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4. 22:05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베단타 스승들 가르침
ㅇ. 몸을 통한 깨달음
질문 : 대부분의 종교는 왜 육체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걸까요?
영적인 구도자들은 항상 육체를 장애물이나 죄악으로 여겼던 것 같은데요.
톨레 : 깨달음을 얻는 구도자가 그토록 드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육체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동물과 매우 가깝습니다.
모든 기능적인 신체 기능들, 즉 쾌감, 고통, 호흠,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잠을 자고 짝을 찾아 자손을 출산하려는 욕망, 그리고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동물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은총과 합일의 상태에서 벗어나 망상 속으로 떨어지고난 얼마 후, 인간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동물 같다는 것을 깨닫고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마, 넌 결국 하나의 동물에 불과한 거야,' 이것이 진실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당혹스러운 진실이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이 벌가벗은 것을 알고 두려워졌습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동물적인 본성을 재빨리 부정했습니다.
강력한 본능적 욕구에 의해 점령 당할 것만 같은, 캄캄한 무지의 어둠 속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은 위험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신체의 특정한 부분과 기능, 특히 성욕에 대한 수치심과 금기가 생겨났습니다.
자신들의 동물적 본성과 친숙하게 지내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의식의 빛은 강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내면으로 깊히 들어가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신성, 환상 속의 실재를 발견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육체로부터 분리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종교가 생기자 이런 분리감은 '나는 나의 육체가 아니다'는 믿음으로 더욱 굳어졌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서양의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부정을 통해 신과 구원과 깨달음을 얻으려고 애써 왔습니다. 특히 감각적인 즐거움과 성욕을 부정하는 금욕과 금식, 갖가지 고행을 시도했습니다. 육체를 죄악시했기 때문에 육체에 고통을 가하고 처벌하기까지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육신의 고행'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월상태에 들어가거나 혼이 자기 몸을 떠나는 경험을 통해 육체로부터 달아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습니다.
붓다도 6년 동안이나 금식과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육신을 부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식의 수행을 포기한 후에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육체를 부정하거나 혹사하거나 이탈하는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매혹적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형태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시켜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항상 본질적인 변화 과정이 일어나는 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진정한 스승은 육체를 혹사하거나 이탈하기를 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육체에 관련된 고대의 가르침은 몇몇 단편적인 구절들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너의 몸 전체가 빛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예수의 말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예수가 육신을 버리지 않고 육신을 입은 상태에서 '승천'했디는 전설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러한 단편들이나 신화의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는 나의 몸이 아니'라는 믿음이 전반적으로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러한 믿음은 육체를 부정하고 이탈하려는 시도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구도자들이 영적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질문 : 몸이 갖는 의미에 대해 잃어버린 가르침을 회복할 가능성이나 기존 단편들로부터 그 의미를 재구성할 가능성은 없나요?
톨레 :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영적 가르침은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스승은 단 한 사람뿐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모습은 수없이 다를지라도 말입니다.
내가 그 스승이며 여러분이 그 스승입니다.
일단 내면의 '근원'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적인 몸을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영적 가르침은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되었지만,
일단 말과 글로 표현되면 단어의 집합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말이란 앞서 말했듯이 표지판에 불과합니다.
결국 모든 가르침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나는 이미 여러분의 몸 안에 숨어있는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잃어버린 스승들의 가르침을 요약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표지판인 셈입니다.
내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면서 내면의 몸을 느껴 보도록 하십시오.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 유영일 옮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성인들 가르침 > 기타 베단타 스승들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퍼트 스파이라]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2) (0) | 2024.02.26 |
---|---|
[바시슈타 요가] 창조에 관하여(7) (0) | 2023.11.29 |
[바시슈타 요가] 창조에 관하여(6) (0) | 2023.10.16 |
순수한 앎의 빛 (1) (0) | 2023.10.09 |
근기가 둔한 사람들에게 주는 가르침 (0) | 2023.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