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법사의 조론 공부13] 물불천론(物不遷論)- 8

2024. 5. 22. 22:21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본문]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린 사람과 장성한 때의 몸이 동일하므로 백세가 된다 해도 형질(形質)은 하나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이가 젊은 시절의 과거로 흘러간 것만 알았을 뿐, 형체도 나이에 따라 함께 흘러간다는 점은 몰랐었다 [사람이란 동일한 몸의 하나의 형질이긴 하나 늙음과 젊음이 같지 않다.외형의 모습은 천류하여 변함이 있는 듯 하나 실제로 젊은 시절의 얼굴은 스스로 과거 젊은 시절을 따라가 있지 현재의 늙음으로 오지 않았으며, 늙음은 스스로 현재로 머물러 있지 젊음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것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범지(梵志)가 젊은 시절에 출가하여 머리가 하얀 늙은 이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을 때 이웃집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 있군"

범지는 말하였다.

"나는 지난날 젊은 시절의 사람인 듯 하지만 이미 지난날의 사람은 아니다."

이웃집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면서 그의 말이 틀렸다고 비난하였다 한다.

위에서 "힘센 사람이 걸머지고 도망을 갔는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했다'고 한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했으리라.

 

[주해] -감산대사

여기서는 범지의 일을 인용하여 천류해도 천류하지 않음을 해석하고, 이로써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고 한 의미를 밝혔다.

범지가 어려서 출가하여 하얗게 센 머리로 되돌아오자 이웃집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하였다.

"지난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있군."

이는 옛날 젊은 시절의 얼굴을 지금의 늙은 이로 여긴 것이다.

범지는 그에게 답변하였다.

"나는 옛날 젊은 시절의 사람과 흡사하기는 하나 옛날 사람이 아니다."

범지가 의도하고 말한 것은 젊은 시절은 스스로 옛날에 안주해 있고 현재 늙음으로 흘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 지금의 늙은 모습을 밀치고 과거의 젊음으로 이르게 하겠는가 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물은 천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매우 분명한데도 이웃집 사람은 이를 몰랐었다.

때문에 깜짝 놀라며 그의 말이 잘못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아는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나(감산덕청)는 어려서 부터 이 논문을 읽었다.

나름대로 앞에서의 선람(旋嵐) 강하(江河), 야마(野馬), 일월(日月)의 네 사상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의심을 품은 지가 오래였다.

동묘(同妙)스님과 함께 포판(浦阪)에서 삼동결제(三冬結制)를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 논문을 거듭 판각하고 교정을 보면서 네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고 한 대목에 이르러 황홀하게도 깨달음이 있어 띌 듯이 기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이로 인해 부처님께 예불을 올렸더니 절을 하는 몸이 일어나거나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없었다.

주렴을 걷고 밖으로 나와 살펴 보았더니 뜰 앞에 서있는 나무에 홀연히 바람이 불어와 낙옆이 허공에 어지럽게 날렸으나 잎마다 움직이는 모습이 안 보였다.

이로써 '선람의 바람이 수미산을 무너뜨린다 해도 항상 고요하다'고 한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변소에 가서 소변을 보았는데 소변의 흐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탄식하며 말하였다.

"진실하구나. 강물이 다투듯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도 흐르지 않는다는 말씀이여."

이때에 지난날 (법화경)에서, ' 생멸하는 세간의 모습이 상부불변한다'고 한 말에 대한 의심을 돌이커 관찰해 보았더니 의심이 마치 얼음이 녹아 풀리듯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었다.

이 논의 종지가 그윽하고 은미하여 진실하게 참구하여 실답게 보지 않고 망상의 지견(知見)으로 헤아리려 한다면 모두가 막막한 의심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나의 친구 가운데 이 논문은 노장학의 허무사상을 불교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반박한 자가 있었다.

내가 의도하기로는 반드시 나의 말을 스스로 믿는 날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승조 지음, 감산덕청 약주, 송찬우 옮김 <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