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45장, 맑고 맑으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소.
[원 문]- 곽점 죽간본,
大成若缺 其用不敝
대성약결 기용불폐
大盈若沖 其用不窮
대영약충 기용불궁
大巧若拙 大成若詘 大直若屈
대교약졸 대성약굴 대직약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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燥勝蒼 靑勝然
조승창 청승연
淸淸爲天下定
청청위천하정
[한글 해석]
완벽하게 다 이루어진 것은 마치 결함이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쓰임은 아무리 써도 폐해가 없소.
완전하게 가득 찬 것은 마치 텅 빈 듯이 보이지만
그 쓰임은 아무리 써도 끝이 없소.
지극히 미묘한 것은 마치 거칠어 보이는 것 같고,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마치 부족한 것 같으며,
완벽하게 곧은 것은 마치 구부러진 것 같이 여겨지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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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의) 습기를 말리는 것으로
세속생활의 무성한 욕망을 이겨낼 수 있지만,
맑은 순수의식은
원래부터 그러한 모든 행위조차 넘어서 있소.
그러므로 맑고 맑으면 천하를 안정되게 할 수 있는 것이외다.
[해 설]
이번 45장은 내용이 전혀 다른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읍니다.
상반부에서는 "완전한 도는 감각적 마음을 통해서 보면 오히려 부족해 보이고, 흠이 있어 보이지만, 그 쓰임새는 무한하고 폐해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하반부는 " 집착을 없애는 마음 수행으로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원래부터 맑고 순수한 의식은 모든 수행행위조차 넘어서 있으며, 따라서 맑고 맑은 절대본체에 있는 도인은 세상을 안정시킨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반부 문단에서는,기존의 백서본,왕필본 한문 원문과 그 해석들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읍니다.
기존 백서본 이하 왕필본 등의 한문 원문은"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기는데, 맑고 고요하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가 있다"라고 대략 해석이 됩니다.
본 필자는 이 부분이 백서본의 한문원문부터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판단하여 백서본, 왕필본 한문원문을 모두 무시하고,
곽점본의 원래 발굴당시, 주석되기 이전의 한문원본을 그대로 독자적으로 해석해 보았읍니다.
따라서 이 45장의 하단부 문단은 도덕경 역사이래 나온 기존의 어떤 해석과 주석내용과도 전혀 다르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돌출된 해석 내용이 되었읍니다.
노자 도덕경 한문 원문은 가장 오래된 곽점죽간본과 그 이후에 형성된 백서본, 왕필본의 내용이 아주 다른 부분이 몇군데 발견되는데, 그 주된 원인을 대략 추측해 보자면, 백서본 시대에 곽점본의 내용을 보고 개인적으로 손수 베끼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글자를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자로 바꾸어 기록하면서, 내용이 바뀌어진 채로 그것이 대대로 전해져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왕필본등의 도덕경으로 형성된 것 같읍니다.
따라서 현용 노자도덕경은 어차피 잘못된 글자가 많이 끼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道 수행자가 아닌 일반 서지학자나 일반 철학자,한문학자들의 주석으로는 그 개념적인 이해면에서 글자 해석에 한계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읍니다.
오랜세월 깊은 수행으로 실재적인 절대본체를 깨친 도인 정도가 되어야 노자도덕경의 해석을 깊히 있게 옳바르게 할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칩니다.
전반부 문단은 아주 평범하고 쉬운 문장이어서 기존의 해석서 내용과 별 다른 것이 없읍니다만,
후반부는 기존 해석서와는 완전히 다르며, 아마도 노자도덕경 역사이래 이 문장에 대하여는 독특한 해석내용이 될 것 같읍니다.
大成若缺 其用不敝
成;이루다. 缺;이즈러지다,모자라다. 弊;끊다,없어지다.폐해.나쁘다.
大成若缺;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마치 결함이 있는 듯하지만,
其用不弊; 그것의 쓰임은 아무리 써도 끊어지지 않는다.
