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4. 22:14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내면으로 들어가는 가르침
먼저,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의 활동은 올바르게 수행되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단점이 있다면 불쾌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작된 활동은 그대로 진행하십시오.
일부는 잘 될 것이고, 때로는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 비슈누 경을 기억하십시오.
자연스럽게 "이 비슈누 신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종교의식을 수행하기 전에 24개의 신(神)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24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천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무수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신은 막상 이름이 없습니다.
분별의 힘을 활용해서 그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내면에서 인식해야 합니다.
브라민 사제가 목욕을 하고, 기도 의식을 치른 후에
우상의 형태인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많은 신들과 많은 우상들과 이미지들을 숭배하지만,
절대 진아인 파라마트만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그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우선 신을 알아 본 다음, 그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마치 장교나 주인이 그의 신분이 알려진 후에 예우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탐구심과 깊은 사색을 통해서 절대 진아가 신(神)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환상의 바다 너머로 건너 갈 수가 있습니다.
우상과 이미지는 숭배되지만, 내면 자아가 깨어나는 것은 몸 안에 있습니다.
신의 화신(化身)들의 거처는 오고 가는 육체의 형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항상 우주적 광명의 성품인 진리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의식)의 광휘인 순수한 성품의 사트바 구나라고 불립니다.
그 의식의 광휘 속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으로서 보여지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Isha)은 몸의 도시(Pura)에 거주하기 때문에 푸루샤(Purusha) 또는 존재(Beiingness)라고 불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神)은 우주에 거주하시고 우주의 신(主님)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주에서 그 분은 모든 육체에 거주하고 작용하는 의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슈누 경을 모든 존재의 내면 마음으로 인식하십시오.
비슈누 경은 모든 생명체와 함께 우주 안에 존재합니다.
그 분은 모든 활동의 경험자이자 행위자입니다.
현자(賢者)는 그를 내면의 자아로 인식합니다.
듣고,보고, 냄새맡고,맛보고, 이해하고 묻는 이는 바로 그 분입니다.
모든 것을 인식하고, 친구와 낯선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이는 바로 그 분입니다.
우주 전체의 내면 자아(自我)는 하나일 뿐이지만,
육체에 대한 자부심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육체와의 동일성이 자신을 따로 떨어진 별개의 개인으로
생각하는 습성의 장애를 일으키게 됩니다.
삼세(三世)의 나타남과 해체가,
마치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가라앚는 파도처럼,
태어나고 자라다가 죽고, 죽이는 이는 바로 그 분입니다.
삼세(三世)를 지배하고 존재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분입니다.
따라서 그 분은 "삼세의 제왕"으로도 불립니다.
이것은 분별의 힘을 사용하여 스스로 보고 경험해야 합니다.
내면 자아는 이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며, 그는 오대 원소 안에 존재합니다.
더욱이 베다에서 나온 4개의 위대한 말씀에 대해서 깊히 숙고해야만 합니다.
먼저 몸을 점유하고 있는 그 사람을 보고,
그 다음에 우주에 거주하는 그 이를 아십시오.
그 후에는 절대 실재에 도달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파라브라만에 대해 깊은 명상을 하게되면,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비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가 밝혀지게 되고,
모든 움직이는 것은 사라질 운명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창조,유지, 파괴가 있는 모든 것은 오염되지 않는 실재(實在)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여기에서 지혜(Jnani)가 최고지혜(Vijnana)로 변합니다.
시간과 공간 상에 나타나는 8개의 몸은 이해한 이후에는 내버려야 합니다.
마지막 남아 있는 것이 순수하게 오염되지 않은 브라흐만입니다.
철저한 탐구와 깊은 명상을 통해서 별도로 떨어져 있는 관찰자로서의 경험없이
브라흐만과 완전히 합일하게 됩니다.
이것조차도 또한 해체되야만 하는 상태가 되고,
아무 것도 아닌 무(無)상태가 되는 것을 보십시오.
여기서, 남는 것은 단어로써는 도저히 표시할 수가 없습니다다.
표시되는 그것과 마찬가지로 표시하는 자도 또한 포기하게 되고,
어떤 상태나 어떤 잔재(殘滓)도 모두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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