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한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맹세하라.
마하리지 :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푸라나야마(pranayama)라고 하는데,
자네가 그 수행법으로 호흡에 집중하면 평온해 질 수는 있어.
그러나 주시자(내가 있음)는 생기 호흡(푸라나)이 아니고,
호흡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자일 뿐이야.
그 주시자는 어떤 곳으로부터도 오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항상 (지금여기에 변함없이) 있는 것이거든.
그것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모나지도 둥글지도 않으며, 어떤 모양도 없어.
자네는 그것을 그리스도 또는 크리슈나, 라마 혹은 붇타 등,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이름으로도 부를 수가 있어.
그것은 순수한 사랑이지.
이 주시자가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존재에 대한 증거이며,
이것은 보편적인 "앎"이야.
이 생명기운(푸라나)의 호흡이 무엇인가?
그것이 육체 속, 자네 안에 있을 때에는 그것을 푸라나라고 부르는 거야.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하고 있을 때에, 그리고 육체가 해방될 때에는
그것이 전체 공기 속으로 합쳐져서, 우주와 일체가 되는 것이야.
자네가 이 생명기운에게 숭배하는 제사를 올리기 위해 꽃다발이나 음식같은 어떤 종류의 물질적인 제물은 필요하지가 않아.
자네가 푸라나야마(생기호흡조절) 수행을 통해서 호흡을 제어하게 되면,
마음이 없어진 무심상태의 지복(삼매)에 이르를 수가 있고,
그러므로 무욕상태가 될 수는 있어.
그러나 그러한 행복과 지복의 상태는 다만 자네의 호흡조절이 유지되는 한계 내에서만 지속될 뿐이야.
수행을 그치자 마자 곧 이어서 자네는 다시 거친 마음 상태로 타락해 버릴 것이야.
이 지복상태란 전체우주와 하나로 합일되는 느낌의 넘어에 있을 때에만 나타나는 상태야.
그것은 하늘같이 순수함인데, 하늘과 같다는 것은 무한하다는 뜻이지.
그러나 그 하늘에 빛을 비추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에 빛을 비추는 앎, 그 사랑이 바로 "내가 있다"앎이야.
그 안에서 안정되게 자리잡을 때까지는 자네의 그 존재성에다 집중을 해야지.
그렇게 하면 간단하게 그것마저 초월할 수가 있을 것일세.
지금현존에 자네의 주의 촛점을 두는 것이 바로 우주생기 또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야.
그 존재성에 머물러 있어야 돼, 그러나 이것도 또한 최종단계는 아니지.
방문자 : 적절한 질문일지는 모르겠읍니다만,
만일 주시자를 자각한다면, 그런 체험조차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
마하리지 : 이 지복상태를 주시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이 지복상태를 자각하는가?
"내가 있다"에 머물러 있으라구.
일단 자네가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알게만 되면,
진아의 체험 속에서 안정되게 남아있게 되어있어.
아루주나(바가바트기타에서 크리슈나의 제자) 처럼 그렇게 있으라구-.
아루주나는 전쟁터의 한가운데 들어가 있었을 때에도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지.
그는 스승인 크리슈나와 일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죽이는 사람도 죽을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전장터 속으로 아무 불안감없이 들어갈 수가 있었어.
방문자 : 호흡조절이든 명호염송이든, 정신수행을 하면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쳐서 좌절하는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말씀 좀 해 주시겠읍니까?
마하리지 : 자네가 할일은 아무것도 없어.
맨 처음, 자네는 자신이 육체를 가진 한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자네 자신에게 맹세하고, 스스로에게 서약을 하게나.
(무한진인 註-자네는 모양도 없고 속성도 없는 무한한 앎일 뿐이야 !)
방문자 : 어떻게 제가 그렇게 할수가 있읍니까?
마하리지 : 왜 못해?
자네는 스스로 자네가 한 인간이 아니라는 맹세를 할 수가 있어.
"내가 있다"는 생각이 나오기 이전에 있는 앎은 진아지(眞我知)와 생명기운간에 연결된 매듭이야.
이것은 자네(진아)가 단순히 인간 육체에 의해서 덮어쒸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야.
일단 자네가 의식의 주의를 거기에 뫃아서 "내가 있다"상태에 도달하여,
그것을 자각하게 될 때에는, 이 모든 세속적인 습기(習氣)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 나게 된다구.
자네는 그 모든 세속과 원습을 초월한 곳에 원래부터 머물러 있었어.
- N.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