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 반야품의 한글번역문장에 대한 再顧
돈황본 육조단경의 반야품에 나오는 문장 중에서,
<捉前念 迷卽凡 後念 悟卽佛>이라는 문장이 있읍니다.
기존의 여러 한글번역판들은 거의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뒷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라고 번역되어 있읍니다만, 이것이 바로 애매모호하게 번역된 부분입니다.
위의 문장은 돈황본이고, 다른 판본은 대개가
<前念 迷卽凡 後念悟卽佛>
로 되어 있어서 맨앞에 <잡을 '捉'> 자가 빠져 있읍니다.
이문장의 한글번역도 대부분의 기존 번역서들은,
<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라고 번역되었읍니다만, 마찬가지로 명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읍니다.
모든 육조단경 해설서와 번역서들이 위의 한문문장을 한글로 번역한 내용이 거의모두 비슷하게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읍니다.
그러나 좀 세밀하게 육조단경을 읽어본 사람이면, 위에 있는 한글 번역문장에 대해서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앞생각과 뒷생각>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것이죠.
물론 불교내의 경전연구전문가나 불교학자들, 깊은 수행을 한 도승들은 그 앞생각 ,뒷생각이라는 뜻이 무엇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개념적인 이해로 파악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앞생각,뒷생각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조사해 보겠읍니다.
우선 앞생각,뒷생각을 시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앞생각은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난 생각일 것이고, 뒷생각은 나중에 일어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생긴 생각에 미혹하면 범부가 된다고 하고, 뒷생각에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했는데,
앞생각에 미혹하면 범부가 된다고 하는 것은 약간 이해가 되지만,
뒷생각에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말은 도저히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왜냐하면 둘 다 시간을 따라서 순차적으로 생긴 것이라면, 앞생각이나 뒷생각이나 똑같이 일시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마음의 변상일 텐데, 어째서 뒷생각에 깨치면 부처가 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읍니다.
따라서 앞생각,뒷생각이 시간에 따라서 전후에 생기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졌읍니다.
다음에 공간,시간적인 측면에서 앞생각, 뒷생각을 조사해 보자면,
앞생각은 의식의 시야전면에 대상으로 나타난 전체 현상계와 육체마음의 각종 상상,이미지등 마음의 변상과 인식결과라고 볼수가 있겠읍니다.
또한 뒷생각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주시자라고 임시로 의미를 지어 보자면,
얼뜬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입니다만, 사실은 이것도 이치에 맞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주시자는 원래 "생각없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생각없음"의 모양없는 주시자가 "뒷생각"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뒷생각이라는 것은 별도로 다른 개념일 수도 있겠읍니다.
즉 존재의식 또는 아뢰아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읍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생각>이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가 없는 것이죠,
따라서 <뒷생각>이라는 번역어휘는 잘못 선택된 것이라고 볼수 밖에 없읍니다.
그외에 어떤 사람들은 앞생각,뒷생각을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겠지만,
이러한 모든 추가 설명은 단순히 잘못 번역된 어휘와 한글문장을 억지로 다시 의미를 꿰어 마추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읍니다.
그러면 위의 대부분의 한글번역서들이 번역한 간단한 문장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길래, 한문문장을 한글로 번역을 해도, 그문장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추가로 설명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렵고 난해한 글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문문장 자체가 원래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인가?
아니면 한글로 어휘선택이나 번역을 잘못했기 때문에 난해하고 어려워진 것인가?
제가 보기에는 바로 두번째의 한글 어휘선택과 번역을 잘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그 수많은 육조단경 한글 번역본들이 모두 한결같이 비슷하게 오역을 해 버린 것입니다.
이 문장의 한글번역에 대해서 그동안 누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수정해야 된다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으로 육조단경을 자세히 읽어 보다가, 반야품에서 완전히 잘못된 번역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갑자기 글을 쓰게 되었읍니다.
그럼 기존의 한글 번역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조사해 보겠읍니다.
<捉前念 迷卽凡 後念 悟卽佛>-착전념 미즉범, 후념 오즉불
이 문장에서 <念>자의 의미를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念>자는 한문옥편에 <생각 念>입니다.
생각이라는 한문자에는 <念,思, 顧,想,慮--등등>이 많읍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라는 한자어 중에서 왜 하필이면 <念>를 썼을까요?
