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實在)를 체험하기

2024. 8. 8. 21:00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영원한 브라흐만

 

나무는 흙에서 만들고, 우리는 나무에서 나무를 얻습니다.

나무를 태우면 다시 흙으로 돌아 갑니다.

 

가지,잎, 꽃, 열매 등 다양한 부분을 가진 많은 종류의 덩굴 풀들이 땅에서 나옵니다.

그후 그것들은 마르고 분해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 갑니다.

 

인간이 식사할 때 섭취하는 음식은 여러 가지 곡물로 만든 식품이 많습니다.

그 후에 그 음식들은 배설물이나 토사물로 변해서 흙으로 다시 돌아 갑니다.

 

많은 새들이 여러 가지 곡식을 먹고 배설하면

노폐물이 되어 말라서 땅으로 돌아 갑니다.

 

인간의 몸은 죽으면 벌레에게 먹히거나 불에 타서 재로 변한 뒤 흙으로 돌아 갑니다.

위대한 많은 사람들의 몸들이 죽으면 그 후에 이와 같이 흙으로 돌아 갑니다.

 

많은 종류의 풀과 식물들이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갑니다.

벌레조차도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 갑니다.

 

흙 위에 무궁무진하게 번성하고 있는 생물체들이 있는데.

그 광활함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흙 이외에 그들을 위한 안식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무,나무잎,그리고 풀들은 동물에 의해 먹혀지고,

배설물,거름 ,오줌, 그리고 재가 되어 모두 뒤석여서 흙으로 돌아 갑니다.

 

생성된 것은 무엇이든지 지속시간 동안에 머물다가 이내 소멸됩니다.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 갑니다.

생성되는 모든 것은 파괴되고 다시 흙이 됩니다.

 

성장해서 하늘에 닿았다가 결국 다시 땅과 합쳐져 사라지는

씨앗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많은 금속들이 사람에 의해 땅에 묻히고 여러 날이 지나면 흙이 됩니다.

심지어 금의 운명도 이와 같습니다.

 

금과 돌은 흙에서 형성되지만,

강한 열기에 노출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합쳐집니다.

 

금실은 금으로 만들어진 다음 이내 부패되고,

녹은 액체 상태의 금일지라도 결국 흙속에서 다시 용해됩니다.

 

금속은 흙으로부터 만들어 집니다.

불에 녹인 금속도 다시 응고되었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 갑니다.

 

장소마다 물이 달라서 다양한 맛과 냄새를 풍깁니다.

물이 나날이 마르다 보면 흙만 남게 되면서, 그곳에서 흙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많은 나뭇잎,꽃, 그리고 열매들이 자라나서 많은 생물들이 먹습니다.

이 모든 존재는 죽으면, 자신이 태어난 흙으로 다시 돌아 갑니다.

 

형태를 갖춘 모든 것은 그것을 지탱하는 흙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졌다고 추정하는 모든 생명체는 결국 흙으로 돌아 옵니다.

 

이에 대하여 얼마나 더 많이 말해야 하겠습니까?

분별의 힘을 활용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분별에 의해서 우주의 창조와 해체를 이해합니다.

 

물이 증발하면 흙만 남고,

흙이 타서 재가 되면 재는 다시 물에 녹습니다.

 

빛에서 물이 형성되고, 나중에 빛의 열기에 의해서 마르게 됩니다.

빛은 바람으로부터 형성되고, 그 후에 다시 바람에 흡수됩니다.

 

바람은 하늘에서 나왔다가 다시 하늘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이러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직접 관찰해야만 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것이 생성되든 파괴될 때는 같은 장소로 돌아갑니다.

오대 원소가 모두 이런 식으로 파괴됩니다.

 

원소들은 생성되었다가 파괴되었습니다.

원소들이 사라지고 나면 영원한 절대 실재(實在)인 파라브라만만이 남습니다.

 

스스로 파라브라만임을 자각하지 않는 한, 탄생과 죽음의 순환은 피할 수 없으며,

네 가지 유형의 생명체 흐름 안에서 태어날 운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물질적 현상계의 기원은 움직임이며,

움직임의 뿌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침묵 속에 움직이지 않는 실재(實在)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깨쳐야 합니다.

 

베다에서 제시된 일차적 전제는, 환상(Maya)은 실재(實在)에서 나왔다는 것이고,

반면에 최종 결론(Siddhanta)에서는, 환상의 존재를 부정해 버립니다.

양쪽의 관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바로 빠라브라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체험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탐구와 내관 그리고 일념집중(삼매)을 통해서 파라브라만에 대한 징표를 깨닫습니다.

그런 탐구와 통찰, 일념집중이 없다면 어리석은 헛소리에 속아서 지칠 뿐입니다.

 

만약 지식이 많은 사람이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가 불필요하게 환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 움직이지 않는 파라브라만을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은 환상이 완전히 파괴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을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환상이 해체된 후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이것이 바로 자기 순복입니다.

말과 의미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절대지혜(Vijnana)가 실현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오직 생각과 상상에만 사로잡힐 뿐입니다.

그러므로 해탈 열망자는 직접 수행을 통해서 실재(實在)의 체험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확증해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