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 요가] 라바나 이야기(2)

2024. 11. 29. 22:02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처음에 지고의 존재 즉 무한한 의식 안에서 분리가 일어났으며, 그 무한한 존재는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관찰자가 관찰의 대상을 파악하거나 이해하려 할 때, 실재와 분명히 나타난 것들에 대한 혼합 즉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혼한으로 인해서, 무한한 의식 안에 한계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때 무한한 마음은 자신 속에 그것을 약화시키고 감추어 슬픔으로 인도하는 수많은 개념들을 일으키고, 마음은 그것을 크게 확대합니다.

이러한 개념들과 경험들은 그들의 표시를 마음에 납깁니다.

이것은 대개 잠재되거나 잠복해 있는 인상이나 조건적 경향성들을 만듭니다.

그러나 마음이 이러한 것을 버릴 때, 베일은 태양 앞의 이슬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것과 더불어 슬픔도 사라집니다. 그때까지 마음은 모든 것들과 어울려 놉니다.

이것은 아이가 병아리들과 놀면서 그것들을 괴롭히는 것과 같습니다.

 

순수하지 못한 마음은 기둥이 있는 곳에서 귀신을 봅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의심을 일으키고, 그들을 적으로 만들며, 모든 관계들을 오염시킵니다.

그것은 술 취한 사람이 세상이 자신의 주위로 빙빙 돌고 있다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비탄에 빠진 마음은 음식을 독으로 바꾸고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경향성들로 채워진 불순한 마음은 강박관념과 공포라는 미혹의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뿌리 뽑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무엇일까요? 몸은 둔감하고 지각력이 없습니다.

마음이 생기있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이 둔하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행하는 것이 행동이며, 마음이 버리는 것이 포기입니다.

 

마음은 온 세상이고, 마음은 대기이며, 마음은 하늘이고, 마음은 땅이며, 마음은 바람이고, 그래서 마음은 위대합니다. 마음이 어리석은 자를 바보라고 부릅니다.

몸이 지성을 잃었을 때, 예를 들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어리석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봅니다. 눈들이 생깁니다. 마음이 듣습니다. 귀들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여 마음은 다른 감각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들을 창조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무엇이 달고 무엇이 쓴지, 누가 친구이며 누가 적인지 판단합니다.

마음은 시간의 길이를 결정합니다.

라바나 왕은 한 시간도 안되는 기간을 경험했는데, 그것은 마치 한 평생처럼 늘어난 듯 하였습니다. 마음은 천당이 무엇이며 지옥이 무엇인지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이 마음이 지배되면, 감각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지배됩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라마여! 마음이 전지전능하고, 순수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의식을 이 둔감한 육체적 몸과 혼동시키면서 감출수 있다는 것보다 더 신비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은 움직이는 원소 속에서는 바람으로, 영광스러운 것 속에서는 영광으로, 땅 속에서는 견고함으로, 공간 속에서는 비어있음으로 자신을 나타냅니다.

 

만약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은 정말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만약 '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옳은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감각들은 마음으로부터 태어나며 다른 방법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아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실 그것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진리를 깨달은 현자들을 경배하십시오.

 

이것을 깨달은 현자들은 여자가 자신의 몸을 안아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것은 몸으로 나무토막을 접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팔들이 잘려 나갈지라도, 그는 그것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슬픔을 희열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면,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그대는 아무 것도 듣지 않습니다.

 

배우가 자신 안에서 다른 인물의 성격을 묘사할 수 없듯이,

마음은 깨어나고 꿈꾸는 것과 같은 다른 의식의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라바나 왕으로 하여금 원시 종족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마음은 얼마나 신비로운가요!

마음은 자신이 구성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마음은 생각들이 합쳐진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을 알고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하십시오.

 

계속되는 생각 때문에 그것은 태어나서 죽는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형태가 없는데도 몸 등을 가진 지바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생각으로 인해 그것은 국적을 얻고, 그리고 기쁨을 즐기고 고통에 괴로워합니다.

이 모든 것은 기름이 씨앗 속에 있는 것처럼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기쁨의 대상들을 향하여 방황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이는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둥에 매인 자가 움직이지 못하듯이, 고귀한 자의 마음은 실재로부터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만이 인간이며, 다른 이들은 벌레입니다.

그는 끊임없는 명상을 통해 지고의 존재에 도달합니다.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영역, 김병채 옮김 <바시슈타 요가> -

 

                                                                 2024.11.29. 11:00. 아차산 능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