보통 생각이라고 하면 우리 마음에서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나 상상 ,개념등, 마음의 변상을 말하는데, 과연 <念>자도 이러한 일시적인 생각을 말하는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일정한 의식이나 마음상태를 말하는지 글자를 파자하면서 분석해 보겠읍니다.
<念>자는 <이제 今>와 <마음 心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이것을 자세히 숙고해 보면 <지금 마음>을 뜻하며, <현재마음의 주의 촛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읍니다.
불교 한문경전이나 선사들 어록을 보면 이 <念>자가 <注意> 또는 <觀心> 과 비슷한 동의어로 쓰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읍니다.
예를 들어 <念佛을 외다>고 말하는 경우 <나무아미타불>같은 만트라에 정신을 집중하여 왼다는 의미가 있읍니다.
<부처를 念하다>할 경우에 항상 마음 속에 부처를 품고 부처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念하다>는 <주의를 주다><관심을 주다> <마음을 한군데 뫃아 두는 것> 등의 뜻임을 쉽게 관찰할 수가 있읍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이라고 한다면, 마음속에서 어떤 상상이나 느낌, 개념등 인식 내용물이 움직이는 마음의 변상과 의식,감각,느낌,의식의 변화를 말하므로,
생각이라는 것과 주의를 준다는 것은 약간 의미가 다릅니다.
위의 문장에서 <念>자는 <注意를 준다>를 의미하는 것이지, 들락날락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위의<捉前念>이라는 문장에서,
<捉>은 붙잡다,라는 동사이며, <前念>은 <주의를 앞쪽으로 두면>하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前念>이 <앞에 있는 생각>으로써 명사가 아니라, <주의를 앞에 둔다>라는 뜻으로 <念>이라는 목적어와 <前>이라는 부사가 도치되어 붙어있는 것입니다.
<前念>은 명사가 아니라, <앞에 주의를 준다>는 동사로써 해석을 해야 되겠지요.
왜 두 글자가 위치가 바뀌어 거꾸로 도치되었느냐 하면 앞에 <捉-붙잡다>라는 동사가 있기 때문에, 이 동사를 <前>자가 받쳐주기 위해서 순서가 뒤바뀌었읍니다.
그럼 왜 <捉-붙잡는다>는 동사가 앞에 나와있을까요?
이것은 바로 <~한다면>이라는 반가정법으로 쓰기 위해서 동사가 맨 앞으로 前置되어 문장을 구성시켰읍니다.
따라서 위의 문장을 해석해 보면,
< 주의를 앞쪽에다 붙잡고 있으면~>이라고 한글로 그대로 쉽게 번역이 됩니다.
문장 전체를 번역해 보면,
< 주의가 앞을 향해 붙잡고 있으면 (대상에) 미혹되어 즉시 보통사람이 된다>
라고 해석이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마음의 주의를 앞에 나타나 보이는 현상세계에 관심과 주의를 주면, 그 보이는 대상들에 미혹되어서 보통사람인 범부같은 마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눈이 앞만 볼수있기 때문에 보통 앞쪽을 눈의 시야라고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범위를 말하는데, 정신적으로도 앎의 범위를 보통 외면, 또는 현상계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죠.
즉 앞쪽은 보이고 알수 있는 대상이 있으며, 이 보여지는 대상들에 주의를 준다면 그 물질적인 대상들에 마음이 미혹 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깨닫지 못한 범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後念 悟卽佛>에서도,
<주의가 뒤편으로 향하면 깨달아서 바로 부처가 된다>고 해석이 됩니다.
여기서 뒷편이라는 것은 알수없는 내면의 주시자를 말하며, 그 주시자가 空이고 모름인데,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면, 空을 깨쳐서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뒷편인 내면에 주의를 준다는 것은 , 마치 뒤퉁수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르듯이, 마음의 내면도 알수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그것에 주의를 준다면 그 아무것도 없는 무지의 空을 깨쳐서 부처마음을 깨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前念>과 <後念>을 명사화 해서 번역해 볼 수도 있겠죠.
즉 <前念>을 <앞에 주는 주의>라고 번역하고, <後念>을 <뒤에 주는 주의>라고 명사화 시키면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됩니다.
<앞으로 향한 주의를 붙잡고 있으면 (대상에) 미혹되어 바로 범부가 되는 것이고, 뒤로 향한 주의는 (空을) 깨쳐서 즉시 부처가 된다>
이렇게 <前念>과 <後念>을 명사화해서 번역을 해보면, 그런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 스럽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해석서들은 번역측면에서 두가지가 잘못 되어 있는 것 같읍니다.
