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명상은 명상자가 사라져야 한다.
명상이나 정신수행의 행위라는 것은
그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사라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명상상태로 접어들 수가 있다.
만일 명상자가 마음속의 어떤 대상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것은 보는자와 보여지는 대상이 이원화 된 상태로서
의식이 주, 객, 이원화로 분화되어 있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명상의 목적은 의식이 주객 이원화 상태에서
주객이 합일 또는 공진되는 일원화상태로 변형되어야 한다.
따라서 명상하는 자와 명상대상이 둘다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명상하는 자는 개인의식이고
절대의 입장에서는
이개인의식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것이다.
개인의식의 바로 이전 주시자인
존재의식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개인의식은 단순히 오감의식의 빛놀이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 측면에서
명상자는 사라져야
온전한 명상상태가 될 수가 있고
그 이전, 존재의 원천,
의식의 고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한
준비상태의 돗자리를 깔아놓고
있는 그대로 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아무리 멋진 경험과
초상능력, 신비경험이 있을 지라도
모두가 보는자와 보여지는 것의 이원화된 분열의식 일뿐,
오직 하나의 일원화 절대의식에서는 멀찍암치 떨어져 있어서
환상의 쑈만 즐길 뿐이다.
그런 것들은 영혼의 해방, 탄생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명상이나 정신수행의 기본 목적은
탄생과 죽음의 굴레로 부터 벗어나 있는
자신의 진아를 아는 것이다.
아니 진아가 되는 것이다.
진아는 시간도,공간도,모양도 없는
영구 불멸하며,무한하고, 탄생과 죽음이 없는
참나 인 것이다.
명상하는 자가
명상을 한다는 행위자체가 필요없는 행위라는 사실을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 할 때에
명상하는 자의 개인존재의식이 서서히 녹아 없었지기 시작하면서
명상 행위를 놓아버릴 때쯤에는
개인성이 사라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행위자로서 쓸대없는 짓거리를 해왔다고
나 자신에게 속아서 지내왔다고
한바탕 너털 웃음이 나올 때에야
비로서 있는 그대로의 원래 상태로 회기하게 된다.
있는자리에서 떠나서
괜히 고생고생 애써가며,
지구 한바퀴 돌며 갖은 방황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있던그자리에
다시 고향집으로 되돌아 온 방랑자처럼-
그러나 사실은
고생한 것도
어디를 방황하다가 돌아 온 것도 아닌
아무것도 하지도,일어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면
그저 입 꽉 다물려지고
있는 그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주인공아- 있냐? 네, 있읍니다.
괜히 헛고생하지 마라-, 네-
남한테 속지마라-, 네-
너자신한테 속지 마라-, 네-,알았음-다- .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