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2. 22:15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알아차리기를 알아차리는 자는 누구일까?
알아차리기의 경험이 가장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경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알아차리기를 경험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혹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안다는 경험을 아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알아차리기를 알아차리는 자는 누구일까요?
알차차리기를 경험하는 존재를 보통 "나"라고 부릅니다.
나는 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차립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슬픔, 쓸쓸함,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내 집의 이미지를 알아차립니다.
나는 고통스럽거나 배고프다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내방의 모습이나 자동차의 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이러한 각각의 사례에서 '나'는 모든 지식과 경험 속에서 앎의 핵심 요소
혹은 알아차림의 핵심요소입니다. '나'는 알아차림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알아차리기를 알아차리는 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곧 "내가 알아차리는 것을 아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기를 알아차리는 자가 '나'일까요?
혹은 내가 아닌 타인이나 무언가에 의해 알려진 알아차리기의 경험일까요?
내가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는 분명히 나입니다.
즉, 알아차림을 알아차린 자는 "나-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알아차림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리기 또는 알아차림 그 자체는 스스로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태양이 스스로 빛나듯이, 알아차림도 스스로를 압니다.
알아차림은 스스로를 알아차립니다.
생각,느낌, 감각, 지각을 알기 전부터 말이지요.
알아차림의 본질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 주된 경험입니다.
"나는 알아차린다"라는 경험은 곧 알아차림의 자기 자신에 대한 앎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앎은 알아차림의 자기 자신에 대한 앎입니다.
태양은 스스로 빛나기 위해 특정 방향으로 빛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알아차림도 스스로를 알기 위해 자신의 "주의"를,
즉 앎의 빛을 특정한 방향으로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태양이 빛을 어느 방향으로 보내든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비추게 마련이지요.
마찬가지로, 알아차림이 앎의 빛을 어느 방향으로 보내든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무언가에 대해
알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알기 위해서 알아차림은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하거나 앎의 빛을 어떤 특정방향으로 향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아는 데에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알아차림을 스스로에게서 앗아갈 뿐입니다.
알아차림은 그저 알아차리기에 스스로를 아는 것입니다.
- 루퍼트 스파이라 지음,김주환 옮김<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성인들 가르침 > 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인 체험에 대하여 (0) | 2024.04.16 |
---|---|
속성을 가진 신(神)에 대한 숭배 (0) | 2024.04.13 |
망상(妄想)이라는 것에 대하여 (0) | 2024.04.11 |
다섯 가지 해체(解體) (0) | 2024.04.08 |
현상세계의 씨앗에 대하여 (0) | 2024.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