<大成>이란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으로써 <窮極的인 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이루어진 <궁극의 道>는 우리들의 인식을 넘어서 있는 상태이며, 이원적 앎이라는 의식작용으로는 그것을 완전하게 감지 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불합리한 결함이 있어 보이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작용하는 도의 자연 원리는 아무런 결점없이 전체적으로 조화있게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道>는 전체 현상계인 우주의 무한한 움직임이 끝없이 생성 소멸하며 운행되고 있읍니다.
우주 공간 안에서는 수많은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며 끊임없이 상호 조화작용으로 유지되므로 , 전체적인 입장에서 어떤 결점도 없다는 것입니다.
大盈若沖 其用不窮
盈; 가득차다. 沖; 비다. 窮;다하다,마치다.
大盈若沖; 완전히 가득 찬 것은 텅 빈것 같지만
其用不窮; 그것은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
이문장도 <道>에 대하여 또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道는 완전히 충만되어 있지만, 우리들의 불완전한 의식으로 인식이 될 때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空과 같이 텅빈 것 같이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선가(禪家)에서 흔히 말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와 같은 의미입니다.
완전히 생기로 충만된 道는 텅 빈 것 같이 보이지만,
그 활용적인 현상 측면에서는 무궁무진한 다양성으로 끝이 없이 생성소멸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大巧若拙 大成若詘 大直若屈
巧;교묘하다, 약삭빠르다.솜씨가 뛰어나다.拙;둔하다,어리석다,서툴다.
詘;굽히다.어눌하다.막히다. 屈;굽히다,구부러지다.
大巧若拙; 지극히 미묘한 것은 마치 거칠은 것 같고,
大成若詘;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마치 부족한 것 같고
大直若屈; 완벽하게 곧은 것은 마치 구부러진 것 같다.
이 세 문장도 역시 의식을 초월해 있는 <궁극의 道>를 이원적인 의식으로 인식 할 때에는 오히려 불완전하게 흠이나 결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을 반복해서 표현한 문장들입니다.
지극히 미세하고 교묘한 것은 오히려 거칠어 보인다는 것인데,
마치 순수한 햇빛은 어두워 보인다는 표현과 같읍니다.
이것은 마치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팽이는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과 비슷합니다.
미세하고 순수한 파동을 가진 근본의식은 오히려 거친 육체감각의식을 통해서 볼 때는 알수없고 컴컴한 무지상태처럼 보입니다.
완전하게 성숙된 것은 오히려 졸렬해 보이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완전하게 도를 이룬 도인은 이 세상에 나와서 "나는 깨달은 사람이오"하고 드러내지 않고, 외모상으로 평범한 범인으로 살아가므로 도인같이 보이지 않고 초라한 행색의 촌부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죠.
완전히 절대상태를 넘어선 도인은 자기의 육체마음과는 상관하지 않으므로,
육체의 욕망을 그대로 제어하지 않고 드러내며, 마음의 습관도 그대로 드러내서, 오히려 평범한 상식인들이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의없고, 투정많고, 시비하는 사람으로 졸렬해 보일 수가 있지만, 그 도인의 내면은 항상 그런 외양의 육체와 마음의 습관과는 전적으로 떨어져서 지켜보는 자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인의 겉으로 나타난 외모와 언행으로는 보통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아무도 道人이라고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없읍니다.
'완벽하게 똑 바른 것은 마치 구부러진 것 같이 보인다'라는 말도,
도의 본체에 대하여 표현한 것으로, <道>자체는 곧은 것이니, 구부러진 것이니 표현 할 수 없는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지만, 사람의 의식자체가 원래 파동성의 회전작용을 하는 불완정한 것이므로, 의식과 감각기관이 인식하는 한계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옳바르게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다섯가지 문장에서 <道>는 의식을 초월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기관과 의식으로써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그 한계와 경계,그리고 어떤 속성이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道는 모양없고, 어떤 속성도 없고, 움직임도 없으며, 경계나 크기,색갈이 없지만, 전체에 골고루 펼쳐져 있고, 모든 것에 침투해 있으며, 무한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일체가 오직 道 일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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燥勝蒼 靑勝然
燥; 말리다. 勝; 이기다,낫다.蒼; 우거지다,어슴푸레하다.늙다,허둥지둥하다.
