식"을 의미하는 것이죠.

"나라는 개인의식"은 항상 외부대상을 향해서 날카롭게 주의(注意)가 모아져 있죠.

그래서 오감각기관에 의해서 나타난 온갖 경계들을 개별적으로 분별하는 날카로운 분별의식으로 모든 현상을 갈라서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라는 개체성 자체도 다른 현상과 분리시켜서 홀로 삐죽하게 톡 튀어 나와 있읍니다.

그 뿐 아니라, 육체의 모든 감각기관은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어 항상 밖에 대상을 향해서 쫏아 다니죠.

이러한 여러가지 외향적인 분별의식을 묘사한 것이 바로 "銳, 날카롭다"라는 한단어로 합축해서 노자도인은 표현했읍니다.

 

挫는 "꺽인다"는 뜻으로 날카로움이 꺽인다,라는 뜻이죠.

그래서 번역하면 -挫其銳- 밖으로 향하는 날카로운 분별의식이 꺽인다-

이런 뜻이 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외부 대상으로만 향해서 뾰족 튀어나온 에고적 분별의식이 사그러진다는 의미죠.

< 날카롭게 밖으로 향하는 분별의식이 꺽여서 누구려진다> 

 

解其紛

직역해 보면 - 얽힌 것이 풀어진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紛은 실타래 마구 뒤엉켜 있는 상태를 나타나며, 여기서는 인연과 경계에 얽혀서 집착에 매인 "나의 業"을 의미하는 것이죠.

解는 풀린다, 풀어진다, 해방한다, 등의 뜻이 있읍니다.

따라서 해석을 해보면,

< 온갖 인연과 습업에 얽혀있던 속박으로 부터 풀려난다.>

 

이래서 다시 -挫其銳 解其紛- 두문장을 합치면,

<대상을 향해서 분별하는 마음이 꺽어져 누구러지고,

온갖 습업과 인연으로부터 얽혀있던 속박(업)에서 풀려난다>

 

위의 세쌍의 문장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쾌락으로부터 유혹당하지 않게 자신을 지키고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닫으면,

자기자신이 의식의 빛과 하나로 합일되어

미세한 티끌같이 자신이 없는 것처럼 되는데,

대상을 향해서 분별하던 날카로운 에고성이 누구러지고

온갖 인연과 습업으로부터 얽혀있던속박에서 풀려나게 된다.] 

라고 해석이 됩니다. 

 

是謂玄同 ; 이것을 도의 바탕과 일체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오.

시위현동

<玄>은 도의 바탕을 말합니다.

의식이라는 앎의 경계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도의 바탕 또는 만물의 근원을 노자도덕경에서는 검을 <玄>자로 묘사합니다. 검을 <玄>은 깊고 신비한 어둠, 즉 즉 앎 넘어 신비한 모름상태의 절대바탕을 <깊고 깊은 어둠>이라는 시각적인 느낌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 깊은 어둠과 일체가 되면(玄同) 바로 그 어둠이 항상 변함없이 밝게 비치는 전체적인 빛(앎) 그 자체가 되는 것이죠.

 

빛을 대상으로 보는 반사된 빛(이원적인 앎)이 밝아보이는 것 같지만,

순수 빛(비이원적인 앎) 그자체가 되면 밝지도 않고,어둡지도 않으며,

이원적인 입장의 반사빛을 통해서 보면 오히려 순수빛(순수의식) 그자체는 깊은 어둠으로 보이는 것이죠.

이러한 상태를 어두울 현(玄)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故不可得而親 亦不可得而疏: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친할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으며

친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는 말은 이원화 상태에서 어떤 한쪽으로기울어져서 도인을 사귈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不可得而利 亦不可得而害: 이로움을 얻을 수도 없고, 해로움을 당하지도 않으며

이역시 도인은 이롭다,해롭다,라는 이해타산의 관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不可得而貴 亦不可得而賤 :귀하게 대할 수도 없고, 천하게 대할 수도 없소. 

이 역시 도인을 대하는데, 귀하니,천하니하는 이원적인 분별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故爲天下貴;그러하므로 이러한 도인은 천하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오.

이렇게 세속적인 관점에서 이원적인 쌍대성의 가치기준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 도인이므로, 이원화 세상의 가치를 초월해 있으므로,

도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56장의 일부 문장은 다른 장에도 중복해서 나오는 문장들이 몇개 있읍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4장과 52장에서도 똑같은 문장들이 순서만 바뀌어서 반복해서 나오는 데, 4장의 경우는 곽점본에는 없으므로 백서본 형성시기에 4장이 처음 만들어 질 때에 이 56장에서 일부 같은 문장을 그대로 차용했는지는 모르겠읍니다.

백서본 형성당시에 노자도덕경을 연구하는 구도자나 학자들이 이 56장의 중간에 나오는 문장인 -塞其兌(색기태) 閉其門(폐기문), 和其光(화기광) 同其塵(동기진), 挫其銳(좌기예) 解其紛(해기분)-이라는 6개 문장을 아주 의미심장하고 귀중한 문장이라고 여겼던 것 같읍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