첫째는 한글의 어휘선택이 부적절한 것 같읍니다.
<前念>을 <앞생각>, <後念>을 <뒷생각>이라고 번역하여, <앞과 뒤>가 시간적인 관계인지, 공간적인 관계인지 아리송할 뿐 아니라,
<생각>이라는 단어는 상상,개념,기억,인지,감정,자아감,느낌,주의--등등 여러가지 마음작용을 포괄적으로 표현 하는데, 주로 마음의 표면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체 문장을 더욱 파악하기 난해하게 만드는 단어가 되었읍니다.
둘째로는 <前念>과 <後念>을 <앞생각>과 <뒷생각>이라는 명사화하여 번역한
것이 잘못입니다. 이단어를 명사화 해서 문장을 구성할 경우에 한문문장 자체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한글문장으로 바꾸면 그의미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고정되고좁아져서 읽는 사람이 고정된 의미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위와같이 두가지 번역상의 어휘표현때문에 위의 반야품에서 가장 의미있는 문장에 한글번역으로 난해한 문장으로 둔갑되어 버린 것 같읍니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잘못 번역되어 전달되어진 육조단경의 반야품 내의 짧은 문장에 대한 번역 오류를 나름대로 수정해서 다시 번역해 보았읍니다.
마지막으로 총 정리해 보면,
- 捉前念 迷卽凡 後念 悟卽佛-
[마음의 주의를 앞편에 붙잡고 있으면, (대상에) 미혹되어 범부가 되고,
마음의 주의를 뒤편에 두면, (空을) 깨쳐서 부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육조단경 반야품에 있는 <捉前念迷卽凡 後念悟卽佛>에 대한 옳바른 해석 내용의 결과입니다.
결론적으로 <前念>이란 <이원적이고 상대적인 앎,즉 개인의식 또는 속세인의 보통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後念>이란 <일원적인 의식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순수존재의식>을 말하는 것 같읍니다.
前念만을 향하는 속세인의 입장에서는 前念은 "아는 것'이고, 後念은 '모르는 것'이며, 後念만을 향하는 구도인의 입장에서는 前念은 '無知'이며, 後念은 '眞知'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前念을 "앞생각", 後念을 "뒷생각"이라고 한글번역을 해놓았기 때문에,
前念과 後念이 모두 이원적이고,상대적인 "생각"으로만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면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좀 구차스럽지만 길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의식의 주의가 앞으로만 향한다면(前念), 뒤의 주시자의식(後念)을 알수없고, 반대로 완전히 後念(주시자)자체가 된다면, 앞의 前念(이원화 대상적인 마음)은 없읍니다.
前念과 後念이 동시에 함께 섞여 있을 수도 없고, 중간도 없읍니다.
위와같이 번역을 수정해 놓고 보니, 기존의 해석서들의 내용에서 앞생각,뒷생각에 대한 별도 해설을 할 필요도 없으며, 이 문장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는 즉시 바로 쉽게 이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그까짓 단 한 문장가지고 뭐 그리 긴글로 일장연설을 늘어 놓느냐고 탓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읍니다만, 육조단경은 선불교 구도자들이 가장 귀중하게 참고하는 소중한 경전이며, 육조단경 내용 안에서도 반야품은 그 중 알맹이에 해당하고, 반야품 속에서도 위의 <前念,後念>문장은 육조혜능의 돈오방편의 핵심을 표현한 문장입니다.
그런데도 기존의 한글 번역문으로는 명확하게 그 핵심의미가 표현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에 있다가 나름대로 비교적 긴글로 의견발표를 한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단 한 문장이지만, 그 동안에 육조단경을 존귀하게 여기며 공부하는 구도자에게는 이 단경 안에 있는 한글자 한글자가 모두 깨달음에 직접 다가갈 수있는 길이 될 수가 있으며, 번역된 어휘의 선택과 표현 여하에 따라서 그 이해의 깊이와 넓이가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으며, 또한 잘못된 번역에 의하여 진리의 언어인줄 믿고 있다가 무지의 늪에서 헤멜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육조단경을 처음으로 숙독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검토해 본 결과를 일부글로써 표현해 본 것 뿐입니다.
이만 긴글 마치겠읍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