靑; 푸르다,젊다,맑다. 然; 그러한 것, 불타다.
燥勝蒼; (마음의 습기를)말리면 세속생활의 무성한 욕망을 이겨낼 수 있고,
- 집착의 습기를 없애는 수행을 하면 세속생활의 무성한 욕망을 이겨낼 수 있지만,
靑勝然; 맑은 순수의식은 그러한 모든 수행행위조차 넘어서 있다.
이 두 문장은 上部 문단들과는 의미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의 문장입니다.
곽점 죽간본은 上部 문단들과 이 下部문단 사이에 점(.)으로 명확히 구분되어있어, 다른 장이라는 것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백서본과 왕필본,기타 모든 본은 곽점본처럼 구분하지 않고,같은 장으로 포함시키고 있읍니다.
그래서 백서본이나 왕필본에서 이 45장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상단부 문단과 내용이 다른 하단부 문단이 합쳐져서 의미적으로 연결성이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핵심주제가 도데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여기면서도 그냥 적당히 설명으로 뚜두려 맞춰서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상단부와 하단부 문단에 한장으로 편집된 것은, 곽점본 이후에,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백서본에서 부터 같은 장으로 잘못 편집되어 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서는 <곽점본>의 한문원본을 기준으로 우선 해석하고,
백서본 이하 왕필본등의 원문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겠읍니다.
우선 곽점본의 한문 원문을 보겠읍니다.
원래 곽점본 발굴당시의 원문은<燥勝蒼 靑勝然>입니다.
발굴당시 원문에서 <燥>는 마를<燥>에서 왼쪽의 <火>변이 없는 지저귈<소>자 글자이지만,컴퓨터에는 안나오므로 <燥>자를 그대로 올려읍니다.
옛글자인 지저귈<소>자가 지금의 마를<燥>자라고 합니다.
마를 <燥(조)>는 "(물기를)말린다,마르다" 뜻이며,
<蒼(창)>은 "수풀이 푸르게 우거지다,어둠침침하다,엉키다, 허둥대다"등의 뜻이 있읍니다.
<청(靑)>은 "젊다,맑다,푸르다"는 뜻이고,
<연(然)>은 "그러한 것(앞의 것을 가리킴), 틀림없다,불에타다"의 뜻이 있읍니다.
<燥勝蒼>에서,
<燥>는 "물기를 말린다"라는 뜻이므로, 마음의 습기 또는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의 습기를 "말린다"라는 의미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말린다"라는 무심(無心)수행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勝>은 그대로 "이긴다,견디어 낸다,벗어난다"등의 뜻으로 해석됩니다.
<蒼>은 "숲이 울창하게 엉켜있다"라는 뜻으로,여기서는 "속세의 무성한 욕망에 얽힌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읍니다.
따라서 <燥勝蒼>의 해석은 < 집착의 습기를 없애는 수행을 하면, 세속의 무성한 욕망을 이겨낼 수가 있다>
<靑勝然>은,
<靑>은 "맑다"라는 뜻이며, 의식을 넘어선 순수의식을 "맑음 것"으로 표현한 것 같읍니다.
앞의 문장인 <燥勝倉>은 주객(主客) 이원적인 상태에서 마음을 닦는 수행이지만,
<靑勝然>은 원래부터 이원화적인 마음과는 상관없는, 의식넘어, 一元的인 순수의식의 움직이지 않는 "고요하고 맑은 바탕"상태를 말하는 것 같읍니다.
또한 <然>은 "그러한 것"이므로 앞 문장에서 말한 "집착의 물기를 없애는 수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靑勝然>은 < 순수한 의식은 그러한 마음수행조차 넘어서 있다>라고 해석할 수가 있읍니다.
<燥勝蒼 靑勝然>은 <집착을 없애는 수행을 하면, 세속의 무성한 욕망을 이겨낼 수가 있지만, 맑은 순수의식은 그러한 마음수행조차도 넘어서 있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백서본에서는 이 글자들을 애당초 처음부터 잘못 읽은 것 같읍니다.
<燥勝蒼 靑勝然>에서 말릴<燥조>자를 성급할<躁조>자로 대치해서 바꾸었읍니다.
