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탐구 (2)

2023. 12. 4. 22:40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본문]

수승한 지(知)의 자기탐구라는 순수한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결코 길을 바꾸는 일이 없을 것이네.

왜냐하면 해처럼 명명백백한 그 길 자체가 그것의 직접성과 독특함을 그들에게 드러낼 터이므로.

[스리 무르가나르]

비판적으로 분석하자면 행위, 헌신, 요가 등의 길이 다른 길들에게 양보하면서 그들의 노선을 바꾸고 약간 휘어지는 것과 달리, 자기탐구는 진아의 독특함 때문에 결코 자기 노선을 양보하거나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스리 바가반은 자기탐구의 길을 "순수한 길", 직접적인 길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우리가 설사 다른 어떤 길을 통해 진보해 왔다 하더라도,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조금은 자기 주시를 해야 하므로, 스히 바가반은 이 길을 "지고의 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해에 비유되기에, 우리는 진아를 해, 자기탐구를 햇살로 여겨야 할 것이다.

 

[본문]

죽음은 망각일 뿐이므로, 두렵기 그지없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부단히 망각을 없애는 것이 필요할 뿐이며, 자기탐구에는 (시간이나 장소같은) 어떤 원칙도 없다네.

[사드 옴]

망각은 부주의, 즉 자신이 걷는 길을 놓아버리는 것인데, 여기서 망각은 자기주시가 느슨해진 것을 뜻한다. 죽음과 같이, 망각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경각심을 가지고 자기주시를 유지해야 한다.

 

[본문]

시간, 장소 등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은, 결함이 없는 저 지고자를 떠나서는 별개의 존재성을 가질 수 없기에,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자기탐구를 닦는 데 부적합할 수 없다네.

[사두 옴]

'부적합한'의 타밀어 단어 말라꾸는 '표적'을 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연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은 대안적 의미를 취할 수도 있다.

"그것들(시간, 장소 등)에 의해 속박되는 그 무엇도 명상의 표적으로 여겨선느 안된다네."

이 대안적 의미를 취할 때, "시감, 장소 등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모두 2인칭과 3인칭인) 이름과 형상들의 이 온 우주를 뜻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1) 가슴 오른 쪽에 있는 심장의 자리, 2) 몸 안의 어떤 중심, 곧 차크라,

3) 어떤 신이나 여신의 이름이나 형상, 4) 어떤 신성한 빛이나 소리 등이 그것이다.

또한 자기 아닌 감각대상들을 아는 그 자신의 참된 성품을 모르고 있다면,

그런 수행자들이 (2인칭이나 3인칭의) 다른 대상들을 붙들고 애를 쓰는 것은,

어떤 실물을 등한시 한 채 그것의 그림자를 붙들려고 하는 것과 같다.

 

[본문]

습(習)의 힘으로 인해 주의가 밖으로 향하면서 자기를 망각함이 없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탐구하는 노력인 자기탐구로써 자기를 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싸우는 '천신과 아수라들 간의 전쟁'(즉, 그 전재으이 의미)이라네.

[사두 옴]

인도에서는 뿌라나라고 하는 경전에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서는 천신과 아수라들 간의 전쟁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전쟁들을 단순히 신화나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로 여겨서는 안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랭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행자의 삶 속에서, 진아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싶릉 것과, 마음이 습관적으로 밖으로 나가려는 성향 사이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부단한 전투이다.

 

[본문]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충족시키거나 조금도 생각하지 말라. (그보다는) 그런 생각 자체가 누구에게 일어났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 적절한 것이네.

 

[본문]

" 이 생각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는가? 지금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신의 내면으로 가라앉아 탐구하면, 마음은 자기가 온 근원으로 돌아가서 가라앉고, 일어났던 생각들도 사라져 버릴 것이네.

 

[본문]

이런 식으로 매일 닦고 또 닦으면, 불순물들이 없어져서 마음이 점점 더 순수해질 것이고,

탐구를 시작하는 즉시 저 심장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그만큼 쉬워질 것이네.

 

[본문]

불타는 숲의 열기를 벗어나서 살려고 튀어나오는 (그러나 죽고마는) 짐승들처럼,

(원습을) 소멸하면서 성장하는 진아내관(자기탐구)의 힘이 커짐에 따라 심장에서 솟아 오르는

원습들도 모조리 소멸될 것이네.

 

[본문]

"나는 누구인가?"라고 성찰하는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들을 소멸해 버린 뒤에,

그 자체도 (화장터에서) 송장을 태울 때 쓰는 긴 막대기처럼 결국 소멸할 것이고,

완전한 침묵이 있을 것이네.

 

[본문]

무한한 지고의 지복이자 의식의 빛(사뜨-찌뜨- 아난다)인 진아를 기만해 온 미혹의 마음이,

명료하고 강렬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탐구에 의헤 소멸되면, 진아가 성품의 허공으로서 찬란하게 빛날 것이네.

 

[본문]

불에 달궈진 쇠공이 그 에너지인 불덩어리로 빛나듯이,

지극히 순수한 자기 탐구의 불 속에서 태워지는 (세 가지 때(에고, 까르마,마야) 로 오염된)

불순한 개아는 저 진아의 참된 성품 그 자체로 빛날 것이네.

 

[본문]

"고통 받는 자이고 미혹된 자인 나는 누구인가?"라고 내면에서 탐구하여 그 목표인 실체에 합일되면, 미혹이 사라지고 진지가 빛나며, 침묵이 차오르고 평안의 지복이 있다네.

 

[본문]

개아들이 고통받는 것은 자기의 참된 성품인 실재를 배우지 않는 미혹의 번뇌 때문일 뿐이네.

그러나 고통받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탐구하는 참된 지(知)의 수행을 내면에서 닦으리.

 

[본문]

줄기차게 매일 체계적으로 하는 탐구라는 '현자의 돌'에 접촉하면, 유령같은 개아가 순수한 시바로 빛나면서 유령의 성품인 마음의 불순물이라는 녹이 다 없어질 것이네.

[스리 무르가나르]

탐구가 '현자의 돌'로 묘사되고 마음의 불순물들은 마음의 녹으로 묘사되므로,

개아는 비금속이고, 시바는 금이라고 여겨야 한다.

 

[본문]

신의 아들인 개아가, 자신의 참된 성품을 잊어버리고, "아이고" 울면서 한탄하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내면에서 열심히 탐구하여 (그곳에) 안주하면, 저 진아인 아버지(신)와 자기를 깨달은 그가 하나임을 깨달을 것이네.

 

                                     - 스리 무르가나르 지음, 스리 사두 옴 주석, 마이클 제임스 영역 <진어화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