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5. 22:49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가르침에 대한 요약
오대 원소의 이름을 마음으로 배우고,
직접 체험을 통해 그 형태를 이해하십시오.
그것들을 분석해서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일시적인 것인지를 알아내십시오.
이 분석은 관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실제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오대 원소에 대한 탐구는 이름과 형태를 이해하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분별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흙, 물, 빛(불),바람(공기), 하늘(우주)은 오대 원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형태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흙(地大)은 우리를 지지해 주는 땅을 의미합니다.
물은 우리가 마시는 물, 비, 강,바다 등을 의미합니다.
빛(火大)은 불, 태양 및 모든 빛나는 물체를 의미합니다.
바람(風大)은 공기를 의미합니다.
하늘(空大)은 광대한 빈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제 무엇이 영구적인 것이지에 대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물어 보십시요.
뜸이 다 들은 밥 한 알만 맛보면 밥솥 전체의 익은 상태를 알 수 있듯이,
약간의 경험으로도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구와 관련해서, 많은 것들이 건설되고 파괴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계에서 많은 구조물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실제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건설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마르고,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바람의 움직임이 고요해지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간은 이름일 뿐이며, 탐구한 결과 이름은 남아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대 원소로 구성된 것이 무엇이든간에 영구적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대 원소의 전체 범위는 모두 소멸될 것임이 확실합니다.
형태없는 진아만이 영원하고 실재(實在)한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 진아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혜(Jnana) 없이는 그것이 깨달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하여 깨달은 성인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깨달은 성인들에게 물어보면, 진아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아에 관련해서는 탄생과 죽음에 대해 말할 수가 없습니다.
형상은 무형상 안에서 나타나고, 무형상은 형상 안에서 나타납니다.
형상과 무형상은 분별의 힘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무형상은 영원하고, 형상있는 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것은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에 대한 탐구라고 불립니다.
비본질인 것은 본질 안에서 나타나고,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납니다.
본질과 비본질적인 것의 차이점을 탐구해서, 이러한 탐구 결과를 확인하십시오.
오대 원소로 구성된 모든 것은 환상적인 것이지만, 그들은 무수히 많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진아는 모든 것에 스며 있는 단 하나의 존재입니다.
하늘(공간)은 다른 네 가지 원소 모두에서 존재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실재(實在)는 하늘에 스며 있는 현존(現存) 그 자체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늘과 실재(實在)는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속성 또는 어떤 (파괴될 수 있는)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늘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없으면 하늘과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외부 형태가 없는 그것(진아)은 파괴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이 분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파괴되지 않는 것은 깊은 성찰을 통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절대 진아, 파라마트만은 형태가 없습니다.
이것은 본질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해됩니다.
이것은 직접 스스로가 발견해야 합니다.
육체가 끝나게 되면 바람(風大) 원소가 몸을 떠납니다.
이것은 숨을 참는 것으로 지금 당장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흡이 멎으면 몸이 죽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체라고 말합니다.
몸이 없으면 바람은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고,
바람이 없으면 몸은 어떤 기능도 할 수 없습니다.
깊은 명상을 해보면, 사람이 다른 것 없이는 어떤 것도 결코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는, 우리가 인체라고 부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올바른 분별적 사고로 성찰해 보면, 실제로 몸을 구성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이원적인 헌신의 징표임을 이해하십시오.
만약 '내가 행위하는 자이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것이 자기의 욕망에 따라 일어나야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욕망에 따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에 '내가 행위하는 자"라는 말이 거짓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행위하는 자가 아니라면, 즐기는 자는 누구입니까?
이것은 올바르게 성찰함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은 명상 없이는 이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깊은 성찰과 무관심은 빛과 어둠과 같습니다.
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사려 깊은 분석이 없는 곳에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진리는 추측과 상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실제 경험없이는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속성도 없는 지혜로운 이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 순복으로 인가를 받으며,
진정으로 '절대 존재'(Parama Purusha) 그 자체로써 간주됩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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