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 나는 누구인가? (4)

2023. 11. 6. 21:35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면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락아정이다', '불성이 있다' 이런 말은 손가락입니다.

손가락만 보고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불성을 찾기 위해서 자꾸 공덕을 닦아야 합니다.

또 불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인연 따라 못 보는 것이지, 볼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름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나'라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경책을 해 놓았습니다.

 

'상락아정'의 나를 믿고, '상락아정'의 나를 이루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자꾸 닦아 가는 것이 신심(信心)에 의한 수행(修行)이고

신심에 의한 정진(精進)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도인(道人)이 나왔습니다.

'생로병사'의 '나'에서 '불생불멸'과 '상락아정'의 '나'를 찾고,

거기에 아무런 구애없이(無罣礙), 무애자재한 삶을 사는 분을 도인이라고 합니다.

'무가애무가애고(無罣礙無罣礙故) 무유공포(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

곧 자재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로병사하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상락아정을 누리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려 말에 나옹(懶翁 1320 ~ 1376년) 스님이라고 하는 아주 큰 스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스무 살 때 출가하셨는데, 출가 동기가 친구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죽어서 크게 상심하여 동네 나이 많은 어른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죽은 사람이 어디에 갔는지 물었습니다.

'사하지(死何之) 사하지(死何之)' 이렇게 묻고 다녔지만 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나이 많다고 다 그것을 압니까?

그래서 인생에 큰 의문이 생겨 출가하고 도를 닦아서 대도인이 되셨습니다.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 나옹스님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각각 다 흩어져서 돌아 가실 때,

어느 곳으로 갑니까?

그러니까 나옹스님께서 양손으로 이렇게 한 주먹을 만들어서 가슴에 딱 대고

"지재저리(只在這裏)"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나옹 스님은 출가 이유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가하여 돌아가실 때 똑같은 질문을 제자들에게 받은 것입니다.

두 손으로 이렇게 한주먹을 만드는 것을 '교권(交拳)'이라고 합니다.

두 손으로 만든 한 주먹을 가슴에 딱 대고,

'다만 여기에 있느니라'고 하신 이것이 도인법문(道人法門)입니다.

 

생노병사의 몸을 가지고 불생불멸, 상락아정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나는 것이 나는 것이 아닌 상태에서 죽고 사는 걸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아프다고 고함지르는 건 생로병사입니다.

그 고함지르는 속에 상락아정이 있습니다.

 

상락아정을 알고서 고함지르는 사람과

상락아정을 모르고 고함만 지르는 사람은 다릅니다.

저도 어릴 때는 도인이 아프다고 할 때 실망했습니다.

그 속에 상락아정이 있는 것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생로병사에서 상락아정을 보는 이치가 무엇인가?

 

夢踏靑山脚不勞 (몽답청산각불로)

影入水中衣不濕 (영입수중의불습)

 

꿈에 청산을 다녀도 다리 아프지 않고

그림자 물 속에 들어가도 옷 젖지 않는다.

 

꿈에 청산을 헤메고 돌아다녀도 다리가 아프지 않고,

그림자가 물 속에 있어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종범스님의 <한생각 공부>-

 

                                                               <관악산 정상에서 (2023.11.3.)>