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08. 7. 11. 10:39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유일한 스승인

스리 시다라메쉬와르 마하리지의 가르침(1)

 

 

객관적인 지각성(앎)이 사라지게 되면  주시자도 사라져 버린다.

그 순간에 "나"라는 자존감인 에고는 그즉시 녹아 없어져 버린다.

 

나타난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동안은

보는 자도 역시 그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그사람의 존재가 개념적인 것처럼 역시 보는 자도 개념적인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도시를 "봄베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봄베이로 보여질 것이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땅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그냥 땅으로 보여질 것이다.

그것은 모두 보는 자의 개념(고정된 생각)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의자 하나를 대상으로서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의자이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나무로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나무가 된다.

 

만일 그대가 모든 것을 부라만(신)으로써 부른다면, 일체가 부라만이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이세상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이세상이다.

 

모든 대상적 사물들은 보는자의 생각에 의존한다.

그러나 부라만은 모든 생각을 초월해 있으며, 그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한남자는 한 여인을 자기 "아내"라고 부르고,

또 다른 사람은 그녀를 자기 "언니"라고 부르며,

세번째 사람은 그녀를 "딸"이라고 부른다.

표면상으로 그녀는 한뭉치의 살덩이와 뼈로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가 사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일체가 개념적인 것이며,

보는 자의 개념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것(보는자)안에 있는 존재성과 세상은 모두 개념적인 것일 뿐이다.

 

실재라고 여기며, 현상계라 불리우는 "주시자"는 에고이며,

그 에고는 뿌리채 뽑혀야 한다.

만일 에고가 사라져 버린다면 오직 부라만 만 남는다.

 

마하바라타(인도 신화)에 나오는 두타라챠 왕은 맹인이었다.

그는 카우라바스라고 불리는 백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에게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육체를 자기자신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맹인인 두타라스였다. 

그는 또한 라마야나의 신화에 나오는 한 악마로써, 라바나라고 불리우는 사람이다.

 

사람은 일체의 나타난 대상들은 비진리(환상)이고,

오직 부라만 만이 홀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나타난 대상들은 악마이며,

그대가 그 대상들에게 악마의 역활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그대는 라바나 왕이 된다.

라바나왕은 옳바른 왕이 아니다.

그는 신이 아니다.

그대는 대상들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대는 라바나가 된다.

 

그대는 이 "나"라고 하는 라바나를 내던져 버려야 한다.

이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나를 포기하는 행위를 "열망적 죽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라마야나 이야기에서 , 라바나가 시바신의 열렬한 신봉자이며, 라바나의 간절한 요청으로

시바신은 라바나에게 "열망의 죽음"으로 은총을 내려준다.

라바나는 14년간 나라를 통치했다.

즉, 14개의 지각기능을 상징하는데, 다섯개의 감각기관, 다섯개의 행위기관, 그리고 마음,

지성, 의식,에고, 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지상에서 통치를 하면, 악마는 가장 하층의 지하에서 숨어 있고,

악마가 지상을 통치하면, 신은 사라지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나타난 대상들이 실재한다고 여긴다면,

악마가 지배를 하고 신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 흔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 승전고를 울릴 때(즉, 나타난 일체의 대상들이 비진리(환상)이라고 느끼거나

그러한 확신이 있을 때)면 , 역시 "나"라는 악마는 사라지게 된다.

에고가 소멸되면 그때는 일체가 부라만(신)인 것이다.

사람은 "나"와 이 나타난 대상들이 모두 환상이라는 것에 대해 수행으로 직접 체험해야 한다.

깨달은 사람은 일체의 모든 것을 부라만으로 느낀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동안에 그들이 앉아있는 식탁의 나무판자, 음식, 그남자 또는

그여자의 배우자, 물 등이 모두 부라만의 표현인 것이다.

 

그대들의 수행에서 당면주제는 위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신의 왕국에서 살것이다.

부라만은 색갈이 없으며, 노란색도, 검은 색도 아니고, 음악이나 기타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액체로 된 순버터와 단단히 굳은 고체버터는 마치 물과 어름같이 다르지 않다.

대지와 흙덩어리가 만나는 것처럼, 모두가 의식이다.

그대가 보고 지각하는 모든 것은 실재(부라만)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은,

마치 두개 모두 같은 금으로 만들어져 모양만 다르게 보이는 귀고리장식이나 

팔찌장식물을 다르게 보는 것처럼,

오직 제한된 의식만을 보는 것이다.

 

이육체로 인해서 일어나는 일만이 좋은 것이라고 고집하는 자세를 멈추라.

개념의 대상이 오직 그 육체 하나뿐이기 때문에

그대는 그거친 육체를 자신으로 여겨 왔다.

