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知性)은 무(無)에서 나온다

2024. 4. 9. 21:09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질문자 : 마음은 에고와 별개입니까?

 

마하리지 : 마음이 에고입니다. 마음은 에고의 부(副) 대변인 입니다. 매니저가 있어야 하고, 서기가 있었야 합니다. 모두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몸은 똥 만드는 공장입니다. 동의합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생산합니까? 그럴 때 여러분은 자신이 똥 공장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에고가 '나는 이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즉시 "나는 밥이다"라고 말하겠지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봐야 하고, 어쩌면 생각이 없는 곳, 최종적 실재로 조금 더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기가 없으면 여러분은 생각이 아니라 동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참되지 않은지, 혹은 무엇이 실재인지를 아는 분별렧이 있습니다.

누가 일체를 합니까? 누가 말을 합니까?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 힘이 있을 때만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각하기는 나 자신이 아니고, 무지는 나 자신이 아니다. " 그것은 모두 여러분의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知)와 무지(無知)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무엇을 알고 싶다면,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지(知)가 있어야 합니다.

지(知)를 가지고 묻습니다. 그, 곧 실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내가 그것을 했다"고 말합니다.

눈은 보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은 눈이 있지만, 볼 수 있습니까?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지(知)는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실재는 잊혀지고 이 모든 지(知)가 생겨났습니다.

무지와 망각에서 지(知)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참될 수 있습니까?

원재료가 쓴 맛이면 여러분이 마시는 것도 씁니다.

일체가 지(知)이며 달리 무엇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知)는 참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점입니다.

저는 지금 (깨달음을 얻기 전의) 마지막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知)가 있을 때는 일체가 그 지(知)에 의해 행해집니다.

그러나 이 지(知)가 어디서 옵니까? 영(無)에서 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대 자신을 알라, 그러면 세계를 알게 될 것이다. "

여러분은 자신을 모르고, 여전히 "나는 그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혼란을 야기합니다.

만일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보고, 누가 듣습니까?

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럴 때 여러분은 "내가 그것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꿈 속에서 여러분은 보고 듣고 경험하지만, 깨어나면 무엇이 참됩니까?

이 세계는 하나의 살아 있는 꿈, 대환(大幻)입니다.

창조주도 대환입니다. 그것은 무(無)이고, 무에서 많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끝이 없습니다. 영에서 백억까지도 셀수 있습니다.

영이 없다면 '나'가 나올 수 없습니다.

실재는 이런 모든 것과 무관합니다.

여러분은 노래하고, 춤추고, 울고, 웃습니다.

스크린이 이런 모든 사건들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스크린은 늘 스크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무(無)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것은 모두 영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참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지의 취기(醉氣)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기운에 "나는 왕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나는 아무개다"라고 말합니다.

(인도식 이름을 가진 한 남성을 가리키며) 아무 실체가 없는 것에 왜 서로 많은 이름을 붙여야 합니까?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무(無)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無)이기 때문입니다.

실재는 실재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때는, 세계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지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세계의 중요한 요소로 볼 때는 " 나는 아무개다", "그는 아무개다"라고 말합니다.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 일체를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마치 단어를 잘못 쓰고 나서 지워버리듯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든, 그것을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말들은 모두 그릇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토대는 참된데, 그것은 '그대가 없는 그대'입니다.

그것은 늘 있지만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구도 '보는 자'가 아니고, 누구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대는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보는 자'가 되지 말고, 피고인('내가 했다'고 말하고, 행위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 이 되지 마십시오, 덕, 사랑, 선행과 그 상대물들 같은 마음의 소산에 대한 이끌림이 속박을 창조합니다.

여러분은 이원성을 동반자로 데리고 있고, 죽을 때는 (과거에 한) 선행과 악행들이 남아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반사됩니다. 성자는 죽을 때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존재하지 않고,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것, 나고 죽음은 여러분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스리 란지트 마하리지 대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