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나는 누구인가

주시라는 것에 대하여

무한진인 2008. 7. 9. 21:33

정신수행에서의 "주시"는 마치 음식요리를 만드는데 물이 필요하듯이 기본적인 요소인 것 같다.

 

달통한 스승들이나 고승님들께서 문하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거의 비슷하다.

"내면을 주시해라" "보는 자를 주시하라" "흘러가는 생각을 주시해라" 등 등- - -

 

자, 주시한다는 것에 대해 한번 주시해보자.

아니 주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왜 그것을 강조하는지, 의미는 무엇이고,수행에 있어서의 효과는 무엇인지  따져보자.

중요하다는 것은 그목적과 의미와 효과를 사전에 잘만 파악해 두면,

백화점에서 바겐세일때 마음에 쏙드는 물건 아주 싼값에 거져 얻은 가벼운 기분 처럼,

수행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먼저 "주시한다"는 말은 "본다""지긋이 응시한다"는 뜻인데,

엄밀히 따져서 무엇을 "주시한다" 는 목적격이 있는 능동형이 아니고,

"주시된다"는 수동형 동사다.

즉"본다"" 관찰한다" 가 아니고, "보여진다", "목격된다"의 뜻에 가깝다.

따라서 "주시"라는 것은 중근기 수행자이상의 고참수행자들의 오래된 단련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정착되는 자기응시수행자세인데 ,

내가 나자신을 응시하므로서, 보는 나가 대상인 내와 하나가 되어 진 상태라 말할수 있겠다.

어디까지나 이상태는 억지로 하는 짓(행동)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주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왜 스승님들 께서는 초보자들에게 "내면을 주시하라""보는자를 주시하라"고 하실까?

그럴경우는 실질적으로 능동형인데, 말 그대로 흘러가는 생각들을 응시하고, 보이지도 않는 자기 뒤퉁수 끝에 주의를 집중하여야 되는데 , 이렇게 능동적인 주의를 가해야 되는 이유는 앞서 얘기한

 고참들의 자연스런 주시의 펼쳐짐 상태가 노력없이 되도록 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시나 집중 수련을 할때는 안면이나 뇌근육이 긴장되지 말아야 하며, 느긋하게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깨어 있었야 한다.

 

방법 한가지 예를 들면, 군대에서 최전방에서 눈덮힌 한겨울 보초를 스는데, 날은 춥지,몸은 떨리지, 온산은 하얀 눈으로 덮혀 삭막하지, 고향생각이 절로나, 먼산 높은 산등성이 넘어,넘어,그넘어

보이지도 않는 고향을 그리워 할때, 그산등성이 넘어를 보는 순간은 자기머리 뒤뚱수 근방의 영안에 주의가 갈때이다. 그리워 하는 애인을 생각 할때도 그생각만 쏙 빼면 영낙없는 명상상태다.

공상에 사로 잡힐때도 그 내용만 빼버리면 훌륭한 명상이다.

한번 시험해 보시길, 등산시에 정상에 올라가서 건너편 먼산의 산너머를 본다든가, 밑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때 보는 자기가 따로 있나 혹은 펼쳐진 광경 속에 자기가 묻혀있나? 그때의 자기주의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아니면 넓게 펼쳐져 있을 뿐인가?

 

왜 몸을 관찰해야 되고,마음을 관찰해야 되고,내면을 주시해야 되는가?

 

앞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보는자는 항상 보이는 것 이전,뒤에 있어야 된다.

 

무엇인가 보인다는 것은 보는자 뒤에서 비치는 기준 빛이 있었야 되고, 또한 보이는 대상의 영상이

펼쳐질 백그라운드,배경,스크린등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육체와 마음은 아는 것이니까 대상이며, 아는자(나)는 그이전에 있었야만 된다. 그러나 아는자는 자기 자신을 알수 없고, 볼수도 없다.

