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 행장(行壯)- 가신 이의 모습(1)

2024. 3. 22. 22:31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제자 각광 지음

 

스님의 이름은 혜근이다. 호는 나옹이며, 마을에서 부르던 이름은 원혜다.

머무시던 방을 강월헌이라 했고, 성은 아(牙)씨다. 영해부에서 태어나셨다.

아버지의 이름은 서구인데, 선관서령이란 벼슬을 살았다. 어머니는 정씨다.

 

어머니가 꿈 속에서 금빛 송골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다가 떨어드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 경신년 정월 보름날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생김새가 다른 아이들과 달럈고, 자라서는 몸과 마음 가짐이 빼어나게 훌륭했다.

부모님께 산에 들어가 스님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스므 살 때였다. 가깝게 지내던 벗이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을 찾아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모른다고 말할 뿐이었다.

스님은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래서 공덕산 묘적암에 계시는 요연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자르고 스님이 되었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왜 스님이 되려고 하는가?"

"괴로움 투성이인 이 삶을 뛰어넘어 모든 생명에게 기쁨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먼길을 걸어 지금 이곳에 왔다. 무엇이 이렇게 왔는가?"

"말할 줄도 알고 들을 줄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습니다. 저는 볼 수 없는 이것을 보고 싶고, 찾을 수 없는 이것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 물어보도록 해라."

 

스님은 용연 스님 곁을 떠났다. 그리고 스승을 찾아 이산 저산을 떠돌았다.

지정 4년 갑신년이었다. 스님은 회암사의 외진 방에서 살았는데,

밤낮이 없이 언제나 앉아서만 지냈다.

 

그 무렵 일본에서 온 석옹화상이 회암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에 내려와 선상을 치며 말했다.

"여러 스님들은 이 소리를 듣습니까?"

스님들은 말이 없었다.

나옹스님이 게송을 지어 화상에게 내밀었다.

그 게송은 이렇다.

 

깨달은 이

가려 뽑는

이곳에

앉아

정신 차리고 밝게

살펴 보라.

보고 듣는

이것

다른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 얼굴

본디 나의

옛 주인

 

스님은 그 뒤 네 해 동안 부지런히 수행했다.

어느날 아침 스님은 느닷없이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은 중국으로 가고자 했다.

그곳에 사는 눈 밝은 스승들을 만나고 자신이 깨달은 살림살이를 그대로 펼쳐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해년 동짓달에 북쪽 바람을 안고 길을 떠나,

이듬해 봄 삼월 열나흗날에야 중국의 서울인 대도에 이르렀다.

스님은 지공스님이 계시는 법원사로 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대뜸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뱃길로 왔는가, 걸어서 왔는가, 아니면 신통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

"내게 신통을 보여보게."

스님은 지공스님 앞으로 바싹 다가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고려 땅에서 왔다면 동쪽 바다 저쪽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하늘에는 열두 개의 빛나는 별이 있다던데, 그것을 따왔는가?"

"그렇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고 하던가?"

"스스로 왔습니다."

"왜 왔는가?"

" 뒷사람들을 돕고자 왔습니다. "

지공스님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중과 함께 살게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은 이런 게송을 지어 지공에게 올렸다.

 

눈앞의 꽃(幻)이로구나,

산도 물도 이 땅도,

다 그런거지,

보이고 들리는 것들,

맑고 맑구나,

보고 듣는 이것이여,

세계마다 티끌마다

오, 아미타불,

오, 법왕의 몸이여,

 

이 개송을 본 지공스님이 말했다.

"인도 땅 스무여 분의 조사와 중국 땅 일흔두 분의 종사들은 모두 빼어난 분들이다.

하지만 나 지공에게는 그 누구도 없다.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고, 빙 들러봐도 없다.

문득 온갖 그물을 벗어난 이 지공이라, 법왕의 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법왕의 몸,

진리의 몸은

뭇생명 끝없이 살리시는

언제나

주인

칼은 천 자루

부처님도 조사스님도

만나면 곧 베어버리니

눈도 부시지,

우리 스님은

하늘 가득 일렁이는 지혜의 빛살(百陽-지공스님의 방장실 이름)

 

무엇이 참모습인지

나 이제 알게 되었지만

생각하면 이것도

마음만 괴롭힌 일,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동쪽 땅 해와 달이

서쪽 하늟을

비춤이여.

 

지공스님이 말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 또한 개다."

 

스님은 곧바로 절하고 나왔다.

 

                                                                                    -무비 역주 <나옹선사 어록> 민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