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빛의 근원으로 돌아가 거기에 안주하십시오

2024. 3. 6. 21:52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제가 지금 다른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그것은 이전에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른 상태들이어서 그것을 새로운 자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마하리지 : 낡은 자아는 그대 자신의 자아입니다. 갑자기 원인없이 싹트는 상태는 어떤 자아의 흔적도 수반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씨앗도 없고 뿌리도 없는 것, 싹터서 자라거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것, 갑자기 아주 찬란하게, 신비롭고 경이롭게 생겨나는 것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그것은 전적으로 예기치 못한 것이면서도 불가피하고, 무한히 친숙하면서도 가장 놀라우며, 모든 희망을 넘어서 있으면서도 절대적으로 확실합니다. 그것은 원인이 없기 때문에 장애도 없습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법칙, 즉 자유의 법칙만 있습니다.

어떤 연속성, 하나의 계열, 단계에서 단계로의 어떤 이행을 의미하는 것은 실재일 수 없습니다.

 

질문자 : 그것을 어떻게 발현시킬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는 그것을 발현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장애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보십시오. 마음을 지켜보면 관찰자(주시자)로서의 그대의 자아가 발견됩니다. 그대가 움직임 없이 있으면서 지켜보기만 할 때, 관찰자 이면의 빛으로서의 그대의 참된 나(참나)를 발견합니다.

그 빛의 근원은 어둡고, 앎의 근원은 알 수 없습니다. 그 근원만이 존재합니다. 그 근원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안주(安住)하십시오.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고 일체에 편재한 공(空)에 있지도 않습니다. 신은 위대하고 경이로운 모든 것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갖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에게서 나옵니다. 그 근원이 저이고, 그 뿌리, 그 원천이 저입니다.

실재가 그대 안에서 폭발할 때, 그것을 신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잇겠지요. 더 정확히는 신이 그대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알 때, 신이 그대를 압니다. 실재는 어떤 과정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폭발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마음을 넘어서 있지만,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대의 마음을 잘 아는 것 뿐입니다. 마음이 그대를 도와 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마음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이 그대를 무력화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경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그대를 기만할 것입니다. 그것은 도둑을 감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둑에게서 뭔가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맞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마음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함이 없이 그대가 마음에게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깨어나고 잠을 잡니다. 하루 일이 끝나면 잠이 옵니다.

그런데 내가 잠을 자러 갑니까, 아니면 부주의 함이 -- 이것이 잠자는 상태의 특징인데 -- 나에게 옵니까? 바꾸어 말해서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은 우리가 (진아에 대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깨어 있는 상태(진아 상태) 로 깨어나지 못합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는 무지로 인해 세계가 나타나서 우리를 '생시의 꿈' 상태로 데려 갑니다. 잠과 생시 둘 다 잘못된 명칭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뿐입니다. 참된 생시와 참된 잠은 깨달은 진인만이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깨어 있다는 꿈을 꾸고, 우리가 잠들어 있다는 꿈을 꿉니다.

세 가지 상태란 그 꿈 상태의 다양한 모습일 뿐입니다.

일체를 하나의 꿈으로 취급하면 우리가 해방됩니다.

꿈들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한, 그대는 그 꿈들의 노예가 됩니다.

그대는 자신이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상상하면서 그 이러이러한 것의 노예가 됩니다. 그 노예성의 본질은 자신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과거와 미래를 가졌다고,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고, 하나의 과정이 아니며, 발전하지도 않고 쇠퇴 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일체를 하나의 꿈으로 보고, 거기서 물러나 있으십시오.

 

질문자 :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면 제가 어떤 이익을 얻습니까?

 

마하리지 : 저는 그대를 그대 자신에게로 도로 불러들입니다. 제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대 자신을, 그대 자신 쪽을, 그대 자신 속을 바라보라는 것 뿐입니다.

 

질문자 : 어떤 목적으로 말입니까?

 

마하리지 : 그대는 살아가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그 살아가기, 느끼기, 생각하기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대 자신을 그것들에서 해방하고 그것들을 넘어섭니다. 그대의 인격이 해체되고 주시자만 남습니다. 그러면 그 주시자를 넘어서십시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묻지 마십시오. 그저 그대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십시오.

 

질문자 : '사람과 '주시자' 간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지 : 둘 다 의식의 양상입니다. '사람' 안에서는 그대가 욕망하고 두려워하며,

주시자 안에서는 쾌락과 고통에 영향받지 않고, 사건들에 의해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것들이 오고 가게 내버려둡니다.

 

질문자 : 더 높은 상태, 순수한 주시하기의 상태 안에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의식은 제 스스로 빛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너머의 어떤 빛에 의해 빛납니다. 의식의 꿈 같은 성질을 보았으면, 의식이 그 안에서 나타나는 그 빛, 의식에 존재성을 부여하는 그 빛을 찾으십시오. (이 빛이 있기에) 의식의 내용도 있고 의식에 대한 자각도 있습니다.

 

질문자 : 저는 알고, 제가 안다는 것도 압니다.

 

마하리지 : 정말 그렇지요. 단, 그 두 번째 앎은 무조건적이고 무시간적입니다. '알려지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대는 '아는 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대의 경험들 안에 계속 잠겨있지 마십시오. 그대는 경험자를 넘어서 있고, 항상 불생(不生)이고 불사(不死)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기억하는 속에서 순수한 지(知)의 성질, 곧 무조건적인 자각의 빛이 나타날 것입니다.

 

                                                                                                                          - 아이 엠 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