<燥조>는 "물기를 말리다"라는 뜻이지만,
<躁조>는 "성급하다,시끄럽다,떠들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푸를 <蒼창>자를 찰<滄창>자로 바꾸어서 대치했읍니다.
<蒼창>은 "숲이 우거지다, 울창하다,어둠침침하다,허둥지둥하다"이며,
<滄창>은 "큰바다,차다,싸늘하다,춥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靑청>을 <淸청>으로, <然연>을 <熱열>로 바꾸어서 읽었읍니다.
그래서 원래 곽점본인 <燥勝蒼 靑勝然>을 -> <躁勝滄 淸勝熱>로 백서본과 비슷하게 곽점본 발굴초기에 해석하여 읽었읍니다.
이렇게 곽점본 원문의 글자를 아예 바꾸어서 해석한 내용이,
<자주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기네>라고 해석을 한것이 백서본,왕필본,하상공본-- 등등 모든 노자도덕경의 똑같은 내용입니다.
이것은 백서본 원문자체 부터 잘못 글자가 바뀌어져서, 이러한 해석이 되어 있는데, 백서본 원문은 <躁勝寒 靜勝熱>로 되어 있으며, 곽점본 발굴직후 곽점본의 문장을 연구한 학자들이 백서본 원문과 같은 뜻을 맞추기 위하여 아예 곽점본 본래 글자를 무시하고 곽점본도 <燥勝滄 淸勝熱>으로 바꾸어 백서본과 비슷하게 해석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점점 흘러가면서 백서본->왕필본->기타 하상공등 모든 노자도덕경이 백서본의 문장대로 전송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왕필본도 백서본과 같은 <躁勝寒 靜勝熱>로 되어 있읍니다.
이는 잘못된 백서본 문장자체가 그대로 전송해서 내려온 것을 그동안 누구도 지적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서 후세들에게 전달된 것이죠.
그러면 왜 백서본의 이 문장이 애당초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일견해 보겠읍니다.
백서본의 <자주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라는 이구절은 그 다음에 연결되는 <맑고 고요하면 천하를 안정되게 유지시킨다>라는 내용과 의미적으로 어떤 연관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읍니다.
<자주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라는 내용은 어떤 측면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환경에 반응한다는 개인의 무위적인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으나,이문장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맑고 고요하면 천하를 안정되게 한다>라는 결론적인 문장 앞에서 서술될 수 있는 원인적인 전제조건으로서 전혀 논리적 조화가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맑고 고요하면 천하를 안정되게 한다>는 전체적이고 일원적인 결론상태는 <자주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는 개체적이며 자연적인 반응행위와는 전혀 인과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하는 것은 개인이 환경변화에 저절로 적응하는 주객 이원적 현상이며 감각적 반응이고,
<맑고 고요하면 천하를 안정시킨다>라는 문장은 전체 현상계를 넘어서 있는
절대바탕에 안주해 있는 일원적인 도인의 상태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7,8세기 중국선사들의 유행어인 <배곺으면 밥먹고, 졸리우면 잠을 잔다>류의 도인의 일상사를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무위자연적인 것을 표현한 말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래서 그런 도를 얻은 도인은 천하를 안정시킨다,라고 해석할지도 모르겠읍니다만, 이 45장 말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요지를 그런 애매한 비유나 암시적인 은유적 묘사로써 우회해서 표현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시 위에서 필자가 해석한 내용으로 아래 결론 문장과 연결해 보겠읍니다.
<집착의 물기를 없애는 수행을 하면, 세속적 욕망들을 이겨낼 수 있지만,
맑은 순수의식은 원래부터 그러한 마음수행조차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맑고 맑으면 천하를 안정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평소에 마음의 습기를 닦는 수행을 하면 세속적 욕망의 숲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원래부터 의식 넘어에 있는 절대 무심상태의 순수의식(靑)이 되면,
마음의 습기를 없애려는 수행조차 넘어서 있으며,
그 순수의식이 전체 세상을 안정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을 재음미 해 보면, 즉 마음의 습기를 말리는 점진적 수행보다는
즉각적으로 마음을 넘어가서 맑은 "순수의식(靑)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즉각 깨달음. 돈오(頓悟)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넘어가서 맑은(靑) 순수의식이 된다는 것은 아무 생각도 없는 완전"모름"상태로 전체와 하나로 共振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돈오방편의 공개된 秘意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燥勝蒼 靑勝然 淸淸爲天下定>이라는 마지막 세 문장의 의미가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노자도덕경에서 가르쳐 주는 참된 진리의 메세지가 그대로 우리들에게 명확하게 전달이 되는 것 같읍니다.