하인(육체)과 심부름꾼(마음)은 신으로써 여겨야 한다.

그 이외에 또다른 부라만이나 속성이 없는 것이란 없다.

 

모두가 고빈다(신)이다.

우리가 모든 나타난 대상을 분류해 버렸기 때문에, 에고가 있는 것이다.

그대는 아내를 아내라고 알고 있고, 딸을 딸이라고 알고 있다.

말을 말이라고, 개를 개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그것들은 모두가 부라만일 뿐이다.

 

나타난 대상들의 모양을 변화시켜서 볼 필요는 없다.

오로지 보는자의 관점이 변화되어야 한다.

부라마는 보는자가 어떤 자세를 취할지라도 항상 동일하다.

그대는 그대가 어떤 상태에 있든간에 상관없이 부라마를 볼수 있어야 한다.

의자의 원자나 분자 일지라도 모두가 신 크리슈나(부라마)이다.

일단 이런 자세가 확고해지면 그대 자신이 부라마가 된다.

 

사람이 잠상태와 생시상태,그리고 가고오는 중일지라도,

부라마는 잠도 안자며,깨어있지도 않고,가고 오지도 않으며,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부라마 일때, 잠자고 먹고 하는 것은 누구인가?

속성이 없는 자 그리고 (속성이 있는)말하고 있는 자, 이 두개가 다 신인 것이다.

 

왕이 용상에 앉아 있던, 사냥을 하러 나돌아 다니던 간에,

그는 항상 왕의 신분을 벗어나지 않는다.

걷거나 말을 하고 있는 자는 의식의 환상일 뿐이다.

사람이, 그남자 혹은 그여자라는 별개의 한대상으로 이름이 주어질때는 하나의 헌신자이며,

마찬가지로 절대자로써의 삼라만상을 지켜 볼때는 절대자 또는 성자인 것이다.

절대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마치 음식을 먹는데 먹은 음식이 똥으로 변환되는 것과 비슷하다.

 

누에가 많으면 마치 누에고치로부터 비단옷을 만들 수 낼수 있는 것과 같이,

신에게 제사드리는 동안 성직자로써 헌신을 하게 하는 것이다.

분비물을 먹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소화해낼 수가 있다.

 

신과 악마는 바로 지금여기에 있다.

신과 악마는 감로와 술로 만들어진 이세상이라는 바다에 뒤섞여 있는 것이다.

비슈뉴 신은 신에게는 감로를, 악마에게는 술을 주었다.

"비슈누신이 이것을 했다'라는 말은 '내면 의식이 이것을 했다'라는 의미다.

 

감로와 술은 둘 다 바로 지금여기에 있다.

우리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로를 손수 마시고, 영구불멸을 얻게되는 것이다.

각성된 사람은 이것을 성취한다.

일체가 모두 신이다.

모두가 행복해져야 한다.

만일 그대가 수행을 해서, 그것을 진심으로 성취한다면

일체가 부라만이라는 깨달음이 올 것이다.

 

수행자는 씨앗에 뿌리가 돗아서 나올 때까지 물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자신이 스스로 자라날 것이다.

그대들은 신의식을 성취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수행에 전념해야 만 할 것이다.

 

                                                                     -Amrat L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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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화록은 옹달샘카페에서 한회원이 영어원문으로 올린 것을 번역해 본 것입니다.

세련되지 못한 번역이지만, 될 수 있으면 원문에 있는 중요한 의미를 손상하지 않도록

유의했읍니다.

위의 스리 시다라메쉬와르 마하리지는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유일한 스승님입니다.

시다르님은 이 "내가 있다"또는 "나"에 대한 탐구계통의 냐니요가가 수천년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한줄기의 매듭이며, 현대의 수행철학에서 세계적인 성자로 이름이 알려진

니사르가다타를 배출하고, 그외에도 란짓트 마하라지 라는 분도 현재 인도에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읍니다. 한편 니사르가다타의 제자로는 현재 살아있는 분이 라메시 발세카라는 분이 활동을 하고 있읍니다.

나사르가다타님은 이 시다라메쉬와르님을 한친구를 따라서  호기심으로 갔다가, 시다라메스와르님을 몇번의 만남과 간단한 가르침을 받고는 바로  깨달음을 얻었읍니다.

그정도로 이 시다라메쉬와르님의 가르침은 강력하고 아주 단순하다는 것이죠.

 

이번 이 원문을 옹달샘 카페에 올려주신 회원님에게 깊히 감사를 드리면서,

제가 보유하고 있는 몇편의 영어원문 자료는 시간 나는대로 천천히 번역해 올려 드리겠읍니다.

아울러 앞으로도 좋은 자료가 있으면 이렇게 나누어서 도와가며 서로 알려주면

수많은 수행지망생들에게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 무한진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