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다 왕문경 공부] 5. 업

2023. 12. 27. 22:34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업의 분화

 

[본문]

밀린다왕 :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여러가지 다른 업에서 생겨납니까, 아니면 동일한 업에서 생겨납니까?

나가세나 : 각기 다른 업에서 생겨납니다.

말린다왕 :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십시오.

나가세나 : 농부가 다섯 가지 씨앗을 밭에 뿌렸을 때 다섯 가지 작물을 수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설]

'감각작용'은 산스크리트어 ayatana(영어로 sense bases)를 옮긴 것이다.

불교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감각기관'이라는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감각작용'이라는 번역어도 본체(體)의 작용(用)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체론에 속한다.

물론 기관이든 작용이든 통칭(世諦)이라는 것만 염두에 두면 문제는 없다.

감각 역시 여러 조건들이 화합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연기적 현상이다.

 

다양한 초기 생명체가 분화하면서 감각기관이 생겨나는 순서는 환경이나 필요에 따라 서로 달랐을 것이다. 다들 먹어야 했기 때문에 입은 모든 생명체에서 가장 먼저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특별한 예외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생명의 진화 단계에서 눈이 생겨나는 과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생명체의 '필요에 의해' 피부의 일부분이 빛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면서 점차 눈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 감각기관은 제각기 서로 다른 필요와 욕구(즉 업)에 의해 생겨났을 것이다.

 

업의 차별

 

[본문]

밀린다왕 : 나가세나 스님, 어째서 모든 사람이 각기 다릅니까?

어떤 사람은 단명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 삽니다.

어떤 사람은 병약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건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못나고 어떤 사람은 잘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힘이 약하고 어떤 사람은 힘이 셉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유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민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귀족으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어리석고 어떤 사람은 현명합니다.

나가세나 : 그럼 어째서 모든 수목들은 똑같지 않습니까?

밀린다왕 : 제각기 씨앗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가세나 :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업이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을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존재는 제각기 자신의 업을 갖고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다. 업을 모체로 하고, 업을 친족으로 삼고, 업에 의지하고 산다. 모든 존재는 업에 의해 천하거나 귀하게 나뉘는 것이다."

[해설]

"업을 모체로 한다"는 것은 모든 개체가 유전(流轉)해온 업의 씨앗으로부터 자라난 것이라는 뜻도 되고, 모든 존재의 시간적, 논리적 시초가 진리에 대한 근본 무지인 무명업(無明業)이라는 말도 된다. "업을 친족으로 한다" 는 것은 중생은 늘 업 속에서 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거수일투족을 업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삶을 이어간다는 말이다.

"업에 의지한다"는 말은 "업을 귀의처로 삼는다"는 뜻이다.

업은 시작을 알 수 없는 오랜 과거로부터 반복되어온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에 개체에게 익숙한 것이고 편안한 것이며,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중생을 '업을 즐기는 존재'로 정의한다.

이것은 중생으로서 뼈아픈 진실이다.

 

노력한다는 것

 

[본문]

밀린다왕 : 스님께서는 앞서 "지금의 괴로움은 사라지게 하고, 앞으로의 괴로움은 더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정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미리 노력해야 합니까, 아니면 괴로움이 닥쳤을 때 비로소 노력해야 합니까?

나가세나 : 일이 닥쳐서 노력한다면 미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밀린다왕 : 예를 들어 주십시오.

나가세나 : 대왕께서는 전쟁이 일어난 뒤에 참호를 파고, 보루를 쌓고, 성문과 망루를 세우고, 군량미를 걷도록 하겠습니까?

밀린다왕 :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나가세나 : 그렇습니다. 일이 닥쳐서 노력한다면 미리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해설]

불교의 수행은 여덟가지 바른 길(八正道)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바른 노력, 혹은 바른 정진(正精進)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이미 생겨난 악(惡)은 없애고, 앞으로 악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게 노력하는 것,

이미 생겨난 선(善)은 사라지지 않게 하고, 앞으로 선이 더 생겨나게 노력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선악 대신 괴로움(苦)을 들었다.

 

업의 힘

[본문]

밀린다왕 : 당신들은 지옥의 불이 집채만 한 바위도 순식간에 태워버릴 정도로 강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말하기를, 지옥에 태어난 중생들이 수십, 수백만 년 동안 불에 타고 또 타지만 타서 없어지지는 않는다고들 합니다.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나가세나 : 세상의 암컷들이 먹은 온갖 종류의 음식과 뼈와 심지어 모래와 돌까지 뱃속에서 다 녹아 없어지지만, 자궁 속에 있는 새끼는 녹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지옥중생들도 그들의 업의 영향으로 불에 타도 소멸되지 않는 것입니다.

[해설]

유식철학에서 "모든 사물은 오직 의식(의 전개) [萬法唯識]"이라고 하고 "오직 의식이 존재할 뿐 대상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唯識無境)"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지옥의 중생을 다 태우는 거대한 불길에도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는 불에 타지 않는" 사례를 든다.

지옥의 불길도 지옥중생의 업식(業識=業)에 그렇게 비치는 것이지 외계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지옥의 불도 공(空)하다.

 

업의 소재

 

[본문]

밀린다왕 : 몸과 마음(名色)으로 선행이나 악행을 저지르면 그 업은 어디에 남아 있습니까?

나가세나 :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그 업은 몸과 마음을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과일이 생겨나기 전에 그 과일이 어디에 있다고 가리킬 수 없는 것처럼 "업이 여기, 혹은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해설]

굳이 말하자면, 행위의 여력으로서의 업이란 것은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흘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과 업은 하나인가, 둘인가?

생선을 묶은 새끼줄에 비린내가 배었다면 비린내와 새끼줄은 하나인가, 둘인가?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난다면 향내와 종이는 하나인가, 둘인가?

 

                                                                           -서정형 역해 <밀린다 왕의 물음> 공감과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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