淸淸爲天下定;
맑고 맑으면 천하를 안정되게 할 수가 있다.여기서 <淸淸>을 두번 반복한 것은 <맑고 맑다>라고 의식 넘어 절대바탕의 순수한 청정성을 강조 표현한 것입니다.
즉 "깊고 깊은 곳"에 있는 "맑고 맑은 것"을 말하며,
가장 밑바탕의 순수한 상태인 절대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定>은 <안정시킨다>라는 뜻입니다.
즉 <지도자 또는 수행자가 절대바탕의 깊은 순수의식이 되어 있으면,
세상이 안정된다>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물론 한 개인의 수행자가 절대바탕에 안정되어 완전히 깨달았다면,
그 도인에 딸린 모든 세상이 안정되어 평온합니다.
또한 한 지도자가 절대바탕에 완전히 안주한 깨달은 도인이라면,
그 도인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전체가 안정되고 평화스럽겠죠.
지도자가 마음이 텅 비어서 맑으면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내용에 대하여는
도덕경 제2장에서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이장을 잠깐 참고해 보겠읍니다.
"虛其心 實其腹- 지도자가 마음을 비우면, 나라가 풍요해지고,
弱其志 强其骨- 지도자가 자기 의지를 내세우지 않으면, 국력이 강해진다"라는 내용이 있읍니다.
이것(虛其心 實其腹)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재산이나 명예,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이 마음이 텅 비어서 맑으면, 그 밑의 관리들도 지도자를 본받아 욕심이 없을 것이고, 백성들은 자기 생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자연히 농업등 여러 산업분야도 활발해져서 백성들이 풍족하고 맘 편하게 살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가 영토를 확장할 욕심으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백성들을 강제 동원한다거나, 거대한 궁전이나 성을 쌓는등 백성들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여 전쟁이나,국가적인 거창한 토목공사등 국가적 큰 프로젝트를 계획한다면,백성들은 강제 병역이나 노역에 이끌려 다녀야 하므로, 모든 백성들이 불안해 하여 나라 전체가 안정되지 못하고,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피신하던가, 또는 관리들이 그런 기회를 틈타 부정을 저지르며 뱃성들을 착취하는 등,사회질서가 불안정해지므로, 국가기강이 해이해 질 수가 있는데,
"弱其志 强其骨'이란, 지도자가 그러한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는 큰 야망을 의지적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백성들이 불안해 하지 않으므로,사회질서도 흩어지지 않고, 관리들이나 국가기관도 역시 기강이 바로 잡혀 있어서, 국력도 튼튼하게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그 지역상황에 따른 이야기 입니다만, 일부분은 현대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측면도 있읍니다.
지도자가 마음을 비우면,
나라가 어떻게 풍요해지고 국력이 어떻게 강해지는가를 즉시 이해를 못하겠지만, 위의 도덕경 2장에서 그 원리를 어느정도 설명해 주고 있어서 잠깐 소개해 보았읍니다.
이 도덕경 45장 마지막 문단에서 사람은 보통 이원적인 마음 상태를 초월하여 순수의식에 안정되면 자기 의식 안의 전체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읍니다.
세상자체가 바로 근원의식의 한점(一點) 안에 있으며,
그 도인의 존재의식 자체가 전체 현상화 된 세상 그자체입니다.
따라서 그 본체인 참나는 이 전체 나타난 현상세상 넘어에 있으며,
보편의식이 전체세상을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현상세계 전체가 바로 도인의 존재자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참나의 순수함이 되면 이세상도 저절로 순수하게 안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자도덕경 45장 맨 마지막 문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