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꾸는 또 하나의 꿈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참나'가 잠이 들었는데,
그는 꿈속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다.
이 꿈이란 어떤 것일까?
이세상의 나타남이 꿈이였으며,
그리고 그 꿈 안에서 자기가 한 개인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만 환상만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세상의 나타남(現示)은 하나의 꿈일 뿐이다.
신(神)이었던 사람이 하인이 된 것이다.
어머니,아버지,형제자매 등, 모든 사람과 전체세상을 마치 실재처럼 여긴 것이 실은 꿈일 뿐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이 꿈 세상 안에서 흥청거리며 살고 있다.
이렇게 꿈에 취한 모든 세상사람들 가운데서,
혼자만 유별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게 있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 깨달은 한 성인을 발견해서 믿는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다.
이런 진지한 구도자는 "나 없음"의 마음자세로 모든 행동을 취한다.
에고로 꽉 들어찬 사람은 개에게 조차 빵 한 쪼각도 던져 주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생각없이 어떤 자비심을 베푼 후에는,
간혹 "에고가 사라진 상태"의 체험이 일어나거나,순수직관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가 깨달은 성인에 대한 경외심이 하나로 녹아드는 위대한 체험이다.
그 위대함은 옛적의 수많은 성인들, 우리들의 선조들이 대를 거쳐서 물려준 은총의 열매이다.
이 꿈속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가치있고 귀중한 능력이다.
재물에 의한 부귀영화는 마치 술에 만취해서 자기의 본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이 마지막 탄생에서 삶의 본래 가치를 되찾기 위해,
깨달은 스승에게 주의를 돌려서, 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실재와 꿈의 분별력을 진실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스승에게 찾아가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며,비본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탐구하고,
결국은 "내가 부라만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세상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게 되고,
비로소 그 꿈으로부터 깨어나게 된다.
그는 가르침의 순수한 본질을 체험하게 되고,
전체세상이 환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며,
"절대진아(파라마트만)만이 오직 진리"라는 것을 깨달게 되는 것이다.
그사람은 그런다음에 "존재,의식,지복(sat chit ananda)의 화신이 되고,
부라만과 하나가 된다.
그대에게 존재의 의미에 대한 앎이 다가 올 때,
그리고 그 앎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그대는 "지금 그것을 내가 체험했어, 지금 나는 진리를 깨달았다"라고 말한다면, 그 체험을 얻은 그 "나"라는 것은 누구인가?
그대가 무엇인가를 체험했다고 말할 때에,
에고 또는 "내가 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나" 또는 "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에고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환상 안에서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그사람" 또는 "너"라는 이원적인 생각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예를 들어보면,
나이든 어른 한사람(육체실물)을 사람들은 미스터 스미스 라고 부르지만,
지금 그 스미스씨는 부라만(깨달은 사람)이 되어 있다.
만일 그대가, 이전에 보통사람인 스미쓰씨는 단순히 환상이었다고 생각하고,
"비실물(깨달은 사람)"이 지금 그가 실재(實在)로 변화 된 상태라고 판단한다면,
그대의 환상은 아직까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것이다.
자연스러운 존재라는 것은 애초부터 변함없이 "있는 그대로"의 실재인 것이다.
가장 미세한 상태인 의식상태라 할지라도 에고적인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 육체를 방어할 어떤 필요성을 아주 약간만이라도 느낀다면,
에고의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우주전체가 그대 안에 있다고 체험하는 실질적인 느낌이 있어야 만 한다.
이 체험이란 "전체 우주가 신이다" 그리고
"신이 바로 나다"라는 확실한 이해가 와야 하는 것이다.
비단누에벌레는 자기집인 고치를 만들고 난 다음, 그 고치 속에서 죽는다.
그대도 또한 이와 똑같이 그대 자신(에고) 속에다 그대를 묶어두고 있다.
그대는 자신을 물질적인 육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스스로를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기자신을 비단누에벌레의 고치집처럼 만든다.
미적지근한 물에 고치집을 담가두면,
고치집 속의 누에벌레는 죽게되고,
그런 다음 비단실을 얻는다.
만일 우주 안에 포한된 허공과 공기(바람), 그리고 전체우주가
자신의 무한한 몸이라는 느낌으로 계속 꼭 붙들고 있는다면,
그대는 저절로 부라만이 될 것이다.
둘도 없고, 오직 단 하나의 부라만 만이 있을 뿐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그가 바로 부라만 그자체인 것이다.
감각기관의 대상들이 사라져 버린 구도인,
세상 모든 것과 별도로 떨어져 있다고 여겼던 개인적인 "나라는 느낌"이 사라져 버린 사람,
그리고 자만심이 몽땅 사라져 버린 사람은
진실로 부라만을 깨달은 사람이다.
- 1934. 11.26.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