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이것 뿐이라네.
동산스님이 스승인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곳을 정하진 못했읍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의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읍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 뿐이라네."
동산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동산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이 풀어지지 않고 있다가,
그뒤에 어느 개울물을 건너가다가 개울물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宗旨)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如如)히 계합하리라.
切忌從他覓 沼沼與我踈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麽會 方得契如如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 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 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읍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는가"
훗날에 장경혜능 스님이 이일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동산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질수 있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 주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 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祖黨集,東山錄-
------------------------------------------------------------------------
<거울 속의 나>
거울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 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握手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를 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든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事業에 골몰할께요.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는 反對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診察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 李 箱 <거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