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 이 좋은 봄날,
김소월 시나 몇편 읍쪼려 볼까나 ~
- 진달래꽃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산유화(山有花)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금잔디 -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임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읍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읍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먼후일-
먼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 때에 "잊었노라"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 길 -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 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은 있어도
네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히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산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신앙-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하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 가질 안식을 더하려고
반드시 힘있는 도움의 손이
그대들을 위하여 내밀어지리.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은 저무는가
애처로운 인생이여
종소리는 배바삐 흔들리고
애꿋은 조기(弔旗)는 비껴 울 때
머리 수그리며 그대 탄식하리.
그러나 꿇어앉아 고요히
빌라,힘있게 경건하게,
그대의 밤 가운데
그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신을
높히 우러러 경배하라.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멀지 않아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 있는 명멸(明滅)의 그 등잔을
부드러운 예지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그라하면 목숨의 봄 둔덕의
삶을 감사하는 높은 가지
잊었던 진리의 몽우리에 잎은 피며
신앙의 불붙는 고운 잔디
그대의 헐벗은 영을 싸 덮으리.
- 님의 노래 -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히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하늘 끝-
불현듯
집을 나서 산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여 !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