 

따라서 정신수행에서 안다,보인다,느낀다 등 감각내용과 몸밖의 세상만사,만물 그리고 마음의 모든생각,감정,모든 정신활동등 의식에 나타나는 내용을 통털어 현시세계라고 하는데,

 이현시세계는 전부 대상화 해서 주시하면,

오로지 보이지 않는,알수도 없는 주시하는 주체만이 남는데,

 그보는자가 바로 자아의식이지만,

그것은 모양도 없고,크기도 없고,맛도 없고, 전혀 모른다는 것 밖에는 말할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나, 우주의식상태, 신의식

 

그럼,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고 있는 개인은 주시를 의지를 가지고 , 능동적으로 몸과 마음을 주시하여야 하는가?

 명상소개서적이나 어떤스승들은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글을 쓰는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육체를 가진 개인으로써 동일시한, 명상이나 수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주시는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시라는 것은 의식이 있는한 누구한테나 펼쳐져 있다. 다만 관심과 주위를 안줄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도 한번 검토해 보자.

누구나 자기가 세상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자기가 콤퓨터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알고 있다). 지금현재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는 누구나 관심을 안둔다. 내가 살아 있으니까 당연한것 아닌가? 하는식이다.

이 말없는 (알고 있다)가 개인의 주시자면서 자아(우주)의식이다,

알고 있다= 앎+ 존재의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고 하니 "내가 있다"앎 즉 자아존재의식(아트만,우주의식)의 꼬리가 개인의식까지 유일하게 침투해 있는 단서다.

 

이( 말이 없는 앎)의 느낌(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아는느낌)이 육체가 자신이라고 동일시하여 이현상세계의 감옥에 묶어 있는 개인에게 있어서, 이 오감으로 형성된 현시세계를 탈출하여 무한의 니르바나로 날아갈수 있는 유일한 안내자 역활을 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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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의식세계를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첫째, 육체를 자신으로 동일시 하여  이현상세계내에 별도의 개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개인의식

     -이경우는 자신의 육체내 오감과 뇌에서 형성된 시공세계내에서  육체인 자신이 개체로서 존재

      한다고 착각하고 있음, (무지상태)-시공의 감옥세계,온갖사물의 모양과 이름이 다양함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개아,일상평범인 (본래의식주파수 변조파동)

 

둘째, 육체의 자기 동일시를 벗어나면 자기자신은 육체가 아니고 의식일 뿐이라고 여김. 자신을 의식과 동일시 하고, 이세상 만물이 오직 나자신 의식일 뿐으로 여김.(자아의식) I AM that I AM

  우주의식상태, 아트만,신, 하나님등 의식의 가장높은 상태-개아의 주시자(의식주파수 순수파동)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셋째, 절대의식,본성,진리-우주의식상태를 주시하는 주시자. 완전 무, 개방된 무지상태

       순수의식주파수 파동의 완전 공진상태, 할말없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절대의식에서  빠져 나온 후에야  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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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개인의 주시자는 바로 자아의식(우주의식)상태다, 또 우주의식의 주시자는 절대의식이다.

따라서 개인의 의식표면에 말없이 감지되는" 알고 있음,Knowledge that I am"는  그이전의 자아의식(우주의식)의 표면의 반사작용인 앎 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자연적인 주시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나는 순간, 주변을 알아차리기 직전, 자기가

개인이라고 인지하기 바로 전, 순전히 의식만 깨어 있는 상태(우주의식,자아의식)에서 잠깐 나타났다가,즉시 육체를 느끼면서 자신을 자그마한 육체로 동일화해 버리면서, 동시에 세상 우주가 펼쳐지게 된다.

따라서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의식에 주의를 주는 습관을 들이면 감지할수가 있다.

 

그러나 수행인이 의식이 깊어져서 자아의식의 경계선에 가까이 오게 되면 아무리 고단하게 깊은잠을 자더라도 자신은 깨어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가 있다. 이쯤 도달하면 이제 기존 수행방법은 집어치우고, 아무일 하지않고, 침묵속에 존재만 하면 된다.

 

따라서 육체를 자기로서 동일시한 개인일지라도 항상 주시는 되고 있으며, 그주시되고 있는 "알고 있음"상태를 놓치지 말고 주의를 줄 경우,혹은 항상 자신이 존재한다는 "있음"의 느낌에 주의를 놓지 않고 있으면, 서서히 의식이 확장되면서 무한하게 뻐쳐있는 경험을 갖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