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순수 앎이란 어떤 것인가?

무한진인 2009. 9. 18. 18:58

 

 

 

"단일한 순수앎"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좀 더 친근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또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를 좀 해 보자.

 

한 밤중에 그대가 집 밖으로 나가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한번 쳐다보라.

그대가 달을 쳐다 보는 순간에, 

그대의 마음의 창문으로부터 나온 순수의식이 달을 향해서 어떤 속도를 가지고 순식간에 달려가는가?  

순수의식이 단 한 순간에 전체 하늘에 완전히 펼쳐지는 것을 보라.

 

그리고 따져 보라.

어떻게 마음이 이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가?

마음은 다만 이 "순수의식"의 도움을 통해서만 달에 대해 지각할 수 있는 그런 스피드를 얻은 것 뿐이다.

마음이 가는 곳이 어디든지 간에,

의식이 먼저 거기에 이미 주재해 있다.

 

마음의 움직임은 이 의식 안에서 잠깐 휘젖을 정도로 미약한 것인데,

그대가 놀라는 것이다.

그대가 단순히 눈꺼풀만 열면,

의식이 자동적으로 전체 하늘에 펼쳐지고,

수많은 별들과 달이 담겨있는 광대한 우주공간인 하늘이 나타난다.

그것이 눈을 뜨자마자 펼쳐진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

오히려 이미 그것이 전체에 펼쳐져 있었던 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의식이 눈으로부터 나와서 달로 순간적으로 날라가면,

사람은 그것이 달이라고 인식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상적인 앎이다.

이 예에서 보듯이,

달은 대상이고, 의식은 그 달 모양을 즉각 붙잡아서,

그것이 달이라고 아는 것이다.

만일 달 앞에 구름이 덮혀 있으면,

의식은 구름형태를 취해서, 구름을 대상으로써 본다.

그래서 의식이 구름을 비추고, 대상으로써 구름을 아는 것이다.

 

지금 어떤 대상도 섞이지 않은 "순수 앎",

즉 대상이 없는 의식의 껍질에 대하여 좀 주의를 주어 보자.

눈과 달 사이에 놓여진 공간, 허공은 그대의 주의가 가지 않지만,

그것은 거기 자연적으로 그대로 있는 것이며, 본래부터 전체에 펼쳐져 있다.

그것이 앎의 순수한 형태와 비슷하다.

 

별로 중요하게 주의를 주지 않던 공간,허공을 의도적으로 주의의 대상으로 삼으면, 그것은 "공간"으로써 주의의 대상으로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알려질 수 있는 것은 "마야(환상)"이며, 그리고 전혀 알려질 수 없는 것은 "부라만"인 것이다.

 

달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눈과 달 사이에 있는 공간 또는 허공은 그대의 주의가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이 없는 의식과 같다.

만일 허공이나 공간이 따로 떨어져 있는 대상으로써 본다면,

순수앎은 제로(無)로 변하는데,

왜냐하면 만일 공간이 따로 떨어져 보인다면, 마음의 變相은 空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늘과 순수앎의 사이에 어떤 다른점이 있다면 , 아래와 같은 것이다.

한 개인이 자기 생긴대로 별도로 떨어진 것이라고 그 공간을 보면 하늘이고,

보는 작용을 포기해 버릴 때는 그것이 "순수 앎"인 것이다.

 

이 방법으로 일단 순수앎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나면,

어떤 대상에 물든 의식일지라도 그것을 분별해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단 순수한 물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물이 어떤 다른 물질이 혼합되었다 할지라도, 그 혼합체 안에서 그 순수한 부분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은 어름으로 굳어질 수 있는 액체이다.

물이 그 액체성질을 잃어 버리고, 어름의 강도로 굳어질지라도, 그것은 어름의 형태로 된 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것은 진흙 속에 있는 습기가 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와 유사하게, 일단 순수의식이 알려지게 되면, 이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안정된 존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며,

또한 존재,의식,지복(사트치트아난다)의 형태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순수한 물은 어떤 색갈,형태,맛,향기도 전혀 없는 것이다.

한번 이것을 적절히 이해하고 나서, 물이 얼어서 모양이 생기든,쥬스맛을 내든,설탕 물이든, 과일향내가 나든, 빨간 색갈로 물들든, 그 속에서 형태, 쥬스맛, 설탕단맛,향내,색갈 등 등 순수물이 아닌 다른 특성은 다 무시하고 제거해 버리면, 

순수한 물이 무엇인가를 의심할 바없이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순성분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순수앎이 조건화 될 때 일지라도, 그 조건화된 것을  제거하므로써,

그리고 그 불순물에 관련된 기본성분을 나누어 분해함으로서,

완전히 "순수 앎"만을 인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순수앎은 모든 곳에 완전히 펼쳐져 있으며,모든 형태 안에 꽉 차있다.

 

그러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에 의해서 순수의식에 도달하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 여러가지 신의 속성을 리스트로 열거하는 방법으로 설명한다거나,

신은 모든 존재, 모든 형태 속에 펼쳐져 있다는 식으로 지껴려 댄다거나,

또는 라마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거나,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는 등등, 직접 체험도 없으면서, 그런 거품같이 허황한 말을 지꺼리는 것은 본인에게 아무 이득도 없다.

이런 허황하게 지꺼리는 타입과는 좀 다르게,

순수앎을 체험하지도 않고 "내가 부라만이다" 또는 " 감각기관은 제 할일을 하지만, 그러나 나는 행위자가 아니다." 또는 " 내 문중에는 선도 악도 없다" 등등 허황한 말을 지꺼리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진아를 깨달기는 커녕, 오로지 진아깨달음을 사기치고 다니는 것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사는 , 자칭 타칭 소위"깨달은 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자체를 잊어버리는데, 그것은 다른 세상(절대상태)도 역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성인 까비르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가 왔던 것처럼 똑같이 가버렸다" 

이것은  그들이 태어났던 그 의식 안에서  그대로 똑같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죽을 때도 태어날 때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얻은 것이 없다.

 

"앎의 지복상태"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절대 존재를 깨쳤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 S .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