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5. 18:59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설명
본질과 비본질의 분별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십시오.
이 광대한 우주의 삼라만상 안에서 우리는 분별의 힘을 이용해서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본질적인 것인지를 사려깊게 탐구해 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될 것이고,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버릴 것입니다.
진실로 실체(實體)인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본질입니다.
이전에는 진아와 비진아의 분별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비진아를 인식하게 되면 그것은 버려져야 합니다.
남아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초적 환상에 묶여 있는 것을 아는 자인 진아입니다.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청자(聽者)들은 남아 있는 이 뿌리의 정체성이
여전히 무상(無相) 속으로 사라져야 할 상(相)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구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사이의 분별이 이루어졌고, 영구적인 진아도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형태가 없는 미묘한 느낌이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 있습니다.
그 관념은 그 자체가 미묘한 움직임인 반면,
아무런 속성도 없는 것은 움직임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조사를 통해,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오고 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동적(動的)인 것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정적(定的)인 것임을 확실히 보십시오.
동적(動的)인 것은 무엇이든간에 영원히 정적(定的)인 그것 안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진아에 대한 앎(Jnani)과 신(神)에 대한 숭배는 같은 하나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신에 대한 숭배로 자기 삶에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신(神)은 보는자, 주시자, 지혜의 충만함, 생명기운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신(神)은 깨달음 그 자체입니다.
그 지혜(Jnana)는 최고 지혜(Vijnana)에서 변형되어 나온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관념들은 움직임의 성질이며, 사라질 운명입니다.
만약 부패하기 쉬운 것이 파괴될 운명인지 아닌지에 대해 마음 속으로 의심이 든다면,
그 사람은 진아 깨달음 안에서 확고하게 안정되어 있지 못한 것입니다.
영원하고 일시적인 것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환상의 거대한 신기루에 말려들어가 있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것은 파괴될 수 없고, 모든 곳에 골고루 편재해서 퍼져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가 없고, 그 안에서는 그 실재(實在)에 대한 어떤 욕망이나 의심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 조밀한 실재(實在)는 처음부터 지속적이며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안정적이며,
중단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있는 그대로 입니다.
숙고해 보면, 그것은 하늘과 비교해 볼 수 있지만, 하늘보다 밀도가 높고 미묘합니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어떤 것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으며, 결코 세상과 접촉하지 않습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과 지혜의 눈으로 보는 것의 구별은 베다에 포함된 주요 전제이지만,
속성이 없는 것은 인식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모든 동일성과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으면 궁극의 실재(實在)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모든 집착을 버리야만이 침묵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사라질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결국 마지막 남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파라브라흐만, 즉 본질 그 자체입니다.
여덟 번째 몸은 원초적 환상(Moolamaya)입니다.
현자들은 우리에게 여덟 개의 몸을 벗어나서, 무시해 버리라고 자비롭게 말합니다.
소함(Soham,내가 그다), 한사(Hansa,그가 나다), "따뜨뜨암아시(Tatvamasi, 그대가 그것이다)
라는 말 뒤에 숨겨진 의미는 그대가 브라흐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탐구와 깊은 명상으로 쉽게 그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수행자는 모든 상(相)이 공(空)이 되어 브라흐만으로 남습니다.
그 속성 없는 파라브라흐만은 결코 뜨겁거나 차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오염되거나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볼 수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으며, 태어나거나 파괴되지도 않으며,
오거나 가지도 않는 것이 파라브라흐만입니다.
물에 젖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이 파라브라흐만입니다.
모든 보이는 상(相)이 사라지는 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시선을 향해도
무상(無相)으로 확립되어 있는 현자는 축복이 있습니다.
무형상(無相)으로 확고하게 안주하고 있는 깨달은 스승의 모든 가르침을 따르면 은총을 받을 수가 있는데,
그러면 모든 나타난 형상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무상(無相)인 사람, 모든 개념과 상상을 초월한 사람만이 진실로 고요한 성자(santa)임을 아십시오.
그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모두 망상의 형태로 된 충동적인 마음입니다.
거짓을 포기하고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만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탐구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모든 일시적인 相)을 포기하고 파라브라흐만이라는 본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도자의 지혜가 점점 더 미세해짐에 따라서,
그의 지각성은 형상없는 상태(無相)에 동화되어 자기의 진실한 본성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자아포기에 의한 헌신이란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헌신과 해방은 말을 사용해서 이야기해야 하지만,
가리키고 있는 것의 의미에 도달하여 적절한 탐구를 통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분석과 탐구를 하면 해방에 대한 욕구마저 사라지고 진아의 유일성만이 남게 됩니다.
존재, 순수 자각, 그리고 하나됨은 모두가 자신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상태입니다.
본질이 아닌 모든 요소가 사라져 버릴 때, 남는 것은 본질이며,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은 형태가 없다(無相)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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