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마셔 보아야 물맛을 안다.
[완릉록]
29. 인욕선인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뚱이가 토막토막 잘리었다'는 경우는 어떤 것입니까?"
"선인(仙人)이란 곧 너의 마음이며, 가리왕이란 구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니라.
그리고 왕위를 지키지 않는다고 함은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이니라.
그런데 요사이 공부하는 이들이 덕과 공을 쌓지는 않고,
보는 것마다 배워서 알려고 하니 가리왕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물질을 볼 때는 선인의 눈을 멀게 하고,
소리를 들을 때는 선인의 귀를 멀게 한다.
나아가 무엇을 느껴 알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마디마다 갈기갈기 찢겨 진다고 한 것이니라."
"선인이 참을 때는 마디마디 갈기갈기 찢김이 없어서,
한 마음으로 참았느니 혹은 참지 않았느니 하는 말은 가당치 않겠읍니다."
"네가 남이 없는 견해(無生見)을 내어서,
인욕을 닦는 견해거나 구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는 것은 모두 손상을 주는 것이니라."
"선인도 몸을 잘리울 때 아품을 느낍니까? 만약 이런 가운데 고통을 받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고통을 받습니까?"
"네가 이미 고통받을 것이 없다면 나타나서 도데체 무엇을 찾는 것이냐?"
30. 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이 곧 수기.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연등부처님이 수기하신 때는 오백세(五百歲)이내 입니까?. 오백세 밖입니까?"
"오백세 이내에 수기를 받을 수 없느니라.
이른바 수기라는 것은 너의 근본을 결정코 잊어 버리지 않아서,
하염있는 법도 잃지 않고 보리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세간과 세간 아님을 모두 요달했기 때문에 오백세 밖을 벗어나서 따로 수기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오백세 이내에도 수기를 얻지 못한다."
"세간 3제(三際)의 모양을 요달할 수 없읍니까?"
"한 법도 얻을 수 없느니라."
"그런데 무엇때문에 경(經)에서 오백세(五百歲)를 지난다고 자주 말씀하시어,
앞뒤로 시간을 길게 말씀하셨읍니까?"
"오백세(五百歲)가 길고 멀어서 오히려 아직은 선인(仙人)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연등부처님께서 수기하실 때는 실로 얻었다 할 작은 법도 없느니라."
31. 법신은 얻을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교(敎) 가운데 말씀하시길,
'나의 억겁 동안 전도된 생각을 녹이어서, 3대 아승기 겁을 거치지 않고 법신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 3대 아승기의 헤아릴 수 없는 겁을 통하여 수행을 하므로써 증득한 바가 있는 자는, 간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이 지난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한다.
만약 한 찰나 사이에 법신을 획득하여 곧바로 분명하게 깨달아 성품을 보는 것은 오히려 3승교(三乘敎)의 극치를 이룬 말씀이다.
왜냐하면 가히 얻을 수 있는 법신을 보기 때문에 모두가 불요의교(不了義敎)에 속하는 것이니라."
32. 마셔 보아야 물맛을 안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법을 보고 단박에 깨달은 사람은 조사의 뜻을 알 수 있읍니까?"
"조사의 뜻은 허공 밖을 벗어났느니라."
"그러면 한계가 있읍니까?"
"한계가 없느니라. 이는 모두 일정한 숫자로 헤아리는 대대(對待)하는 법이니라.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량이 있지도 않고 한량이 없음도 아니며,
한량이 있고 없음이 아님도 아니어서,
대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였다.
너희 요즘 배우는 사람들이 3승교 밖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찌 선사라 부를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으뜸으로 선을 수행하는 사람일진댄, 함부로 망령되이 다른 견해를 내지 말라.
마치 어떤 사람이 물을 마셔보면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
움직이거나 머물러 있거나 한 찰나 사이에 생각생각이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황벽선사의 완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