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육조단경

돈황본 육조단경-5

무한진인 2009. 7. 19. 10:36

 

 

 

14, 성공(性空- 空의 성품)

 

지금 이미 삼보에게 스스로 귀의하여 모두들 지극한 마음들일 것이니,

구도자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리밀법을 설명해 주리라.

구도자들이여, 비록 마하반야바라밀법에 대하여 생각은 하지만,

알지 못할 것이므로 혜능이 직접 설명해 주리니 각자 들어보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나라의 범어이다.

당나라 말로는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지로 수행해야 되며, 입으로만 외워가지고는 안된다.

입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은 것이지만,

직접 닦고 실천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란 큰 것이다.

마음이 무한하게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멍청한 마음으로 앉아있지는 마라.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질 수가 있느니라.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과 산하대지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지옥을 그 안에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자성(自性)이 만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 않고도 경계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이  크다고 하나니, 이 마하란 곧 크게 行한다는 것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말어귀만 생각하고 지혜있는 이는 내면 속에서 실행하느니라.

또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내고, 생각이 없는 것을 크다고 알고 있으나 

이것도 또한 옳지 못함이니라.

마음이 무한하게 크다 하여도, 깨어있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空을 말하면서, 이 깨어있음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15.반야(般若- 깨달음 지혜,자각)

 

어떤 것을 반야라 하는가?

반야는 비쳐보는 지혜이다.

한시도 생각 생각마다 멍청하지 않고 항상 지혜(자각)로써 비춰서 주시하는 것을

곧 반야행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자각)가 끊기고,

한 생각이 지혜로써 깨어있으면 곧 반야가 드러나지만,

(보통 사람들)마음 속은 항상 어리석어서, 혼잣말로 "나는 수행한다고"고 입으로 중얼거리기만 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말어귀만 생각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내면에서 (침묵으로) 깨어있나니,

명상 중에 어떤 망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된 상태가 아니며,

명상이 항상 일정하게 (침묵으로)진행되면 이것은 바르게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느니라.

 

이렇게 바르게 수행을 할 줄 알아야지 반야법을 닦는 것이며

닦지 않으면 곧 보통사람이요,

오로지 한 생각만 가지고 닦는 사람만이 부처와 동등한 법신이 되느니라. 

 

구도자들이여,

번뇌(생각)가 곧 보리(깨달음)이니,

마음의 주의(念)를 앞쪽(앎의 대상)에 붙잡고 있으면 (대상에) 미혹되어 곧 범부가 되는 것이고,(捉前念迷卽凡) 

마음의 주의(念)를 뒤편(주시자,空,모름)으로 두면 (空을) 깨쳐서 곧 부처가 되느니라.(後念悟卽佛) 

[* 註 ; 이부분에 대한 기존 해설서들의 해석은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이고, 뒷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다>라고 한문 문장대로 직역하였지만, 보통사람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해석들을 했읍니다만, 그 해석문장이 알기 쉽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또는 명확하게 무슨 의미를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한 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해설도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을 찾아 볼수가 없으며,대부분의 해설서들이 마치 구렝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얼버무려서 그냥 넘어가는 것 같읍니다.

아마도 해석한 분들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파악을 하지 못한 것 같읍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제15장 반야부>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장입니다.

위의 본인 해석내용을 더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 마음의 주의를 눈앞에 나타난 현상(대상들)에만 두면 보이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착각하며 사는 보통 일상적인 평범한 범부의 마음이지만, 마음의 주의를 뒷편의 알수없는 내면에 집중하면  空을 깨쳐서 즉각 부처의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고 알기 쉬운 말인데, 한문 원문을 잘못 번역들 하는 통에 이 문장이 육조단경에서가장 난해한 문장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선수행을 오랫동안 해서 많은 후배 수도승들을 가르치는 명성높은 대선사들과 육조단경을 전문으로 강의하는 유명한 강원스님들도 이구절에 대해서는 옳바르게 해설하지 못하는 것을 본인이 직접 몇차례 목격한 적이 있읍니다.-무한진인-]

 

구도자들이여,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존귀하고 높으며,최상승 수행법이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오는 것이 없느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이 수행법으로 큰 지혜를 얻어서 저 건너 언덕에 이르렀으며, 오음(五陰)의 번뇌, 티끌,고통을 벗어 버렸나니,

가장 존귀하고 높으며, 첫째가는 길이니라.

이렇게 가장 으뜸법이라는 것을 찬양하면서 최상승법을 수행하면 틀림없이 성불하리니,

가고 오는 것도 없으며, 머물것도 없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할 것도 없느니라.

이법은 정(定-침묵)과 혜(慧-주시))을 함께 결합한 것으로서,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으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삼독(三毒)을 바꾸어서 대신 계정혜(戒定慧)로 대체한 것이니라.

 

구도자들이여,

나의 이 법문은 팔만사천가지 지혜가 딸린 것인데, 어째서 그런고 하니,

이 속세세상에는 팔만사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라.

만일 이러한 번뇌들이 없다면,

지혜란 항상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이므로 자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이것을 깨달으면 아무 생각도 없고,기억도 없고 집착도 사라져서

허깨비 같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느니라.

즉  참된 성품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지혜를 이용하여 저절로 비추어 보므로서, 일체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자성을 보아서 깨달음에 이르게 되느니라.           (白隱閑人 譯)

 

                                                                  -돈황본 육조단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