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육조단경

돈황본 육조단경(6)

무한진인 2009. 8. 29. 20:20

 

 

 

16. 근기(根機)

구도자들이여,

만약 깊은 법계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옳바른 반야바라밀 수행으로 닦아야 할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

 

이것을 아는 사람은 그 공덕이 무한하여 끝이 없다는 것을 그 금강경 안에서 분명히 찬탄하고 있는데, 말로써는 이루 다 표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상승법으로써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해 논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믿을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왜 그런가?

비유해 보자면, 큰 용이 염부제에 비를 내리면,

마을의 집들이 마치 풀잎파리가 떠 다니는 것과 같지만,

만일 큰 바다에 비가 내리면 불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만일 대승의 구도자가 <금강경>을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어 즉각 깨닫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본래부터 저절로 알려져 있는 지혜이며,

그 저절로 비추는 지혜의 작용을 이용하여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므로,

구태여 문자(지식)를 빌려서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자면,  빗물이 원래부터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원래는 용왕(水神,자연법칙)이 강과 바다 한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서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생명체건 무생물체건 모두 다 활기차게 생기를 주고,

그 모든 물의 흐름이 다시 큰 바다로 들어가서,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뿌리가 얕게 뭍힌  작은 풀이나 나무가 만약 큰비를 만나게 되면 뿌리가 뽑히고, 뒤집어져서 더 이상 자라지 못 하는 것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다는 점에서는 지혜가 많은 사람이나 근기가 작은 사람이나 아무런 차별이 없거늘,

어찌하여 근기가 작은 사람은 이 돈교법문을 듣고도 즉각 깨닫지 못하는가?

그것은 잘못된 개념과 의심이 두텁게 덮어있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니라.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반야의 지혜는 크거나 또는 작은 것이 없는데,

대부분의 중생이 미혹하여 (내면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밖으로만 보면서 마음을 닦으며 부처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내면의 자기성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사람의 근기가 낮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낮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이 돈교의 가르침을 알아 듣고,

밖으로 향해서  닦던 것을  내버리고,

자기 마음을 옳바르게 가다듬어, 항상 내면으로 향하게 되면,

그 동안 번뇌와 세속일에 찌든 중생일지라도 즉시 쉽게 깨칠 수가 있느니라.

이는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줄기들을 받아 들여서 작은 물들과 큰물들이 한데로 합쳐져 한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자기의 원래 본성이 무엇인가를 확연히 깨치게 되면,

내면과 외면에 (어느 한 곳으로만 치우쳐서)머물지 아니하고,

오고 감에 자유로워져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지므로,

모든 곳에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법을 따라서 공부하면

(이 돈교 가르침도) 반야경에서 가르치는 것과 똑 같은 가치가 있느니라.

 

17. 견성(見性)

모든 경서 및 문자와 소승,대승, 십이부의 경전이 모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성품이 "있는 그대로" 세워진 것이니라.

만약 <나(我)>가 없다면 지혜있는 사람도 없고, 만법도 본래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깨달음 법은 본래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것임을 알아라,

모든 경전과 책들은 이런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인연에 따라서는,

사람 가운데 어리석은 이도 있을 수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을 수가 있어서,

어리석으면 소인(보통 세속인)이 되기도 하고, 지혜로우면 대인(도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이에게 묻고,

지혜로운 이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가르쳐 주면,

어리석은 이도 무지를 깨쳐서 마음이 열리게 되어,

큰 지혜를 지닌 도인과  별다른 차별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라.

깨치지 못하면 비록 부처도 곧 중생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깨치기만 하면 중생도 곧 부처가 되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의 중심 속에 있느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자기 마음의 중심을 쫒지 아니하여,

참되고 항상 변함없는 자기 본성을 즉시로 보질 못하고 있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은 청정(淸靜)하다"고 하였다.

 

마음의 근원을 알아서 자성을  보게 되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즉각적으로 활연히 깨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도로 찾게 되느니라.

 

                                                               -돈황본 육조단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